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스산한 가을 속으로…
  • 글 · 사진 최완(여행 작가) ()
  • 승인 2006.10.2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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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가 있는 여행지 여섯 곳/백양사·경주 남산 등 ‘애기 단풍’과 ‘달빛 산행’으로 유혹

 
가을이 언제 왔나 싶더니 어느새 달아날 태세다. 길에는 낙엽이 서럽게 뒹굴고,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도 제법 차갑다. 그러고 보니 올가을에는 핵이다 뭐다 해서 오색 단풍에 눈길 한번 주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직 길은 열려 있다. 아직 길 떠나지 못한 분들에게 늦가을의 정취를 맛볼 여행 길을 소개한다.

붉은 애기 단풍이 손 흔드는 장성 백양사

 올가을 단풍 소식은 지난해보다 8일가량 빨랐다. 9월 말 설악산을 출발해 오대산과 치악산을 붉게 물들인 단풍은, 10월 말 현재 충청도 계룡산과 월악산을 지나 남부 지방까지 내려갔다. 바야흐로 가을도 막바지. 아직도 단풍 구경을 못했다면 장성 백양사로 가자.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 백양사.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숲 속의 천년 고찰이다. 전남·전북이 갈라지는 갈재.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 첫머리에 있는 웅장한 바위산. 그 안에 백양사가 숨어 있다. 학 모양의 형국을 하고 있는 백암산 자락이다. 백양사는 풍수 지리학상 학의 날개 품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 백양사로 들어가는 길은 늦가을에도 아늑하다.

  백양사 주변은 11월 초나 되어야 가을빛이 물든다. 인근 장성호는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백양사로 가는 길의 가로수들이 발그스레한 홍조를 띠는 것이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 숲길을 지나 백양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쌍계루다. 근래에 와서 생긴 2층 누각이지만 풍광은 그림 같다. 앞에는 계곡을 막아 만든 못, 뒤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다.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은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라고 했다. 그 당시 쌍계루 앞의 개울을 두고 한 말이다. 이색의 찬사대로 개울은 쌍계루를 담고, 단풍의 붉은빛을 담고, 가을의 짙푸른 하늘을 오롯이 담고 있다. 물에 비친 가을 풍경을 비스듬히 보면 한 폭의 수묵 채색화 같기도 하고, 유화 같기도 하다.

 쌍계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부도탑이 나타난다. 조계산 송광사 등과 더불어 호남 최대의 고찰이지만 법당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백양사는 근대 종정만 다섯 명을 배출한 명찰이다.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다. 조선 선조 때 명칭이 백양사로 바뀌었는데, 사연이 재미있다.

환양 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법회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그 양은 법회 7일째가 되는 날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해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했다. 이후 절 이름이 백암사에서 백양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백양사 단풍은 애기 단풍이다. 작게는 어른 엄지손톱만하고, 커봤자 어린아이 손바닥만하다. 애기 단풍에 붉은 물이 들면 참 곱다. 바람이 불면 어린아이가 손을 흔들 듯 흔들리다가 끝내 하나 둘 떨어져 내린다. 백양사 들머리에서 약 1.5㎞ 이어지는 산책로와, 매표소에서 천진암까지 이어지는 5백m 길이의 오솔길에 애기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절 입구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약사암은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약사암 뒤로는 영천굴과 약수가 있다. 영천굴에서는 예전에 쌀이 나왔는데, 지팡이로 그 자리를 찔렀더니 피가 흘러 벽이 붉어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백양사 천진암 추녀 끝의 풍경 소리는 청량하다. 이제 곶감을 파는 노인들이 천진암 가는 길에 나앉을 것이고, 비구니들이 태우는 낙엽 냄새가 산사에 그윽하게 퍼질 것이다. 백양사의 가을을 즐기려면 서둘러야 한다. 가을은 짧다. 참, 백양사 단풍만 눈에 넣고 가기 아쉬운 사람이라면 백양사 단풍 못지않게 유명한 장성의 ‘붉은 감’을 즐기시라. 장성의 가인마을과 중평마을에서 감이 많이 난다.

