퀴퀴한 ‘바다’ 너머 수상한 음모 출렁이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8.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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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성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정·관계 인사들의 개입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배후는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사행성 도박 게임인 ‘바다이야기’와 경품용 상품권 발행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엄청난 이권이 걸린 이들 사업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의 실체가 주목되고 있다. 여러 상황을 반추해보면 청와대보다는 여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 그리고 문화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쪽에 로비가 집중된 흔적이 뚜렷하다.

검찰, 로비의 실체 찾기 주력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바다이야기 의혹’이 표면화한 것은 지난 8월18일이다. 이날 MBC <9시 뉴스>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가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의 판매 업체를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기 위해 인수한 회사의 경영진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전 노사모 대표 명계남씨가 자신이 도박 사업을 이용해 대선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는 항간의 의혹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라고 보도한 것이다.

이날 밤, 청와대는 비상이 걸렸다. 보도 직후 관련 직원들에게 호출령이 떨어졌다. 특히 민정수석실 직원들은 퇴근한 직원까지 거의 전원이 청와대에 나와 대책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청와대가 명계남씨와 관련한 첩보를 처음 입수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6월 문화관광부에는 ‘상품권 외압 의혹의 핵심 M씨’라는 식으로 명씨가 사행성 도박 게임장에서 주로 쓰이는 상품권과 관련이 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다. 이 즈음부터 성인오락실 업계를 중심으로 명씨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해 연말쯤에는 파다하게 퍼졌다. 인터넷에는 “명씨가 도박 사업으로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청와대가, 명씨가 사행성 도박 게임이나 상품권과 관련해 어떤 비리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은 3개월 전쯤이다. ‘도박 공화국’이라는 보도가 계속되면서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명씨와 관련한 온갖 소문을 수집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체를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명씨가 사행성 도박 게임이나 상품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명씨와 관련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곳이 대구·경북 지역이라고 파악했다. 사행성 도박 게임 피해자가 많은 지역이라는 사회적인 특성에 5·31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의 정치적 노림수가 결합해 허위 소문이 만들어져 증폭되었다고 분석했다.

 
명씨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8월21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5·31 지방선거 당시 대구·경북 지역 선거본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도무지 나 때문에 선거운동이 안 된다며 아예 그쪽으로 내려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지금 여기에서는 명계남 씨가 권력형 비리를 저질러 수천억원의 돈을 모았으며, 그 돈은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 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라는 말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정치적 마타도어(흑색선전)였다. 아마도 소문의 근원은 지금의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각종 소설과 시나리오를 쓰는 집단으로부터 흘러나온 하나의 에피소드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 증폭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명씨는 8월21일 자신과 관련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네티즌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명계남·노지원 씨 관련설은 신빙성 낮아

MBC가 ‘노무현 대통령의 친조카’라고 표현한 노지원씨는 진작부터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관찰 대상 0순위에 올라 있는 대통령 친·인척이다. KT 부산지사에 근무하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2003년 서울 본사로 옮긴 그는 노대통령의 큰형 노영현씨의 세 아들 가운데 둘째다. 영현씨가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지원씨는 어릴 적 노대통령의 집에서 자랐다. 그는 “대통령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눈빛만 보아도 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2003년 10월 노지원씨가 벤처 기업인 우전시스텍으로부터 최고경영자 자리와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안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이를 보고받은 노대통령이 지원씨를 불러 한바탕 호통을 치는 바람에 그는 최고경영자 자리와 스톡옵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청와대는 우전시스텍 사장에게도 경고를 보내는 등 노지원씨 주변을 밀착해 살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사행성 도박 게임이나 상품권 발행 등에 개입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지원씨가 근무하던 우전시스텍이 ‘바다이야기’ 제작·유통 업체인 지코프라임에 인수된 것과 지원씨는 아무 관련이 없다. ‘바다이야기’와 지원씨가 연결되면서 엄청난 권력형 비리인 것처럼 보도됐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장담했다.
청와대 전해철 민정수석이 MBC 보도가 나온 이틀 뒤인 8월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노지원씨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 그가 ‘바다이야기’와 관련해 엄청난 특혜를 받은 것처럼 보도한 일부 언론에 법률적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힌 데는 청와대의 이런 자신감이 배어 있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가 관련된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명계남씨와 노지원씨가 이번 사건에 직접 연루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1년 전부터 명씨와 관련한 소문을 주목해온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명계남씨의 경우,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없다. 단 상품권 발행 사업에 뛰어든 일부 브로커들이 이름을 팔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봤다.

