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들은 ‘발기’에 올인한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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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헬스케어, 아시아 남자 1만여 명 ‘성 조사’ 결과 ‘남성적 자아=성적 능력’으로 여겨 과도하게 집착
 
남성들은 발기 능력에 따라 울고 웃는다. 뿐만 아니라 발기 능력에 따라 삶의 질까지 달라진다. 오죽하면 발기부전을 표현할 때 ‘고개 숙인 남성’이라고 하겠는가.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를 판매하는 바이엘 헬스케어 조사 자료에 의하면 발기 능력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 8월23일 발리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 비뇨기학회에서 ‘아시아 남성들의 성과 일상에 대한 연구’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한․중․일을 포함한 아시아 5개국 남성 1만9백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였다. 현재까지 아시아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연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들은 발기부전으로 고통받을 때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00쪽 표 참조). 발기부전으로 힘들어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건강과 성생활에서 세 배 이상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발기부전에 시달리는 남자는 가족과 인간관계, 일에서도 두 배 이상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희대학교 이형래 교수(비뇨기과)는 “많은 남성들이 섹스는 남자가 여자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발기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남성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느낀다. 또 발기력이 떨어지면 체력이 저하되고 그만큼 늙었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잃는다. 삶의 질도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이형래 교수의 말대로 남성들은 남성적 자아(남자다워야 한다는 생각)를 성 문제로 연결한다. 발기 능력을 곧 남성다움으로 여겨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남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발기 능력에 따라 자신감이 달라지고 삶의 질도 좌우된다. 실제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한 뒤 성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을 찾은 남자들이 상당히 많다. 김 아무개씨(40․회사원)는 “치료를 받기 전에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고 시큰둥했다. 그러나 약을 복용한 뒤 성생활이 원만해지자 다른 일에도 신바람이 났다. 남자에게 돈이나 사회적 지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성적 능력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발기부전 환자와 비아그라를 통해 본 한국 남성의 남성성’ 연구를 했던 전북대 채수홍 교수(고고문화인류학)는 특히 아시아처럼 가부장주의가 강한 사회일수록 가부장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남성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채수홍 교수는 “한국 남성들은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도움을 받아 섹스를 원활하게 한 뒤에는 집안 일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아시아 남성들의 성과 일상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 5개국 남성들 대부분이 의사와 상담하고 발기부전 치료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 파트너 때문이다. 특히 중국 남성의 67%가 ‘여성 파트너 때문’이라고 응답해 중국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발기부전 치료를 권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남성은 10명 중 6명(62%)이 파트너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일본 남성은 38%만이 파트너 때문에 치료를 시작한다. 발기부전 유병률이 발생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남성 10명 가운데 1명 이상(14%)이 발기부전이다. 한국은 8%, 중국은 6%다.

아시아 남성 가운데 파트너 때문에 치료를 시작하는 남성은 중국이 가장 많고, 발생 비율은 일본이 가장 높지만, 발기 능력에 가장 민감한 것은 한국 남성이다. 한․중․일 3개국 남성의 발기부전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보면, 한국 남성의 태도가 두드러진다. 예컨대, ‘발기부전이 결혼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 남성 10명 중 9명 가까이(88%)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한국 남성은 아내와 발기부전에 대해 상의하는 것을 제일 꺼린다. 10명 중 6명 이상(67%)은 아내와 발기부전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남자로서 정말 자존심상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발기부전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아내가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한국 남성 10명 가운데 6명 이상(62%)은 본인이 발기부전이라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럽다고 대답했다. 또 10명 가운데 7명가량(69%)은 남편이 발기부전이면 아내가 바람을 피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이다. ‘발기부전 때문에 삶에 대한 자신감이 현저히 떨어진’ 남성 비율이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높았다(00쪽 표 참조).

