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절을 압수 수색했으랴…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10.2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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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횡령 등 혐의로 마곡사 주지 수사…조계종 내부 개혁 목소리 거세져
 
지난 10월11일 오후 6시, 대전지검 공주지청(지청장 백방준) 수사관 10여 명이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들이닥쳤다. 조계종은 전국에 25개 본사가 있는데,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는 수덕사와 함께 충남 지역을 관할하는 대표 사찰이다.

검찰은 지난 6월 마곡사 주지 진각 스님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된 이후 은밀히 내사를 진행해오다 이날 마곡사를 압수 수색했다. 마곡사 종무실과 진각 스님의 개인 금고가 주된 목표였다. 검찰은 압수 수색 당시 금고 열쇠를 갖고 외부에 있던 진각 스님에게 연락을 취해 협조를 요청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종무실 금고는 봉인하고, 주지실 금고는 통째로 공주지청으로 들고 왔다. 이들 금고에 대한 압수 수색은 이틀 뒤 마곡사 대표 스님과 공주지청 검사가 입회한 가운데 마곡사 종무소와 공주지청에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주지청 관계자는 “종교와 관련된 사건이라 신중하게 수사하고 있다. 엄정하게 할 것이다. 진행 중인 수사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대전·충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정불교실천승가회가 진각 스님을 검찰에 고발한 핵심 내용은 세 가지다. 그가 충남 대전의 한 사찰 주지로 있던 2001년 4월 실제보다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입한 것처럼 가짜로 서류를 꾸며 4천7백만원을 횡령했다는 것이 하나다.

또 정부 보조금과 시주금 등 2억8천만원을 들여 이 사찰에 있는 건물을 보수하면서 공사 업자와 이면 계약을 체결해 8천만원을 횡령했다는 것도 있다. 말사 주지 임명 대가로 억대의 돈을 받았다는 내용도 고발장에 들어 있다.

그러나 진각 스님을 대변하는 철웅 스님은 “다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4천여 만원은 고산사 주변 임야를 사는 데 썼고, 2억8천만원은 건물을 짓는 데 모두 사용했다”라는 것이다. 철웅 스님은 “일부 스님이 불사에 쓰라고 돈을 내기는 했지만, 진각 스님이 말사 주지에 임명하는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마곡사 말사의 한 주지 스님은 “말사 주지를 임명하면서 돈을 받는 것은 마곡사 관내에서는 관행이다”라고 말했다.

법률 위반 여부와는 별개로 충남 지역 불교계에는 진각 스님의 행태와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하게 퍼져 있다. 그가 승려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소문이 얼마나 심했던지 정대 전 총무원장 시절에는 정대 총무원장이 그에게 “사퇴하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진각 스님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지난 겨울에도 그와 유흥주점에 간 적이 있다. 그는 한 번 갈 때 평균 3백만원을 썼다”라고 증언했다. 한 승려는 “그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들을 했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증언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런 승려들이 정화되지 않으면 승복을 벗을 생각이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마곡사 주지가 된 뒤에도 그의 이름으로 된 카드는 대전 지역 몇몇 유흥주점에서 단골로 쓰였다.

그러나 철웅 스님은 “술 먹는 것이 허물이지만 남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 아니냐. 그가 다른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반대파들이 만들어낸 말이다”라고 말했다.

공주지청 관계자는 “압수 수색에서 어느 정도 나온 것이 있다. 현재 압수한 서류를 분석·확인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진각 스님측이 검찰에서 내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대책회의를 하거나 일부 자료를 없앤 흔적이 있지만 통상적인 성과는 올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고발 내용과 관련한 수표 사본 및 관련 서류 등 증거 자료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검찰은 또 진각 스님 명의로 된 통장에 들어 있는 자금의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곡사가 압수 수색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교계는 크게 요동치고 있다. 본사가 검찰로부터 압수 수색을 당한 것은 조계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압수 수색 다음날인 10월12일 50여 명의 승려가 공주지청에 몰려갔다. 백방준 지청장은 승려 대표 여섯 명과 면담하고, 압수 수색 배경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마곡사가 평소 관광객 출입이 많은 전통 사찰이기 때문에 낮 시간을 피했다. 그렇다고 한밤중이나 새벽에 하기도 저어되어 오후 6시부터 압수 수색을 하게 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10월18일에도 승려와 신도들이 몰려왔으나 불법 집회라는 지적을 받자 성명서만 읽고 해산했다.

“진각 스님, 위기 모면하려고 종정 스님 이용”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은 ‘마곡사 사태’가 일어난 직후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전화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지관 스님은 ‘공정한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정총장은 이에 대해 ‘검찰이 하고 싶다고 해서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공정하게 수사하겠다’라는 내용으로 답했다”라고 말했다.

진각 스님은 느닷없이 해인사에 주석하고 있는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을 찾았다. 마곡사 기획국장 혜광 스님 등은 지난 10월16일 낮 서울 견지동 조계사 인근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종정 예하 예방’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10월16일 오전 7시30분부터 8시까지 30분간 종정 법전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었다. 마곡사측은 이 자리에서 법전 종정이 “종단의 위상이 이것밖에 안 되는 현실에 비통함을 느낀다. 상당 부분이 무혐의나 모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총무원장과 본사 주지들은 강력하게 항의해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자료에 썼다.