 
달빛 아래  미소짓는  경주 남산의 부처님

 11월은 경주가 가장 경주다울 때이다. 봄, 여름, 가을 내내 개구리처럼 북적거리던 관광객이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시는 침묵 속에 빠진다. 천천히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느긋하게 도시를 돌아보면 좋다. 대기도 맑아 남산의 느긋한 선과,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이 어우러지는 광경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가을 중에서도 해질 무렵이 가장 곱다. 첨성대 앞으로 가보시라. 건너편으로 보이는 노서동 고분이 경주를 둘러싼 금강산·남산·선도산과 어울려 곡선의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 퍼포먼스는 화려하지만 난잡하지 않고, 변화무쌍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한 걸음을 가면 두 개의 능이 겹치고, 두 걸음을 가면 세 개의 능이 포개진다.

능 주위를 어슬렁거려 보라. 가까운 능은 진한 곡선을 만들어내고 먼 산은 옅은 곡선을 만들어낸다. 지붕은 그 곡선 사이에서 올망졸망한 곡선을 다시 그린다. 그리고 그 곡선 위로, 신라의 땅 위로 장엄하게 번지는 노을. 옛 신라는 아마 이보다 더 황홀한 왕국이었을 것이다.

 신라의 역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면 남산을 올라야 한다. 매월 보름을 전후에 경주에 가면 기막힌 여행을 해볼 수 있다. 이름하여 남산 달빛 기행. 경주 남산연구소(054-745-2771, www.kjnamsan.org) 김구석 소장이 “이래 좋은 불상 남 보여주려고” 만들었다. 지난 1996년 처음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만명이 넘는 사람이 그 뒤를 쫓아 달빛을 밟으며 남산에 올랐다.

 달빛 기행은 보통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다. 산에 오르기 쉬운 간편한 복장에 음료수와 가벼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어둑어둑해지면 포석정 주차장에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남녀노소 50여 명이 모여든다.
 출발하기 전에 김소장이 간단히 주의 사항을 알린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앞뒤 사람의 눈이 부셔서 산행에 방해가 됩니다. 달빛만으로도 충분히 산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사람을 보고 따라오지 마시고, 뒷사람을 의식하며 따라오세요. 뒷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서서 앞사람에게 기다려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산에 오른다. 윤을골을 따라 올라가 마애삼존불과 상실 절터를 지나 해목령에 오른 후, 금오정과 늠비봉을 거쳐 하산하는 코스다. 약 네 시간이 소요되는데, 어린아이도 따라 오를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산행이다.

 포석정 주차장을 빠져나오면서 본격적인 달빛 기행이 시작된다. 길 오른편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길은 걷기에 알맞을 정도로 푹신푹신하다. 그렇게 걷기를 30여 분. 문득 김소장이 ‘잘생긴 부처님 한 분’을 뵙고 가잔다. 윤은골 마애삼체불이다. 비탈길을 올라가자 평범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김소장이 바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설명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삼존불은 본존불과 좌우 두 협시보살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 세 부처는 ㄱ자 모양의 바위벽 남향 면에 두 분 계시고 서향 면에 한 분 계시는 것이 특이하죠.” 그러면서 “잘 보세요” 하더니만 촛불을 켠다. 촛불이 부처님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성이 터진다. 달밤, 돌에 새겨진 부처님 앞에 서면 그 기분, 단순한 관광이나 등산과는 조금 다르다.

 상실 절터와 해목령을 지나면 늠비봉 오층석탑에 다다른다. 석탑 아래로 환하게 불을 밝힌 경주 시가지가 펼쳐진다. 먼 서쪽으로는 배리평야와 선도산이 굽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해목령을 마주하며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 펼쳐진다. “이 탑의 위대함은 기단에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 40~50년 걸려 첨탑을 세웠어요. 하지만 신라인들은 산을 기단으로 삼아 탑을 세웠죠.” 누군가는 탑에 기대 경주 시내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는 탑 주위를 빙빙 맴돈다. 또 누군가는 탑 위에 걸린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신라의 가을밤이 깊어간다.

