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저주’를 예술로 꽃피우다
  • 허용선 여행칼럼니스트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2.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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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삿포로·하얼빈 ‘눈꽃 축제’

 
삿포로. 눈이 많은 지역이다. 1년에 넉 달은 눈에 갇혀 산다. 하얼빈. 매서운 날씨에 눈도 얼음도 많은 지역이다. 11월에 겨울이 시작되어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진다. 삿포로(일본 홋카이도)와 하얼빈(중국 흑룡강성)은 지역적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켰다는 데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때 자연의 저주로 여겨졌던 눈·얼음·바람을 세계적 관광 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삿포로 눈 축제’와 ‘하얼빈 눈꽃 축제’는 오늘날 아시아를 대표하는 양대 겨울 축제로 손꼽힌다. 1~2월에 열릴 이들 축제를 미리 가보았다. 

 

삿포로 눈 축제

삿포로는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섬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로,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우며 눈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잘 살린 삿포로 눈 축제(雪祭, 유키마쓰리)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다.

삿포로 시민들은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열악한 자연 환경 속에서 무언가 즐거운 일을 만들어보려고 궁리한 끝에 눈 축제를 생각해냈다. 1950년, 첫 축제는 눈 싸움 대회와 눈 조각상 만들기 대회로 치러졌다. 첫 축제였는데도 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삿포로를 찾았다. 그후 시민과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나날이 발전해 지금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과 함께 세계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삿포로 눈 축제는 매년 2월5일부터 11일까지 1주일 동안 열리는데, 해마다 2백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 축제 기간에는 국제 눈 조각 경연대회를 비롯해 미스 유키마쓰리 선발대회, 패션쇼, 스키 대회, 레이저 광선 쇼, 외국인 노래자랑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축제는 주로 오도리 공원, 스스키노 유흥가, 마코마나이 등에서 벌어진다. 볼거리가 가장 풍성한 곳은 오도리 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국제 눈 조각 경연대회가 열린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나흘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팀들이 작품 실력을 겨룬다. 한국은 해마다 용평 눈 조각 축제에서 우승한 팀이 참가하는데, 제18회 때 ‘부활’이라는 작품으로 우승하고 1997년에는 ‘21세기 포세이돈’이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오도리 공원에는 시민들이 제작한 거대한 눈 조각상을 포함해 다양한 눈과 얼음 작품도 전시된다. 길이가 1.5km가량 되는 오도리 공원은 축제 기간 내내 시민과 작가들의 얼음 조각으로 북적댄다. 전시되는 눈 조각 작품은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각국의 유명한 건축물을 본뜬 거대한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인도의 타지마할, 파리의 개선문, 일본의 고성,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 실물 크기로 제작된다.

조각에 사용되는 눈은 일본 자위대가 수송을 담당하는데 보통 5t 트럭 7천7백 대 분량의 눈이 쓰인다. 눈이 적게 온 1997년에는 자칫하면 눈 축제가 열리지 못할 뻔했으나, 자위대가 홋카이도의 북쪽까지 달려가 눈을 실어온 덕에 간신히 개최할 수 있었다. 

 
축제 기간에 삿포로의 중심가인 오도리·스스키노·나카지마 공원은 이색적인 눈 조각상으로 뒤덮인다. 밤하늘을 수놓은 전등 장식과 붐비는 인파로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는데, 블록마다 세워진 작품들은 수많은 오색등과 조화를 이루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오도리 공원에서는 다양한 눈 조각상과 각종 공연이 연이어 벌어지고, 마코마나이 대회장에서는 초등학생들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눈 조각 마스코트가 눈길을 끈다.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스스키노 유흥가에도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전시된다. 각 업소에서 출품한 작품들로 라면이 담긴 그릇, 생선회를 넣고 얼린 모습, 생맥주 잔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얼음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축제가 시작되면 스스키노 거리를 비롯해 각 축제의 현장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격렬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따위의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가까운 사람끼리 거대한 눈 조각상을 감상하거나 흥겨운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할 뿐이다.

2007년 삿포로 눈 축제 자료는 일본국제관광기구 홈페이지(www.welcometojapan.or.kr)에서 구할 수 있다.

 

 
하얼빈 눈꽃축제

하얼빈은 정신이 번쩍 나는 도시이다. 안중근 의사의 역사적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어서만은 아니다. 겨울의 하얼빈은 몽롱하게 다니려야 다닐 수가 없는 곳이다. 1분 이상 한자리에 멈춰 서 있다가는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절대 추위! 그것 때문에도 사람들은 몸을 바삐 움직인다. 따라 움직이다 보면 머릿속이 절로 명징해진다.