그러나 확인 결과 진각 스님은 이날 법전 종정을 만나지 못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과 종정 예경실장인 선각 스님을 해인사 주지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선각 스님은 “진각 스님이 종정 스님을 만난 적이 없다”라고 확인했다. 불교계에서는 진각 스님이 위기를 모면하고자 종정 스님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높다.

‘마곡사 사태’ 이후 불교계에는 자정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부설 교단자정센터(자정센터·원장 김희욱)는 10월12일 ‘부패 근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호법부 등 교단 내 자정 기관이 제 역할을 못 해왔음이 이번 사건으로 또 한번 입증되었다. 총무원은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그동안 마곡사를 둘러싸고 표출되었던 매관매직(배임수재), 본사 주지 선거와 관련한 개인 비리, 재산 축재 의혹 등에 대하여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불교청년회(대불청·회장 김익석)와 불교환경연대(환경연대·상임대표 수경)도 10월16일 조계종 개혁을 강조하는 논평을 냈다. “마곡사 사태는 예견된 사건으로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거져서 지난번 주지 선거 후 격돌이 심화되었다. 그렇다면 집행부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종단 개혁에 나섰어야 함에도 안일하게 대처해 화를 자초했다”라는 것이다.

내부 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하는 승려와 신도들은 10월23일 한자리에 모여 ‘청정교단 실현을 위한 시국토론회’를 갖고 활동 방향을 논의했다. 종단 개혁에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힘을 합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조계종단 내부의 부패가 점점 심화하는 가운데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일부 승려들은 ‘마곡사 사태’를 불교탄압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본사를 밤에 압수 수색한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이는 불교를 탄압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10월16일 조계종 교구본사 주지들이 모여 “교구본사에 대해 야간에 압수 수색을 실시한 것에 강력히 항의한다”라고 뜻을 모은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조계종이 자초한 것이라는 반론이 거세다. 자체적인 정화 기능이 상실되면 외부의 힘에 의해 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패가 얼마나 깊었던지 충남 지역 한 사찰 주지는 “종단을 폭파시켜야 한다. 승가는 포기했다. 재가에게 유일한 희망을 건다”라고 말했다.

개혁에 역행하는 ‘종무원법 개정안’ 통과

‘마곡사 사태’만 해도 진정서와 관련자들의 양심선언서·고발장 등이 지난 6월을 전후해 조계종 총무원에 접수되었다. 총무원 주요 보직을 맡은 스님들에게도 문서가 건네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무런 조사가 행해지지 않았고, 지관 총무원장은 지난 6월30일 진각 스님을 마곡사 주지로 임명했다.

 
충남 지역 또 다른 사찰 주지는 “사회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잘못된 관행이 아직도 불교계에 만연해 있다. 만나면 도박을 한다. 하루에 몇 백만원이 왔다 갔다 한다. 도박을 못하고 골프를 못하면 어울리지 못하니 이것이 승가인가. 이번 기회에 썩은 살을 확실하게 도려내야 불교의 미래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마곡사 사태’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제2, 제3의 ‘마곡사 사태’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부패와 도덕적인 타락이 조계종단에 일상화해 있다는 것이다.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조계종의 상징적인 모습이, 지난 9월5일 제13대 조계종 중앙종회가 종단 주요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 조건을 대부분 폐지하는 ‘종무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로써 조계종은 법에 의해 사기나 폭행 등 파렴치범으로 처벌 받은 전과 사실이 있는 사람도 형이 종료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종단 요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합법화했다. 뜻있는 재가와 승려들이 “승가의 청정성과 질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법안이다”라며 지관 총무원장에게 이를 공포하지 말 것을 권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지관 총무원장이 등장한 이후 조계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비리 사건이 연달아 터져나오자 내부에서는 총무원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지관 원장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재가 단체들은 벌써부터 지관 총무원장에게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박광서 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 성태용 우리는 선우 이사장, 김희욱 교단자정센터 원장, 김익석 대한불교청년회장 등 재가불자 단체장들은 지난 10월11일 오전 10시, 지관 스님을 면담한 후 기자 회견을 갖고 “신임 지관 총무원장 취임 이후 총무원 및 중앙종회는 자정 요구에 대해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10월26일 실시되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선거에는 신도가 기증한 땅을 자신의 명의로 등기 이전한 스님, 토지 수용금을 편취한 스님, 불교중앙박물관 비리 사건에 연루된 스님 등이 출마했다. 중앙종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불교계에는 ‘5당3낙’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5억원을 쓰면 당선되고 3억원을 쓰면 떨어진다는 것이다.

불교계 한 언론에서는 ‘중앙종회의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이 수억원씩의 금품을 살포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인터넷 설문 조사까지 진행하고 있다. 얼마나 ‘돈 선거’가 심하면 이런 설문 조사를 할까 하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곡사 사태’ 처리 과정은 불교계가 내부 개혁을 통해 스스로 거듭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 개혁에 실패하면 조계종은 외부의 충격에 의한 타율적인 개혁을 강제당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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