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봉제공, 미싱에 날개달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2.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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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신동 '수다공방' 수강생들, 자작품 패션쇼 열어

 
 재봉사 경력 23년인 전홍수씨(41)와 미싱사 경력 20년인 최 정씨(38) 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 패션쇼 리허설 현장에서였다. 평생 옷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았음에도 자기가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된 것이 못내 어색한 듯 전홍수씨는 벌쭉 웃음만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 팔자에 없는 패션 모델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수다공방’ 때문이다. 수다공방은 (사)참여성노동복지터가 지난 6월부터 서울 창신동 일대 봉제 노동자들을 위해 운영해 온 직업 훈련 교육 프로그램 명칭이다(상자기사 참조). 전씨와 최씨는 지난 10월 수다공방 3기생으로 이 프로그램에 합류한 뒤 매주 두 차례씩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강도 높은 직업 훈련을 받아왔다.

그런데 봉제 현장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도 직업 훈련이 새로 필요한 걸까? 최 정씨의 답변은 “반드시 필요하다”이다. “20년 전만 해도 미싱사들의 기술을 곁눈질로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고 싶어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라는 최씨는 수다공방에 와 비로소 기술을 전수해 주는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배의 부재’는 창신동의 쇠락에서 비롯한다. 전씨나 최씨가 이 동네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한때 ‘봉제 산업의 메카’로 통하던 창신동이 아직은 그 영화를 유지하고 있던 1980년대 초반이었다. “내가 처음 취직한 공장만 해도 미싱 라인이 7개였다”라고 전씨는 회고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씨가 일하는 사업장 인원은 네 명이 전부이다. 재단사인 전씨를 포함해 미싱사, 미싱 보조, 인타사(박음질 처리 기술자) 등이다. 20년새 이렇게 규모가 쪼그라든 공장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 전씨 개인 탓은 아니다. 오늘날 창신동 일대 봉제촌은 가내 수공업 규모로 대부분 재편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동남아산 저가 의류 제품이 물 밀듯 밀려들어 오면서 국내 봉제 산업이 설 자리를 잃은 탓이다.

노동 조건도 당연히 후퇴했다. “공임이 갈수록 줄어드니 별 수 있나. 수입을 유지하려면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밖에.”라고 전씨는 말했다. 1970년대 전태일은 하루 12~13시간씩 노예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을 안타까워 했지만, 30년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부부는 “하루에 보통 12~15시간 일한다”라고 말했다.

한때는 이들도 자영업자로 독립하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다. 그러나 곧 접었다고 했다. “말이 사장이지, 돈은 몇 푼 남지도 않으면서 납품 시한을 맞추기 위해 출퇴근 시간도 없이 미싱을 탈 일이 끔찍해서였다”라고 최씨는 말했다(수다공방 수강생 중에도 이런 영세 고용주가 상당수 있다). 그나마 고용 노동자인 이들의 퇴근은 보통 밤 10~11시에 이루어진다. 그 사이 집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이 직접 밥을 지어 3학년인 동생을 거둬먹이고 재운다.

 
자녀 얘기를 하다 말고 목이 메인 듯 말을 잠시 멈춘 최씨는 “이 동네가 지긋지긋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봉제 일을 함께 시작했던 주변 사람들은 거의 떠났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달리 비빌 언덕도 없기 때문에’ 이곳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창신동에 남은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실제로 수다공방에 모여든 1~3기 강생 40여 명이 그러했다. “평생 이 동네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우울했다. 왜? 희망이 없으니까.”라고 말하는 아내 최씨는 그런 자신을 수다공방이 극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했다.

수다공방에서는 무엇보다 생생한 재교육이 이루어진다. 저가 수입 옷과 경쟁할 단순 디자인의 남방·스커트만 만들어내느라 기술이 진보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할 지경이었다는 이들 부부는 선배들로부터 비장의 옷 짓는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이 감격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더 좋은 것은, 서울지방노동청이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덕분에 기술을 배우는 일에서부터 배운 기술을 적용해 실제로 옷을 만들어보기까지 전 과정이 모두 ‘공짜’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와 패턴 뜨는 기술을 체계적으로 처음 배웠다는 전씨는 “개인 과외로 배우려면 3백만 원은 들여야 한다. 배워도 실전에서 써먹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릴텐데 여기서는 곧바로 옷을 만들어볼 수 있어 그럴 염려가 없다”라고 말했다.

임상훈 교수(한양대·경영학)는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식이 아니라 노사가 자발적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이에 합의해 직업 훈련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수다공방의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비록 영세 봉제 사업장의 경우 사장을 제외하면 고용인이 1~2명에 불과해 노사 구분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수다공방이 노사 공동 재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기적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희망이 보이니까 살 맛이 난다”라고 말하는 전씨와 최씨는 오는 12월 1일 각자 만든 옷을 입고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릴 패션쇼 무대에 서게 된다(www.sudagongbang.org). 수다공방 1~3기 수강생 36명이 함께 서는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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