 마음이 길을 만드네 /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 누가 길을 만들고 / 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 / 보름달 뜨는 저녁 / 마음의 눈도 함께 떠 /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는 실타래 같은 길은 /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길 - 경주 남산’(정일근)

 
물빛이 가장 검은 바다, 양양 하조대

 풍경은 마음을 다독거려준다. 아내 또는 남편과 싸웠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마뜩찮은 인생사가 마냥 답답하거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울화가 솟구칠 때, 사는 일이 심드렁해졌을 때, 우리가 떠나고 싶은 것은 풍경이 마음을 쓰다듬어주기 때문이다. 훌쩍 떠나는 여행은 외려 휑하고 쓸쓸한 바다가 낫다.

 동해안에 간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7번 국도, 양양 땅에 하조대해수욕장이라는 예쁜 바다가 숨어 있다. 흰 백사장과 푸른 파도만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해수욕장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물빛이 검은 곳, 바다의 뒤채임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해변에 들어서면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하조대 안내판을 보고 들어가면 갈대밭이 반긴다. 수만 평은 될 것 같다. 바람이 갈색의 갈대 숲을 쓸고 다닌다. 갈대 숲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소리를 내며 몸을 눕혔다 세운다. 갈대 숲을 지나 5분여를 가면 하조대 해변이 나온다. 모래밭은 흰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다. 한 움큼 모래를 손에 쥐면 어느새 스르르 빠져나간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모래를 손에 쥐는 것처럼 허망한 것일지 모른다. 손을 펴보면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말고, 나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 일이다.

 해변은 넓다. 폭은 1.7㎞ 정도. 반월 모양으로 반듯하게 휘어 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 본다. 멀리 수평선이 명주실처럼 걸쳐 있다. 바람이 차갑다. 뒤돌아보니 발자국은 어느새 파도가 날름 먹어치웠다. 해변 북쪽에 하조대라는 멋진 절벽이 있다.

 절벽 가까이에 정자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정자 너머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펼쳐진다. 건너편 암봉에는 수령이 백 년 이상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해풍을 맞으며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하조대 정자 건너편에 하얀 등대가 아득한 바다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밤이면 저절로 불이 켜져 동이 틀 때까지 바닷길을 밝혀주는 무인 등대다. 그 옆은 기암절벽.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에 부딪혔다가 산화한다. 바다는 얼마나 깊은지 아예 검은빛이다.

 하조대에서 강릉 방면으로 10분을 내려가면 남애항이 나온다. 자그마한 포구다. 영화 <고래사냥>에서 주인공들이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포구 양편으로 흰 등대와 붉은 등대가 나란히 서 있다. 붉은 등대 쪽으로 기다란 방파제가 나 있다. 등대 바로 앞까지 걸어갈 수 있다. 젊은 연인들이 등대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다.

 등대 앞에 서면 포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움푹 들어간 포구는 넓고 크다. 11월 어느 날, 고깃배 50여 척이 서로를 묶고 세찬 파도를 견디고 있다. 그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몸을 묶어 파도를 이기는 배들처럼 아내와 아이들과 또는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과 몸을 묶어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바로 인생일지 모른다.

 
만대루에 앉아 바라보는 당당한 낙동강

 낙동강은 섬진강이나 만경강 같은 한국 남부의 강과 그 품새가 사뭇 다르다. 서해로 파고 들어가는 섬진강과 만경강 등이 들판을 지나 해지는 곳을 향해 아기자기한 행보로 서민처럼 걷는다면, 낙동강의 큰 물길은 선비의 크고 당당한 보폭을 닮았다. 경사도가 완만한 낙동강은 쉽게 화를 내지 않으며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는다. 험한 산들을 거느린 채 크고 굵게 제 걸음을 간다.

