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 지폐 놀이터’ 된 성인오락실
  • 김회권 인턴기자 ()
  • 승인 2006.08.28 09: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폐 인식기 성능 낮아 감별에 한계…돈 세탁에도 무방비

 
성인오락실이 위조 지폐의 온상이 되고 있다. 지난 7월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6년 상반기 중 위조 지폐 발견 현황’을 보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여섯 배가 늘어난 9천8백72장의 위조 지폐가 발견되었다. 2005년 한 해 동안 발견된 5천4백4장과 비교해도 두 배 가까이 많다.

위조 지폐가 갑작스럽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등공신은 성인오락실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1만원권 위조 지폐가 5천8백93장이 성인오락실에서 발견되었다. 오락실의 지폐 인식기가 정밀하지 못해서 위조 지폐를 걸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계의 환급률이 97~104%에 이르면서 투자한 돈과 비슷한 액수의 상품권을 받아낼 수 있는 환경도 한몫 했다. 상품권은 환전소에서 진짜 1만원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위조 지폐 세탁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한국은행 “업주들이 일부러 인식기 기능 낮춰”

최근 성인오락실에서 위조 지폐를 사용하다 덜미가 잡힌 사람들 중 상당수는 도박중독자다. 전문 위조범이 아니라 일반인들인 이들은 컬러 복사기와 스캐너를 이용해 손쉽게 지폐를 위조했다. 밑천이 떨어진 도박중독자들로서는 위조 지폐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성인오락기를 앞에 두고 범죄의 유혹을 느끼기 쉽다. 화폐 위조는 형법상 2년 이상의 징역에서 무기 징역까지,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5년 이상의 징역에서 무기나 사형까지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이지만, 한탕의 유혹 앞에서는 약해지기 일쑤다.

업주들도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 경남 지역에서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오락기의 지폐 인식기로는 절대로 위조 지폐를 걸러낼 수 없다. 위폐를 발견하면 신고하거나 쓰레기통에 구겨넣는다”라고 말했다. 게임기 제조 회사들이 싸구려 지폐 인식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는 게임의 내용만 심의할 뿐 기계 내부는 검사하지 않는다.

게임기 제조 회사들도 나름으로 할 말은 있다. 성능 좋은 지폐 인식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위조 지폐를 감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기 제조 업체들의 모임인 한국 어뮤즈먼트산업협회 윤재구 정책실장은 “기계가 감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상품권을 과다 배출하는 시스템이 문제다. 1만원을 넣으면 1만원이 나오기 때문에 위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코인이 2만 점 쌓이면 자동으로 상품권이 배출된다. 윤실장은 정부가 누적된 코인을 게임 이용료로 전환하는 작은 조처만 취해도 성인오락실에서 유통되는 위조 지폐의 양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게임기 제조 회사와 업주들을 위조 지폐를 양산하는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특히 업주들이 고의적으로 지폐 인식기의 기능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인식기가 지폐를 거부하는 비율을 의도적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투입구에 넣은 돈을 기계가 뱉어내는 일이 거의 없게 된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 전제현 과장은 “지폐 인식기의 거부율이 높으면 위조 지폐를 걸러낼 가능성은 높아지지만 낡거나 구겨진 돈도 기계가 먹지 않는다. 돈을 잃고 있는 손님이 화를 내기에 딱 좋은 경우다”라고 말했다. 손님을 잃지 않기 위해 업주가 돈을 세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성인오락실의 위조 지폐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6월,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은 성인오락기에 위조 지폐를 인식할 수 있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동안 성인오락실에서는 위조 지폐가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