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싫다고 오류까지 덮어서야…”
  • 홍진표(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
  • 승인 2006.12.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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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의 ‘뉴라이트 교과서’ 비판

 
군사 정권과 유신 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 포럼’의 역사 교과서 편찬 계획이 논란을 빚고 있다. 진보 학계뿐 아니라 뉴라이트 진영 내부에서도 이들의 역사 인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 뉴라이트 활동가인 자유주의연대 홍진표 사무총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지난 11월30일 ‘교과서 포럼’이 주관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이렇게 고쳐 만듭니다’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폭력 사태로 인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4·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표기했다는 발제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미리 알려지면서 4·19 관련 단체 회원들이 회의장을 점거하고 발표자 등을 폭행해, 심포지엄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교과서포럼은 지난 2005년 1월 박효종·이영훈 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뉴라이트 계열 단체다. 이들은 기존 중·고등학교의 교과서, 특히 역사 교과서의 왜곡과 편향이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여러 차례 토론회와 책자 발간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교과서포럼의 문제 제기는 상당한 반향을 불렀으며, 교과서 출판사들은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교과서포럼은 기존 교과서의 비판을 넘어 새로운 대안 교과서 제작을 추진했으며, 그 1차 작업으로 이번에 집필을 의뢰받은 학자들을 불러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발제문 가운데 4·19, 5·16, 유신 체제, 5·18 등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들에 대한 재평가가 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교과서포럼이 뉴라이트 계열이기 때문에 권위 체제를 옹호하는 듯한 주장이 뉴라이트 전체의 견해인 것처럼 알려져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가 다를 바가 없다’는 식의 뉴라이트 역사 인식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번져갔다. 필자도 뉴라이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실망의 소리를 여러 군데서 들어야 했다.

그러나 “부문별로 필자를 정해서 집필을 하다 보니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안이 나왔고, 교과서포럼 내부에서조차 비판적 의견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라고 박효종 교과서포럼 상임대표가 해명했듯이 문제의 내용들은 교과서포럼의 공식적 견해가 아니며, 이 내용이 대안 교과서로 확정된 바도 없다.

교과서포럼의 심포지엄이 무산된 뒤 경황이 없는 가운데,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5개 단체는 회합을 갖고 교과서포럼이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의 시안을 검토했으며, 몇몇 대목에서 사회적으로 우려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 다섯 개 단체는 11월30일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첫째, 5·16은 결과적으로 산업화를 성공시킨 세력의 탄생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재해석될 수는 있어도 쿠데타였다는 그 집권 과정의 문제점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둘째, 4·19는 헌법 전문에 그 중요성이 적시되어 있듯이 당연히 혁명으로 표기되어야 한다. 셋째, 유신 체제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과 희생은 엄정히 기록되어야 한다. 넷째, 민주화운동으로서의 5·18의 의미를 결코 평가 절하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전두환 정권 탄생 과정의 반민주성이 또렷이 서술되어야 한다.

너무 가까이 있는 과거를 평하는 작업은 항상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역사적 흐름의 결론이 아직 뚜렷이 나지 않아서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이해 관계자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가까운 과거를 교과서로 다루는 경우 대체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벗어나는 논쟁적 평가는 가능한 배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교과서포럼의 시안을 집필한 학자들은 우선 교과서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지 못했다고 본다.

나아가 교과서용이냐 아니냐를 떠나 이번에 발표된 교과서포럼 시안의 문제 대목들은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역편향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박정희 정권 시기를 비판 일변도로 보는 집권 민주화운동 세력의 평가는 산업화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명백한 성과를 부정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역으로 박정희의 유신 체제가 민주화에 역행했던 오류에 대해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도 인정하기 어렵다.

‘열린 토론’ 무산시킨 4·19 단체 폭력도 문제

오류 없는 역사, 완벽한 역사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특히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는 국민의 정권 선택권을 빼앗은 민주화의 역주행이 명백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지식인들이 등을 돌리고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커다란 역사적 손실을 낳고 말았다. 정권의 처지에서도 유신 체제는 오만과 안이함을 불러 널리 알려졌듯이 급속히 말기적 증세에 빠지고 결국 몰락을 재촉하고 만다.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도 지역적 소외 의식을 강조한 점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부마항쟁으로 시작된 반 유신 투쟁의 연장선에 놓여 있으며, 전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표출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의 개혁 개방 세력들이 마오쩌둥을 혁명과 건국의 아버지로 여전히 추앙하면서도 문화혁명의 극좌적 오류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비판하고 있는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자유주의연대와 교과서포럼 등 뉴라이트 운동단체들은 역사의 공과를 분명히 하며 미래로 나아가자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특히 산업화의 성취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되, 권위주의적 체제와 독재 통치는 비판해왔고, 세계사에 유례 없는 역동성을 보여준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올바르게 껴안되, 시대착오적 좌편향을 넘어서자고 주창해 왔다. 교과서포럼은 앞으로 대안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건강한 역사 의식에 바탕을 둔 균형 잡힌 의견들을 수렴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나가야 할 것이며, 그럴 것으로 믿는다.

한편 4·19 관련 단체들의 폭력은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발제문에 대한 이들의 분노는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얼마든지 토론을 통해 논박할 수 있는데도 주먹과 발길질을 앞세운 것은 권력의 부정과 폭력에 반대한 4·19 정신을 스스로 모욕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번 심포지엄의 토론자들은 논란이 되었던 대목들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가할 작정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결국 토론회의 무산은 이들의 입을 막은 것이다. 잘못된 견해는 짓밟아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앞에서 공론화되고 그 속에서 비판받아 사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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