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촌’ 거쳐 초고층까지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2.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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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찬밥 취급을 받았다. ‘빈민 주택’ 내지 ‘질 낮은 주택’ 취급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파트가 ‘혁명 한국의 상징’(1962년 마포아파트 준공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치사)이 되기를 바랐던 박정희 군사정부는 새로 개발한 강남 땅에 정책적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정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치적도 홍보하고 정부 사업에 쓸 거대 재원도 챙긴 셈이었다. 아파트는 이때부터 중산층이 선망하는 ‘현대성의 상징’이 되었다.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수십 대 1로 치솟으면서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1970년대 말 반포아파트를 분양할 때는 갑자기 불임 시술이 유행하는 촌극도 있었다. 당시 산아제한 정책을 펴던 정부가 불임 시술자에게 청약 우선순위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 아파트는 한동안 ‘내시촌’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30년이 지난 오늘날, 3자녀 이상 가구에 청약 우선순위를 주게끔 정책이 바뀐 대목은 촌극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1999년 분양가 자율화가 전면 실시되면서 아파트는 날로 고급화의 길을 걸었다. 분양가를 올리려는 건설사 이해와 차별화된 주거 공간을 원하는 특정 소비자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2002년 강남에 타워팰리스가 들어선 이후에는 초고층·초호화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도시의 풍경을 또다시 바꿔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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