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살아나고 있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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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감청 파문 등 딛고 제자리 찾아가…“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비판도
 
성인오락실·사행성 PC방·카지노바 등 사행성게임장이 유흥가·주택가·농어촌까지 급속히 확산(2만5천여 개, 시장 규모 80조원)되면서 서민층의 호주머니를 털어 삶을 피폐화시키는 등 사회악이 되고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사행성게임장 불법영업 및 폐해 실태’라는 문서의 첫 대목이다.

A4 용지 13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최근 불거진 ‘바다이야기’ 사태 와중에 화제로 떠올랐다. 여기에는 ‘서방파 부두목 ○○○은 서울 역삼동 00번지 3층과 경복아파트 사거리 ○○빌딩에서 무허가 카지노 운영’ 따위로 조직 폭력배들이 사행 산업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게다가 사행성 게임별로 영업 실태 및 문제점이 상세히 분석되어 있다.

문서 내용과 함께 국정원 문서가 유출된 것 자체도 관심을 끌었다. 이런 경우는 보기 드문데, 김영삼 정권 말기에 김현철씨와 관련된 국정원 문서가 새어나온 것에서 보듯 주로 레임덕 현상을 보여주는 징표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 문서는 그 내용이나 시기로 볼 때 ‘레임덕’과 관련 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최근 국정원이 살아나고 있다. 문서가 외부로 흘러나온 것도 이런 부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권이 등장한 이후부터 ‘개혁’이라는 격랑에 휘말려온 국정원은 지난해 불법 도·감청 파문을 거치며 안팎에서 더욱 심한 압박을 받아 움츠러들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라며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였다. 이런 흐름이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경찰, 국정원 행보에 주목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부쩍 국정원이 언론에 등장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2006 을지연습’ 첫날인 지난 8월17일 ‘국가사이버안전센터’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을 이렇게 극찬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최대 강국으로서 사이버 보안이 가장 핵심적 문제인데, 오늘 이렇게 아주 잘 정비되어 있는 대응 태세를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어 기쁘다. 이제는 과거의 부담을 다 털고 새롭게 출발해서 그야말로 국민을 위한 국정원으로서 제자리를 찾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까 참 기쁘고 축하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8월21일에는 다른 일로 언론을 탔다. 국정원이 북한에서 내려 보낸 남파 간첩을 잡아 검찰에 넘겼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것이다. 국정원이 남파 간첩을 검거한 일은 김대중 정권 이래 처음이었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자신감을 찾고 있는 것이 맞다. 정권 핵심부에서도 이완 현상을 보이는 다른 공무원 조직과 달리 역시 믿을 것은 국정원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전면 등장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국정원이 여전히 대공, 대정부 전복, 대테러 및 국제 범죄 조직과 관련한 정보 따위로 제한되어 있는 국정원 법의 범위를 넘어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보는 이들은 국정원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과거의 향수’를 다시 꿈꾸고 있다며 의심한다.
검찰이나 경찰 등 사정기관에서도 국정원의 최근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국정원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이들 기관이 위축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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