11월은 낙동강이 가을을 담고 흐를 때. 안동 병산서원은 가장 아름다운 낙동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입에서 병산서원까지 가는 길은 10리 남짓. 천천히 걸어가도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닿는다. 걷는 내내 왼쪽으로 낙동강이 함께 한다. 봄에는 나무에서 돋는 연둣빛 새싹이 좋고, 여름에는 울창한 나무 그늘과 숲이 내어주는 시원한 바람이 좋다. 가을에는 단풍이 예쁘고, 겨울에 행여 눈이라도 내리면 눈길을 걷는 맛도 꽤 괜찮다. 11월 초면 이 길에 낙엽이 뒹군다.

 등에 땀이 배일 때쯤 병산서원이 보인다. 서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어가면 솟을대문이 나타난다. 복례문(復禮門)이다. 복례문의 이름은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왔다. 세속에 찌든 몸을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이다. 엄숙과 신성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과 그 아들 유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복례문을 들어서면 정면 일곱 칸으로 길게 선 만대루 아래를 지나게 된다. 만대루 아래로 난 급경사 계단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지나면 강당인 입교당과 만난다. 입교(立敎), 즉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입교당은 강당이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기에 단출하다. 아무런 장식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팔작지붕에 홑처마다.

 입교당 전면에서 보면 양쪽으로 두 동의 건물이 늘어서 있다. 유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다. 이 건물들은 남쪽을 향하지 않고 동향 또는 서향이다. 이는 강당인 입교당의 마루를 향하도록 한 것이다. 입교당 뒤에는 유성룡의 위패를 모신 존덕사와,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나란히 있다. 입교당 마루에 앉는 순간 병산서원의 모습은 바뀐다. 앞으로는 만대루의 시원하게 펼쳐진 지붕 위로 병산(屛山)이 솟아 있다.

 병산은 산의 모습이 병풍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누각 기둥 사이로는 낙동강 푸른 물이 찰랑거린다. 병산은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말 그대로 맑은 물 위에 우뚝 솟은 절벽이다. 뒤쪽에는 그림 세 폭이 들어앉아 있다. 바로 입교당 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 병산서원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의 절정이다. 수령이 족히 3백년은 되었을 배롱나무가 몸을 배배 비틀고 서 있다. 

 병산서원에 별다른 조경 시설은 없다. 하지만 병산서원은 주변 풍광 모두를 정원으로 감싸 안고 있다. 병산서원의 면적은 6천8백여 평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누리는 강과 하늘은 60만 평이 넘는다.

 이제는 만대루에 올라설 차례. 만대루는 병산서원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 마루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대루는 서원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만대루에 앉았을 때 외부 경관은 모두 만대루 안으로 들어온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앞에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오른다. 까칠한 마룻바닥의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온다. 2백명이 앉을 수 있다는 만대루. 천장에는 굵은 통나무 대들보가 물결치듯 걸쳐 있다. 통나무의 휘어짐을 최대한 살려냈다.

 만대루에 앉아 산과 강을 바라본다. 산은 물들고 강은 막힘 없이 흘러간다. 굽어 보이는 복례문 아래로 사람들이 오고 간다. 두 명이 가고 세 명이 온다. 다시 세 사람이 가면 두 사람이 찾는다. 모두 병산서원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들이다.

 그 옛날 선비들은 비 오는 날, 달이 밝은 날, 화창한 날, 만대루에 앉아 글을 읽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만대루에 앉아 글을 읽는 그들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배롱나무가 내내 그들의 등을 희롱했으리라.

