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정치 전면에 서다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11.27 1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뉴라이트 단체의 세몰이가 한창이다. 특히 2007년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정치권에 대한 밀착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11월20일 밤 8시께 강남성모병원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나타났다. 부친상을 당한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를 조문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대표는 뉴라이트 진영의 선발 주자이다.

때마침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우한 이 전 시장은 뉴라이트 재단 안병직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등 뉴라이트 진영 인사들과 한 시간 이상 담소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분초를 쪼개 대권 후보로서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이 전 시장 처지에서 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 머문 셈이다.

이 전 시장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도착했다. 한나라당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상가에 나타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표는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을 보내 조문했다. “지방 일정상 오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말과 함께 조화와 부의금을 보내왔다는 것이 상주측 설명이다.

지난 11월9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출범 1주년을 맞은 이날, 기념식장에는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전 지사 등 한나라당 대선 주자와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축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뉴라이트 여러분의 1년은 거꾸로 가던 대한민국을 바로잡은 놀라운 1년이었다. 다가오는 1년은 대한민국을 다시 바로 세우는 1년이 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뉴라이트 여러분이 있다”라고 추어올렸다. 손학규 전 지사는 “여러분은 올드라이트가 아닌 뉴라이트를 표방하고 있다. 새로운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로 돌아가자는 것도, 개발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라며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을 우회적으로 견제했다. 이날 해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이명박 전 시장은 영상 메시지 형식으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2007년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뉴라이트 진영과 정치권의 밀착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있다. 특히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이른바 빅3 간의 신경전이 조기에 과열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에서는 뉴라이트 세력을 껴안으려는 구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인사는 “본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경선 방식도 점점 더 일반인의 참여 폭이 넓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뉴라이트 세력이 당내 경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차하면 당원으로 가입해서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본선보다 경선이 더 급한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이 당심 못지않게 뉴라이트 진영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전국연합, 11만명 회원 등 거대 조직으로 성장

아닌 게 아니라 2004년 ‘뉴라이트’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2년 만에 뉴라이트 세력은 급격히 성장했다. ‘자유주의 연대’ ‘뉴라이트전국연합’ ‘선진화 국민회의’라는 3대 대표 선수 외에 교과서포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헌법 포럼, 한반도선진화재단 같은 다양한 모임이 결성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매체들도 속속 등장했다(17쪽 상자기사 참조). 이들은 행동 방식이나 관심을 두는 사안 등에 있어서는 단체별로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반좌파, 반극우’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뉴라이트’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외연 확대는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회원 1천명으로 시작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출범 1년 만에 11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지역 조직으로는 15개 광역시·도 연합과 1백83개 시·군·구 조직을 이미 결성했고, 부문별로도 교사·학부모·청년·종교·의사·노동자 등 9개 부문의 뉴라이트 조직을 만들어 5만2천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지역과 직능을 양대 산맥으로 삼고 있는 정당 조직과 비슷한 방식으로 세 불리기를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22쪽 딸린 기사 참조).

