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있는 ‘반전 드라마’ 누가 연출할 것인가
  •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 ()
  • 승인 2006.09.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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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부원장·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부소장·한국 국제정치학회 이사)

 
2007년 대선이 이제 1년 조금 넘게 남았다. 한국 대선은 특유의 역동성과 가변성으로 결과를 예측하기 참으로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대선 게임의 불예측성은 오히려 국내외적으로 관전의 묘미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하튼, 지난 1987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의 대선에서 확인된 한국 대선 게임의 법칙에 따라 다가올 대선을 관전한다면 선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대선 성격, 선거 연합, 정권 창출 세력의 이념 성향, 선거 구도, 선거 이슈, 유권자의 투표 행태, 선거운동 방식, 후보 선출 방식 등과 같이 역대 한국 대선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2007년 대선에서는 3개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제1 관전 포인트: 누가 역발상적인 정치 실험을 시도할 수 있나?

한국 대선에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새로운 정치 실험을 실행에 옮긴 세력이 승리한다는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 규범적인 평가를 넘어서 선거 공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실리를 추구한 세력이 그렇지 못한 세력에게 승리했다는 뜻이다. 1987년 대선에서는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 직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 선언을 전격 발표하고 그 여세를 몰아 집권에 성공했다.

1992년 대선에서 정통 야당의 한 축이었던 통일민주당 출신 김영삼 후보(PK)가 군부 독재 세력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충청)와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TK)이 반(反) DJ, 반(反) 호남 연대를 지향한 민자당 후보가 되면서 승리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유신 저항 세력이었던 김대중 후보(호남)가 유신 본류 세력이었던 김종필 총재(충청)와 내각제를 매개로 반(反)한나라당, 반(反)영남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승리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재벌 개혁 세력인 노무현 후보와 재벌 본류 세력인 정몽준 후보가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는 예외 없이 역발상적인 정치 실험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에서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은 무엇일까? 현재 여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통합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수구 보수 대연합에 맞선 민주 개혁 세력 연합론을 주장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연말에 정치권의 구조 조정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중도 실용 개혁 세력의 통합을 구상하고 있다.

한편,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지약 감정 해소와 국민 통합을 위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통합을 희망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 한나라당은 뉴라이트 세력의 핵심 인물을 참정치운동 공동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이들 세력과의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계 개편과 대선 연대 시나리오에는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새로운 내용이 없다. 반면, 대선에서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정치 실험은 단연코 영·호남 연대이다. 2007년 대선에서는 과연 어느 정치 세력이 국민 통합 차원에서 영·호남 연대를 통한 ‘국민 통합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 포인트로 부상할 것이다.

제2 관전 포인트: 누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가?

 
대선에서 승리를 일궈낸 세력은 예외 없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시대정신을 담은 명분을 제시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5·16 혁명 이후 30여 년 간 지속되어온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연다는 명분으로 호랑이굴로 들어갔다며 3당 합당을 합리화해 당선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수평적 정권 교체를 시대정신으로 내걸고 DJP 연대를 이루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세대 교체를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제시했다.

특히,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민주당은 ‘변화와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정당으로 인식되어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반면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은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대세론에 도취되어 수구 보수의 길을 걷다가 이슈를 선점당한 채 패배했다.

따라서 2007년 대선에서도 어느 정치 세력이 시대정신을 선거 전략에 담아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현재까지 거론되고 있는 2007년 대선의 핵심 쟁점은 국민 통합, 경제 회생, 국가 안보, 정치 개혁 등이다. 현재 지지도와 무관하게 누가 시대정신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지지도가 쏠릴 수 있다.

제3 관전 포인트: 누가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까?

대선은 경선 과정과 본선 과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과정에서 관심을 끄는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2002년 대선 초반에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여야 정당의 대선 후보 결정 방식이었다. 한나라당과 대권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2001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1월,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대선 후보를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선출하는 ‘국민 참여 경선제’를 채택하는 정치 실험을 단행했다. 2002년 3월부터 시작한 민주당의 정치 기획 상품인 ‘국민 참여 경선제’는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전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광주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는 일약 수퍼스타로 부상했다.

 
박근혜 부총재 탈당 이후 국민 여론에 밀려서 마지못해 실시했던 한나라당식 ‘짝퉁 국민 참여 경선’은 국민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속에 ‘민주당 = 개혁 추구 세력, 한나라당 = 개혁 거부 세력’ 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따라서 2007년 대선에서도 과연 어느 정치 세력이 국민의 전폭적인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경선 방식을 채택할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선거인단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완전 국민 참여 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하는 세력에게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대선 본선에서는 누가 선거 종반에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내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997년 대선에서는 선거 막판 극적인 DJP 연대가 이루어졌고,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로 선거 판도가 뒤바뀌었다. 결과적으로 2002년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최초로 시도되었던 ‘후보 단일화 게임’이 2007년 대선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 모두 상대방을 압도하는 유력 대권 후보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게임에서는 권력을 매개로 여야 구분을 초월해 유력 대권 후보들 간에 어떤 짝짓기가 이루어질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종합해보면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시대정신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정치 실험을 단행하는 세력이 과연 떠오를 수 있을지, 또 이러한 세력이 현재의 지지도와 상관없이 선거 초반과 종반에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지가 2007년 한국 대선 게임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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