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영화, 프랑스 사회를 움직이다
  • 파리 · 류재화 통신원 ()
  • 승인 2006.10.23 1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가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북파 훈련을 견디다 못해 부대를 탈출했다가 모두 사망한 실미도 특수 부대의 진실은 수십 년간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 유족들이 탄원을 계속해도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던 정부는 영화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자 갑자기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때때로 그 어떤 시민단체의 압력보다 영화 한 편이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 대흥행을 거둔 영화 <원주민>도 그와 같은 사례이다. 개봉 2주일 만에 1백15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프랑스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이미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수십 년 동안 제기되어온 해외 식민지 출신 참전 용사 보상금 및 연금 차등 지급 문제를 영화 한 편이 하루 아침에 해결한 것이다.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부담을 느껴 프랑스 정부가 억지 춘향으로 하사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정부의 결정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이미 나왔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먼저 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눈물 어린 ‘특별한 감동’을 느꼈다며, 이 ‘원주민’들에게 합당하고 정당한 보상급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영화 <원주민>은 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어머니 나라’ 프랑스를 나치로부터 지키기 위해 프로방스·알자스 등 격동의 전장에 뛰어든 마그레브계 젊은 병사들의 이야기다.

‘원주민(Indigene)’은 단순한 일반 명사가 아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프랑스 해외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 및 북아프리카 주민들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정확하고 분명하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프랑스 국기 아래서 프랑스인보다 더 프랑스인답게 싸웠는데, 그 대가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화려한 스펙터클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전쟁 역사 영화로도 수작이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마그레브계 병사들로 출연한 네 명의 마그레브계 프랑스 주연배우 모두에게 남우주연상을 몰아주었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엔딩 장면도 등장한다. 살아남은 자는 백발 노인이 되어 하얀 비석이 도열해 있는 국립묘지를 방문해, 죽은 전우들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회한에 잠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리고 할 말을 한다. 이 역사 증언자는 묘지를 나와 자신의 허름한 상이군인 전용 숙소로 돌아간다. 고단하고 병약한 몸이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가난하고 쓸쓸하며 소외되어 있다. 

알제리·튀니지·모로코 등 해외 식민지 출신 상이군인들은 프랑스인의 30%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을 받아왔다. 퇴직연금 또한 이 식민지 나라들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1959년 때 동결된 금액을 2006년 현재까지 받아왔다. 독립했으니 더 이상 프랑스가 아닌 ‘외국’이라는 이유였다.

세네갈 출신의 전 하사관 아마두 디오프 씨가 1996년 처음으로 정부에 탄원서를 냈다. 유럽인권위원회(ECHR) 헌장에 위배되는 법안 문장을 수정할 것을 촉구하는 위원회가 여러 차례 결성되기도 했다. 국제연합(UN) 인권위원회는 ‘국적’에 따른 차별 행위를 이유로 들어 프랑스를 제소했다. 모두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어떤 반응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계기로 2007년 1월부터 ‘원주민’ 병사들은 프랑스인과 똑같은 액수의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었다. 유엔이 하지 못한 일을 영화 한 편이 해낸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