 

 
‘그때 그 시절’로 떠나는 장항선 기차

 간이역. 숨가쁜 생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11월이 되면, 문득 간이역으로 떠나고 싶다. 서울 용산역에서 장항선을 타면 ‘그때 그 시절’의 기차 여행에서 맛보는 감동을 되새길 수 있다. 장항선 기차는 용산역에서 하루 스무 번 출발한다. 새벽 5시30분 첫차를 시작으로 저녁 8시55분까지 무궁화호 열다섯 번, 새마을호가 다섯 번 장항으로 떠난다.

 장항선은 천안과 장항을 잇는 길이 1백43.1km의 단선 철도다. 1931년에 전 구간이 개통되었으니 나이가 어느덧 일흔다섯 살이다. 장항선은 예쁘기로 소문났다. 곡선 구간이 유난히 많아서이다. 기차가 굽은 철길을 따라 엿가락 늘어지듯 크게 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장항선을 찾는 사진작가들도 많다. 장항선은 천안·온양·도고·홍성·예산·대천·광천 등 이름난 도시뿐 아니라, 선장·원죽·삼산 등 작은 마을까지 들러 가다보니 철길의 모양이 자연스레 휘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옛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장항선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파란색 비둘기호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초록색 통일호도 없어졌다. 의자에 서너 명씩 끼어 앉고, 선 채로 뒤죽박죽 뒤엉켜서 가던 사람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장항선을 타는 사람들은 예전 장항선이 더 좋은가 보다. “기차가 깨끗해졌네. 전에는 지저분하더니만.” 좋다는 말인지, 아쉽다는 말인지…. 뒤쪽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무심한 소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첨단’ 시설이 불편한가 보다. 꽉 닫힌 문 때문에 할아버지는 애써 담배를 참아야 하고, 할머니는 자동문 앞에서 멈칫거린다.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데, 그것이 대체 어디에 붙었는지 보이질 않는단다. 비둘기호는 창문도 열리고, 객차와 객차 사이의 문도 마음대로 열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잡이만 돌리면 문이 열리던 기차가 좋단다.

 광천역과 주포역 사이에 있는 청소역(옛 진중역)은 간이역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녹색 지붕과 갈색 외벽, 작은 출입구…. 기차를 타기 전에 그려본 소담한 역사의 모습 그대로다. 대합실은 한산하다. 벽에는 장항선 열차 시간표가 덩그러니 붙어 있다. 역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화물 열차가 ‘삐익’ 하는 소리를 내며 들어온다. 한참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청소역 박형구 주임은 “마을 사람들이 마실 댕기러 와유. 농사지은 거 쬐끔씩 주고 가기도 해유”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청소역에서 주포역을 지나면 대천역이다. 대천해수욕장이 가깝다. 대천해수욕장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간이 천막을 치고 복채 1만원에 사주를 봐주는 할아버지도 있다. 대천해수욕장 옆은 대천항 어시장이다. 커다란 고무 함지박에는 광어와 우럭, 농어·멍게·해삼 등이 가득 들어 있다. 고기를 사면 즉석에서 회를 떠준다. 양념 값을 따로 내면 바닷가에서 회를 먹을 수 있다. 방파제에는 조개 구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수십 개 다닥다닥 붙어 있다. 커다란 소쿠리에 담긴 조개가 모두 1만원. 둘이서 먹기에 적당한 양이다.

 밤이 되어 청소역을 다시 찾았다. 역은 어둠 속에 비행접시처럼 둥그렇게 떠 있다.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도 타는 승객도 없다. 역사의 불빛만이 어둠 속에 외롭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네 적적한 생이 위로받을 곳은 사우나도 아닌, 단란주점도 아닌, 가로등 불빛이 어룽대는 이런 간이역이 아닐까 하고.

 

 
갓 잡은 활어처럼 싱싱한 울진 죽변항

 울진 죽변항에 대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새벽 바다로 나가 그물을 걷는다. 2~3일 전에 쳐놓은 그물마다 대게가 가득하다. 죽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 김상도씨(49)는 12월27일 새벽, 그물을 걷기 위해 동해 23㎞ 해상까지 나아갔다. 그물에는 대게가 수북이 걸려 있었다. 그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물을 당겼고 죽변항으로 돌아왔다.

