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해방하는 교육을 모색하다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10.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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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생태주의와 더불어 대안학교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대안학교 운동 역시 기존 제도와 가치의 역기능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를 모색하기 때문이다. 대안학교와 관련된 책을 자주 뒤적거렸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대안학교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쉽게 결정했다. 나는 공립 중학교를 졸업한 딸과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아들을 대안학교에 입학시켰다.

<희망의 교육학> <페다고지> 등으로 널리 알려진 브라질의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와 시민권 운동 및 지역사회 학교 운동을 실천한 미국의 교육활동가 마일스 호튼이 나눈 대화를 엮은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펼치며, 두 아이가 다니고 있는 대안학교가 떠오른 까닭은 단순하다. 대안학교의 선생님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교육활동가들의 고충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안학교 교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야심 찬 활동가로 시작했지만, 이내 생활인이라는 한계에 부닥치곤 했다. 재정에 관한 한 ‘대안’이 없는 대안학교는 사정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교육 목표를 인간 해방에 두고 있는 두 진보적 교육자의 사상과 생애를 뒤따라가면서,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혁명도 학교 체제를 바꾸지 못했다. 호튼은 “혁명은 토지 소유 관계, 선거 제도 등 혁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들을 바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도 학교는 저절로 바뀌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프레이리는 혁명가를 ‘굉장히 전통적인 교사’로 본다. 학생(민중)들이 교사(혁명가)를 넘어설까봐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프레이리(1921~1997)와 호튼(1905~1991)이 20세기 최고의 교육자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참여 교육에 생애를 바쳤기 때문이다. 프레이리는 1950년대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레시페 농민들을 대상으로 문맹 퇴치(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3 세계 민중 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프레이리와 호튼 “교육은 중립적이지 않다”

프레이리에 견주어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호튼은 1930년대부터 학교 체제 밖에서 시민들을 가르치는 하이랜더 시민학교를 세우고, 성인 흑인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자생적 힘을 기르는 시민권 운동(세력화 교육)을 전개했다. 프레이리는 초기 해방신학과 무관하지 않았고, 호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절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당국으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프레이리는 1964년 군사 쿠데타 직후 투옥되었다가 국외로 추방되었고, 호튼은 1950년대 매카시 선풍이 휘몰아칠 때 공산주의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재산을 압수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두 교육자의 대담은 1987년 12월 초, 호튼이 살고 있는 테네시 주 하이랜더 언덕에서 시작되었다. 경제적으로는 불우했지만, 당당한 부모 밑에서 자란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독서를 통해 꿈을 키웠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독서 교육의 중요성부터 강조한다. 대담은 ‘교육은 중립적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넘어가면서 팽팽해진다. 두 사람은, 교육은 중립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프레이리는 “교육은 정치적으로 명확한 노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브라질과 미국에서 민중 교육과 선거권을 결합시켜, 권력 구조를 뒤흔들었다. 선거인 수를 급격하게 늘린 것이다.

한국 교육 현실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교육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뜨거운 독서 체험’을 안겨줄 것이다. “자유에 대한 신념을 갖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야 합니다”라는 프레이리의 비관적 낙관주의를, 교육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먼저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이 책 제목에 딴지를 걸고 싶다. 나 같았으면 ‘우리가 걸어가야 길이 됩니다’라고 붙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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