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변인’인가 과학 전문 기자인가
  •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9.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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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식의 시사과학] 일부 언론, 비판 없는 과학기술 보도 여전
 
현 정부와 언론, 특히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3대 보수 신문은 철천지 원수처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황우석 박사에 대한 보도이다. 참여정부는 이른바 ‘황금박쥐(황박사의 연구를 적극 후원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 대통령 과학보좌관,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일컫는 말)’의 치밀한 계산 아래 황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 보수언론이 이에 맞장구를 쳐서 황우석 신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건 조·중·동이 과학기술에 대해서만은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언론은 과학기술이 정치 중립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과학기술은 집권세력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은 국익을 위해 무조건 보호 육성돼야 한다는 일반 국민의 고정관념에서 언론인들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 정책을 비판하는 논조는 국민의 호응을 크게 받지 못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셋째, 과학담당 기자들이 전문 지식이 부족해 과학기술부의 각종 프로젝트를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고 마치 대변인처럼 보도하는 데 급급한 것 같다. 이처럼 비판 기능을 상실했다는 측면에서 대다수 과학담당 기자는 언론인이라기보다는 홍보 요원쯤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풍토에서 진보 성향 신문의 두 기자가 ‘민간 과학기술부’로 불리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의 기관지인 월간 ‘과학과 기술’의 편집위원 명단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과총이 과학기술부의 예산 지원을 받고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단체이므로 언론의 감시 대상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단체의 기관지를 편집하는 일에 신문기자 자격으로 참여한 것은 아무래도 온당한 처신이 아닌 것 같다. 또 그들을 편집위원으로 끌어들인 과총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여 참으로 한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일부 정치 과학자들이 헛된 명예를 얻기 위해 언론에 추파를 던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기자들에게 편집위원 감투를 씌워 자신들의 패거리로 만든 것은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임에 틀림없다.

‘과총’ 편집위원 된 기자들, 상도 받아

게다가 올해에 두 기자가 과학기술부 산하의 한국과학문화재단으로부터 과학문화상을 나란히 수상해서 ‘과학과 기술’ 편집진 참여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그렇지 않아도 과학문화 활동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수상자 명단에서 배제되어 과학문화상의 권위가 밑바닥으로 추락함에 따라 이 상의 폐지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물론 이 상의 심사위원들은 과학기술자들이다. 따라서 지난해에 황우석 사태를 겪은 과학기술자들이 자숙하고 반성했더라면, 황우석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한 기자들에게 상을 줄 것이 아니라 황우석 신화를 깨뜨리는 데 헌신한 기자들을 수상자로 골랐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줄로 안다. 아울러 두 기자 역시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처럼 황우석 신화 창조에 동참했으므로 이 상의 수상을 사양했어야 옳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를 당부하고 싶다.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과학계의 주류 세력, 이를테면 과학기술부의 고위관료, 과총 등 각종 단체의 수장들과 원로들, 대학교수와 정부 출연 연구소 책임자들이 자정 능력이 태부족임을 드러냈다. 만일 젊은 생명과학자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황우석 신화는 계속 부풀려져 더 큰 국가적 재앙을 키웠을 것이다.

이제 과학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자명해졌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좀더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맹목적으로 보호만 할 게 아니라 애정 어린 비판을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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