 아침 7시 무렵이면 죽변항은 번잡해지기 시작한다. 대게잡이 배가 줄지어 들어오고 상인과 경매인들이 몰려든다. 선착장에는 대게가 부려진다. 대게는 4열 5행으로 모두 20마리씩 한 분대를 만들어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게다가 반드시 뒤집어서 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바다로 도망가 버린다.

 ‘사열’을 마친 대게는 곧바로 경매에 부친다. 경매인들은 종을 치며 대게가 줄지어 널려 있는 경매장을 돌아다닌다. 상인들은 경매인들을 쫓아다니며 대게를 구입한다. 이 모든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

 울진 죽변항의 아침은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싱싱하다. 선창에는 쉴 새 없이 배가 들락거리고, 경매장에는
고기가 담긴 박스를 나르는 어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경매장을 벗어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볕 좋은 곳에 앉아 한가롭게 그물을 손질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평화롭다. 말린 가자미 몇 꾸러미를 리어카에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욕심이 없다. “이건 곰치 잡는 그물이라서 구멍이 넓어. 작은 고기들은 쏙쏙 빠져나가고 곰치 같은 큰 고기들만 걸리지.” 가까운 영덕 강구항만 해도 관광객으로 북적여 인심이 예전 같지 않지만 죽변항 인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울진 죽변항에서 대게잡이가 시작되는 때는 11월. 이듬해 5월까지 대게가 잡힌다. 국내 생산량의 50%가 울진에서 난다. 한때 대게를 두고 울진과 영덕 사이에 ‘원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울진 사람들에게 원조가 어디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대게면 대게지, 울진대게가 어디 있고 영덕대게가 어디 있냐는 게 어부들의 말이다.

 울진까지 어려운 걸음을 할 거라면 제대로 된 대게를 고르는 방법쯤은 알고 가는 것이 좋다. 대게를 고를 때는 우선 몸에 비해 다리가 긴 것을 택한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들어봐서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싱싱하며, 다리가 붉은빛을 띠고 게 뚜껑에 검은 딱지가 많이 붙은 것일수록 영양가가 높다. 또 같은 크기라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속이 알차다는 뜻이다.

 죽변항 뒤에서 열리는 재래시장을 볼 수 있다면 행운이다. 5일마다 열리는 2·7장으로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만 열린다. 죽변시장에는 뻥튀기를 파는 할아버지도 있다. 국밥집도 있다. 굴뚝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솔솔 새어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구수한 숭늉부터 내어준다. 시장 아무 밥집에나 들어가 5천원만 내면 푸짐한 밥상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옛날 풍경 그대로다.

 죽변항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죽변등대 아래쪽에 있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해안 절벽 외딴 곳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세트장이 거기서 거기지 뭐’하고 생각하고 가보지 않는다면 아까운 그림 하나 놓치는 셈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엽서에나 나올 것 같은 주황색 지붕의 예쁜 교회당이 서 있고 아래쪽에 아담한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극중 현준(김석훈)과 현태(김민준)가 살던 집이다. 교회당과 집 뒤편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아득히 펼쳐진다.

 교회당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아담한 선착장과 만난다. 이것 역시 세트다. 선착장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갈매기가 앉았다 날아가고 파도가 밀려온다. 하늘은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수평선을 따라 고깃배가 지나간다. 힘껏 심호흡을 해본다. 가슴속으로 맑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가득 들어찬다.

 온천욕도 빼놓을 수 없다. 온정면의 백암온천은 유황이 다량 함유된 국내 유일의 방사능천으로 피부병 신경통 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울진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교통이 다소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덕택에 오히려 천혜의 자연경관을 더 잘 보존할 수 있었다. 장엄한 해돋이와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 비릿한 생선  내음과 생명력 넘치는 포구를 만날 수 있는 곳 울진. 삶의 활력을 불어넣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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