지식인 중심의 이론 운동을 전개 중인 대다수 뉴라이트 단체들과 달리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이처럼 대중 조직을 지향하는 데는 이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진홍 목사(상임의장)의 영향이 크다. 당초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의 권유로 뉴라이트 운동에 합류한 김목사는 1년 만에 뉴라이트의 대중화, 정치 세력화를 표방하며 딴살림을 차렸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자민련 인사들이 ‘뉴라이트 충청연합’을 만들겠다며 찾아왔다. 내부 회의 끝에 자유주의연대의 기치와 맞지 않는다며 거리를 두기로 했는데, 김목사가 따로 이분들과 만나 모임을 만들었다.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뒤집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고, 이를 계기로 갈라서게 되었다”는 것이 신지호 대표의 설명이다. 뉴라이트 진영이 크게 분화한 계기가 바로 ‘정치 세력화’에 대한 시각차였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장기 목표는 ‘선진한국 건설’, 단기 목표는 ‘2007년 대선에서의 정권 교체’라고 밝힌 김목사는 지난 9월 한나라당 소장파와의 모임에서 정권 교체를 겨냥한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2006년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자체 역량을 극대화하고, 내년 1~2월에는 보수 단체의 대통합을 이루고, 3~4월에는 한나라당과 연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바 보수 대연합을 위한 시간표인 셈이다. 그 첫 번째 고리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유석춘 교수(연세대·사회학)가 강재섭 대표가 주도한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런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정치 세력화에 대해 한나라당은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분위기이다. 두 번이나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나라당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단체나 보수 논객의 절대 부족, 인터넷 매체에서의 부진 등인데,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줄 수 있는 세력이 짱짱하게 힘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은 7·26 재·보선에서 민주당 조순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등 한나라당 차원에서는 하기 힘든, 그러나 한나라당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세 불리기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당장 뉴라이트 진영 내부에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정치 지망생들의 집합소” 비판도 만만찮아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뉴라이트 운동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제1의 물결이 완력이고, 제2의 물결은 금력, 제3의 물결은 지력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지력이고, 한나라당에 부족한 것도 지력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진영이 비전·정책·전략 등 한나라당에 부족한 지력을 보완해서 한나라당이 건강한 보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하는데, ‘뉴라이트전국연합’이 1주년 행사에서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완력’이었다. 이건 결코 ‘뉴’가 아니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보니 뉴라이트전국연합이 검증되지 않은 각 지역 정치 지망생들의 집합소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청 지역 한 언론인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등 기존 정당에서 배제된 인사들이 내년 대선과 내후년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할 통로를 얻기 위해 이 모임에 가입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11월2일 창립식을 가진 뉴라이트 광주·전남 연합의 지도부 명단을 살펴본 이 지역 출신 언론인 역시 “지역민들이 이름을 알 만한 인물은 거의 없다”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고, 뉴라이트전국연합에 대한 한나라당의 기대가 큰 탓인지,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뉴라이트 지역 조직의 자리를 놓고 갈등 양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나라당 지지세가 강한 영남에서는 중앙에서 공동대표를 지명한 데 반발해 기존 대표가 반기를 든 사례도 발생했다.

한나라당 안에도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조직 확대를 떨떠름하게 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각 지역구의 원외 위원장들이다. 국회의원이야 이미 기득권이 있기 때문에 덜하지만, 다음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이들 원외 위원장들에게 지역별로 결성되고 있는 뉴라이트 지역 연합은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존재다. 뉴라이트 대표 선수들이 당내 공천 심사에서 잠재적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고, 장차 한나라당 기존 조직과 부딪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원외위원장은 “우리 지역에 뉴라이트 지역 연합이 생긴다고 초청장을 들고 왔는데 솔직히 심정이 묘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게 나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전반적 기류이지만,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지분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런 일련의 비판적 시선에 대해 뉴라이트전국연합측은 한마디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폄훼한다. 이 모임의 공동대표를 하다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로 영입된 유석춘 교수는 “정치 참여 시기를 두고 (뉴라이트 진영 안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아예 정치 참여를 안 하겠다고 한다면 자유주의연대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한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지나치게 대중·조직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중적 지지 없이 엘리트 집단의 사상운동만으로 정치를 바꿀 수는 없다. 대중에는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뿐 아니라 과거 정치권 인사나 앞으로 정치권에 들어가려고 하는 인사도 포함해야 한다. 이 사람은 안 되고, 저 사람은 안 된다고 하면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쳤다.

뉴라이트 진영의 정치 세력화가 쟁점으로 떠오른 데 대해 열린우리당은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한나라당의 우군임이 분명한데도 시민단체라는 점 때문에 뉴라이트 진영을 공격하기가 마땅찮았는데, 이제는 정치적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뉴라이트를 향해 ‘신 유정회(공화당 시절 지식인들이 박정희 정권에 이름을 빌려주고 국회의원 자리를 받았던 유정회나 마찬가지라는 뜻)’라고 빗대는가 하면, 김현미 의원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시민단체라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한나라당 2중대다. 지역에서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을 한나라당 입성을 위한 정치적 통로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막후에서 이뤄지는 거래가 많다는 정보가 있다”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정권 교체를 위해 더욱더 정치 세력화해야 한다는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그것은 ‘뉴라이트’가 아니라며 염려하는 다른 뉴라이트 단체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기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면서, ‘뉴라이트’는 갈수록 커지는 내년 대선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