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키워드로 일본의 '벽'을 파고들다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09.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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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와 활>/공시적·통시적 시점으로 한·일 관계 탐사
 
한반도는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고 있는 ‘단도’이다. 언제 칼날이 들어올지 모른다. ‘공한증’은 중국 축구팀에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지난 1천3백년간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두려워했다는 지적은 낯설어 보인다. 언론인 채명석씨가 최근에 펴낸 <단도와 활>은 한·일 관계를 공시적·통시적 시점으로 탐사하면서 한·일 관계가 일정한 문법을 가지고 반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은이는 25년째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인데 “아직도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의 정체를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조차 자국 문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모습·빈말), 아이마이사(애매모호함), 극장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일본이 넘지 못할 ‘열 가지 벽’을 파고든다. 야스쿠니 신사, 세습 정치, 체질적 역사 왜곡, 탈아론(脫亞論), 한류의 역사, 한반도 공포증 등 일본의 한계를 일본측 문헌과 자료, 그리고 저자의 체험에 바탕해 그려낸다.

한반도가 단도라면, 일본인들은 일본 열도를 활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일본은 두 차례 화살을 퍼부었다. 도요토미가 쏜 화살(임진왜란)과 후쿠자와 유키치 등 탈아론자들이 쏜 화살(식민 통치). <단도와 활>은 언제 세 번째 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경계한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재임 시절, 한국과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의미심장한 징후라는 것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총리의 신사 참배가 일왕의 참배로 이어진다면, 일본은 다시 태평양전쟁 이전의 초국가주의 체제로 부활한다. 유력한 차기 총리로 지목되고 있는 아베 신조 역시 극우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고이즈미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단순한 선례가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에 바탕하는 ‘보통국가’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확신에 찬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혼네(속말)와 다테마에(빈말)는 일본인의 또 다른 특징인 아이마이사(애매모호함)와 결합해 일본인의 속마음을 읽지 못하게 한다. 한·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일본 총리는 사과를 하고 약속을 하지만, 그것은 다테마에(빈말)일 때가 많다. 또한 혼네와 다테마에는 강자와 약자의 논리로 둔갑하기도 한다. 일본은 강자일 때 화살(보통국가론)을 준비하고, 약자일 때는 평화헌법(전수방위 원칙)을 준수하겠다며 물러선다.

극장 국가는 ‘국가의 기능이 외래 사상(모방할 스승)의 연출 표현에 충실하도록 정치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나라’를 말한다. 이론에 따르면, 극장 국가는 스스로 국가 운영 시나리오를 창출하지 못한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고대)에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중세)로, 다시 유럽과 미국(현대)으로 ‘모방할 스승’을 바꿔왔다.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자체 시나리오를 연출하려 했다가 참패하고 말았다.

지은이는 ‘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 친선을 끊지 말라’는 신숙주의 유언을 거듭 되새겨야 한다고 충고한다. 일본이 극우화하면, 한·일 간의 충돌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은 있다 없다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균형 감각을 가지고 대륙 국가(북방 삼각동맹)·해양국가(남방 삼각동맹)와의 교류를 병행하는 것이 ‘절대 이사 가지 않을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일 관계의 과거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역사나 국제 정치에 관심이 덜한 독자들이 읽어도 흥미롭다.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일본 문화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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