‘바다이야기’ 의혹이 큰 파도가 되어 온 나라를 휩쓸다 보니 검찰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8월24일 상품권 발행 업체 19곳을 압수 수색했다. 전날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압수 수색한 데 이은 것이었다. 검사 10명, 수사관 2백30명, 버스 19대가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였다. 압수한 서류와 물품이 수백 상자였다.

서울중앙지검 이인규 3차장이 “압수 수색 영장이 그냥 나왔겠느냐”라고 자신한 것에서 보듯 검찰은 이미 이들 업체와 관련한 상당한 정보를 축적해놓은 상태였다. 검찰 정보의 바탕은 올 초 서울동부지검이 진행했던 상품권 발행 업체들에 대한 수사였다. 당시 수사의 핵심은 상품권 발행 업체 10여 곳에서 정·관계를 상대로 수십 억원대 로비를 펼쳤다는 것이었다. 대검찰청은 이와 관련한 구체적 정보를 동부지검에 내려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때 검찰은 1개 사 대표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2개 사 대표는 불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검찰의 한 소식통은 “당시 수사팀은 계좌 추적까지 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인사철과 겹치고 다른 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탄력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점 때문에 검찰은 이번에 더욱 철저하게 사건을 수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정치권 인사들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이나 담당자들이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권력형 비리’라기보다는 커다란 이권을 둘러싸고 이해 집단들이 나눠 먹기 경쟁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검찰은 다음 몇 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바다이야기’ 제조·판매사가 거둔 1천억원에 달하는 수익 가운데 쓰임새가 알려지지 않은 4백억원의 용처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 가운데 일부가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권 분열 가속화 촉매제 될 가능성

검찰은 또 ‘노다지’로 불렸던 상품권 발행권을 따기 위해 업자와 브로커들이 분주히 움직였던 데 주목하고 있다. 처음에 상품권을 발행하겠다고 신청했던 61개 업체 가운데 일부는 전문 브로커들이 서류를 작성해주는 등 ‘대행’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상품권 발행 업체들이 조성한 비자금도 수십 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당시 문화관광부 담당자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상품권 발행 업체 발표를 앞두고) 국회의원들로부터 어떻게 됐느냐, 언제 발표하느냐는 따위의 문의 전화가 엄청났다”라고 증언했다. 국회 문광위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관련되었다는 소문도 국회 주변에서 나돌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여당 쪽과 관련해 말이 많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기관이 게임과 상품권 발행과 관련해서 실질적인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제일 먼저 이들 기관을 압수 수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업계에서는 지난 2004년 당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이던 조 아무개씨가 게임기 업체로부터 1억2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에서 보듯 성인 게임물을 제작·판매하기 위해 로비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바다이야기’가 온 나라에 바다처럼 깔린 바탕에는 정부의 정책 실패가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인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문화관광부는 최고 배당률 제한을 삭제하는 등 게임기의 사행성을 주도적으로 조장해왔다”라며 ‘바다이야기’ 심의를 허가한 주범은 문화관광부라고 주장했다. 업자들이 “허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단속하느냐”라고 정부에 항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다이야기’ 의혹과 관련해 야당인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권력형 비리’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치적인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지나치다. 그러나 아직까지 ‘권력형 비리’의 실체는 없다. 앞으로도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검찰은 이런 ‘기대치’와 ‘실체’ 사이의 괴리를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숱한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한 ‘바다이야기’는 ‘실체’를 떠나 이미 정치적인 맥락을 갖게 되었다. ‘바다이야기’로 인해 불거진 서민들의 분노가 결국에는 정부를 향해 쏟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때늦은 대응은 민심 이반 현상을 가속화하면서 여권 내부의 균열을 더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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