발기 능력에 대한 집착은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라는 설문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 질문에서도 ‘그렇다’라고 답한 사람은 한국 남성이 가장 많았다. 중국과 일본 남성의 절반가량이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답한 데 비해, 한국 남성은 10명 중 8명(79%)이나 ‘그렇다’라고 답했다(00쪽 표 참조). 중국이나 태국까지 원정 가서 뱀과 곰 쓸개(웅담)를 찾는 한국 남성들의 극성스러운 ‘보신 문화’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 남성은 발기 능력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발기부전의 원인을 파트너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현재의 파트너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성적 파트너였다면, 발기부전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 남성 둘 중 한 명(55%)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무지와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서울병원 이성원 교수(비뇨기과)는 “파트너 때문에 발기부전이 생기지는 않는다. 파트너를 바꾸면 새로운 자극으로 발기가 일시적으로 잘 될 수도 있지만, 파트너에 따라 발기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미 발기부전 증세가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중․일 3국 가운데 한국 남성이 발기부전에 심리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국이나 일본 역시 한국처럼 유교 문화권이며 가부장제를 거친 나라인데도 말이다. 채수홍 교수는 근대화를 지나면서 달라진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채교수는 “중국은 사회주의로 편입되면서 남녀 지위가 평등해졌고, 일본은 서구 문명을 재빠르게 도입하면서 서구 성 문화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은 ‘남성적 자아=성적 능력’이라는 공식이 대부분 해체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근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남성주의와 가부장 문화의 강점이 강조되었다”라고 진단했다. 한국 남성들은 여전히 ‘남성적 자아=성적 능력’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가부장주의가 급속하게 해체되는 현재까지도 발기 능력이 곧 자신의 권위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씨는 가부장 문화뿐 아니라 군사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나미씨는 “‘마초이즘’을 길러낸 한국의 군사 문화는 남성들로 하여금 발기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발기 능력에 집착해 성적 성취에 인생의 많은 것을 걸다 보니 한국 남성들은 발기 능력을 회복하는 순간 외도할 가능성이 중국(52%)이나 일본(51%) 남성보다 높다.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면 성생활이 문란해져 현재의 파트너가 아닌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질 확률이 높아질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한국 남성 10명 중 7명 이상(74%)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한국 남성은 발기 능력을 회복하면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까지도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앞서의 이형래 교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발기부전 치료 후에 남성들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접대 문화와 술 문화에 노출되기 쉬운 중·장년층이 발기 능력을 회복하면 다른 파트너를 찾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부장 문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한국 남성은 아내의 바람기는 걱정하면서도 이혼당할까 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발기부전 때문에 이혼당할까 무서운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남성은 한국 응답자(41%)가 가장 적었다. 중국 남성(53%)들은 발기 능력에 가장 ‘의연’하면서도 이혼 걱정은 제일 심했다. 아내의 압박을 가장 적게 받는 일본 남성들조차 한국 남성들보다는 이혼 걱정을 덜했다(48%).

실제로 남편의 발기부전이 이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남편이 발기부전이라면 이혼하겠는가?’라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기자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대다수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중앙대 의대 김세철 교수(비뇨기과)가 2004년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그런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 설문 조사에서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위해 성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여성 대부분(98%)이 ‘그렇다’라고 답했지만, 발기 기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성 10명 중 4명(46%) 정도만 ‘그렇다’라고 답했다.

발기부전을 이혼 사유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여성에게 남성 파트너의 발기 능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성관계는 중요하지만 발기 기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여자는 ‘강한 섹스’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섹스’를 더 원한다. 또 남편의 성적 능력이 그 사람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여성들이 남편의 발기부전 치료를 지원하는 이유를 채수홍 교수는 ‘일종의 전략적 타협’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남편이 남성성과 권위를 회복하기를 기대해서, 또는 성관계가 좋아질 것을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치료를 받은 뒤 남편이 자신감을 찾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아내들이 치료를 권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남성들이 발기 능력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인생을 ‘올인’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채교수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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