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머리는 특별한 컴퓨터”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10.0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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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 속의 과학자>/인지과학의 최근 성과 정리

 
<요람 속의 과학자> 앨리슨 고프닉 외 지음, 곽금주 옮김, 소소 펴냄, 340쪽, 1만8천원

이 책의 출간을 가장 먼저 반길 사람은 다름 아닌 아기들이다. 불행하게도 이 책의 주인공들은 책 내용을 읽을 수는 없지만,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세계의 영·유아들이 이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어른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리겠네”라며 한숨을 폭 내쉴 것 같다.

세 사람의 저자, 즉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니, 앤드루 N. 멜초프, 패트리샤 K. 쿨은 아기들을 과학자라고 보았다. 아기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찰하고, 모방하고, 생각하고, 추론하는 것은 물론, 증거를 살피고, 설명을 찾고, 실험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진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태어난 지 42분밖에 안 된 갓난아이가 어른이 혀를 내밀면 따라 한다는 것이다.

3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인지과학의 최근 성과를 정돈한 이 책은 아기를 매우 특별한 컴퓨터에 비유하면서, 아기가 세 가지 탁월한 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세상에 나온다고 말한다. 아기들은 이미 부팅되어 실행할 준비가 완료된 강력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태어나(선천적 토대), 점차 더 강력하고 정밀한 프로그램들을 보유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 자신을 재프로그래밍한다(학습). 여기에 보호자의 양육으로 대표되는 지원 프로그램(지원)이 있다.

아기들이 어른들의 아버지인 까닭

인지과학자 앨리슨 고프닉(미국 UC버클리 대학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자 앤드루 N. 멜초프(미국 워싱턴 대학 심리학과 교수), 발달심리학자 패트리샤 K. 쿨(미국 워싱턴 대학 음성 및 청각학과 교수)이 던진 최초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아기라고 불리는 이 낯익고도 특이한 피조물은 실제로 어떤 존재인가? 도대체 저 조그만 머리통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 단순한 질문은, 인간은 어떻게 불안전한 감각을 이용해 그토록 많은 사실을 알아내는가라는, 인간의 ‘지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인식론적 질문인데, 여기에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즉 타인의 마음 문제, 외부 세계 문제, 언어 문제. 세 학자들은 아기들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뇌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준다.

인간의 마음은 신경학적으로 결정되는 ‘자연적인’ 부분과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문화적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전적으로 뇌에서 벌어진 일들의 결과라는 것이다. 발달심리학(혹은 발달과학)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발달심리학은 과학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과학에 속한다. 아무도 아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30여 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어린아이를 ‘우는 당근’ 정도로 보았다. 학문 영역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 사이 여성과학자들이 늘고, 남성 과학자들이 아기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난 한편, 비디오 녹화기가 대중화하면서 발달과학은 학문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들만큼 흥미진진하다. 곳곳에서 아기의 놀라운 능력을 새로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러나 과학자들은 미신이라고 했던 ‘속설’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연구 기법도 기발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진짜 이유는 우리가 모두 한때 아기였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듯이 아기에 대한 연구는 어른, 아니 인간 자신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아기들은 진짜 어른의 아버지다!

세 학자들은 과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발달과학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과학은 세계에 대한 정상적인 이해의 확장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정확히 알아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젊은 부모를 현혹시켰던 수많은 사이비 ‘발달과학(육아법)’에 대한 예방 주사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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