기자가 방문한 12월 초, 하얼빈 최저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첫눈이 내려 길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데도 하얼빈 사람들은 추워하는 기색이 없다. 미인대회 수상자를 매년 배출한다는 지역답게 하얼빈에는 제법 미인들이 많은데, 이 여인들이 얇은 레깅스 위에 치마만 걸친 채 잘도 하얼빈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하얼빈에서 나고 자랐다는 조선족 나정일씨는 한술 더 뜬다. “이 정도 날씨면 훈훈한 겁네다. 영하 30도는 돼야 좀 쌀쌀하구나 하죠.” 안내 책자를 찾아보니 하얼빈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9.7도다. 

이 빙설(氷雪)의 도시에 겨울이면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이 100만명 넘게 밀려든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겨울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하얼빈 눈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하얼빈 눈꽃 축제는 빙설(氷雪) 축제 또는 빙등(氷燈) 축제라고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눈, 얼음, 그리고 등을 이용한 빛이 주제가 된다. 
 

 
눈꽃 축제는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자오린 공원과 쑹화강 북쪽에 있는 타이양다오(太陽島) 두 군데서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전세계에서 유명한 얼음 조각가들이 모여들어 유명 건축물이나 동물·여신상·미술품 등의 모형물을 만들어 전시하는데, 그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타지마할이나 자금성 같은 세계적 유물들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다. 이들 모형물은 모두 하얼빈을 감싸고 흐르는 쑹화강의 얼음과 눈을 이용해 만드는데 축제 기간의 총 얼음 사용량만 12만㎡, 눈 사용량만 10만㎡에 이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낮보다 밤이다. 오후 4시 이후면 이들 얼음 조각 사이로 오색등이 밝혀지면서 환상적인 장관이 연출된다. 얼음 유물 사이를 배회하다 지치면 휴게소 얼음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맛 좋기로 소문난 하얼빈 맥주를 시켜 먹을 수도 있다. 맥주 또한 얼음으로 조각한 맥주 잔에 담겨 나온다.

내년 1월5일부터 두 달간 열리는 2007년 하얼빈 눈꽃 축제는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한·중 수교 15주년에다 중국 정부가 공식 지정한 ‘2007년 한국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하얼빈 시가 ‘한류’를 이번 축제의 기본 테마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축제장을 찾으면 광화문·경회루·첨성대·석굴암·수원 화성 등을 실물 크기로 되살려놓은 얼음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의 얼음 동상도 세워진다.           

시간 나는 짬짬이 하얼빈 시내 곳곳을 걸어다녀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이곳에서는 길을 건너기 위해 지하도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나라로 들어서는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일단 계단을 내려가면 앞을 막아서는 두터운 장막 하나. 그 장막을 헤치고 들어가면 1m 앞에 두 번째 장막이 놓여 있다. 이 장막도 헤치고 들어가면 세 번째로 또 다시 철문이 기다리고 있다. 추운 날씨로부터 실내를 보호하기 위한 삼중 보호막인 셈이다.

산책과 쇼핑을 동시에 즐기려면 중앙대로가 제격이다. 19세기 말 러시아인을 필두로 많은 외국인들이 살았다는 중앙대로 주변은 지금도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도로 양쪽에 늘어서 있는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하얼빈이 왜 ‘동방의 작은 파리’나 ‘동방의 작은 러시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단 지금 가면 하얼빈 명소 1호로 꼽히는 소피아 성당 내부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러시아 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이 성당은 내년 3월까지 내부 수리 중이다. 중앙대로는 야경도 매우 훌륭하다. 빙등 축제로 쌓은 노하우 덕분인지 하얼빈의 거리 조명은 수준급이다.

좀더 추위에 익숙해지고 나면 바람 매섭기로 소문난 쑹화강 일대도 가보자. 1957년 하얼빈 인민들의 힘으로 홍수를 막아낸 것을 기념해 세웠다는 방홍기념탑을 기점 삼아, 쑹화강을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는 스탈린 공원을 걷다 보면 눈 덮인 강 전경을 원없이 조망할 수 있다(강이라기보다 바다에 가까워 보이지만). 걷다 지치면 강둑 아래로 내려가 관광 마차를 타고 얼어붙은 쑹화강 위를 달려볼 수도 있다. 

그러다 동상 걸리면 어떡하냐고? 하얼빈을 방문할 때는 남녀노소 공히 반드시 내복을 챙기라고 권하고 싶다. 스키 탈 때 얼굴을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마스크나 버프 종류도 ‘강추’한다. 장갑은 물론 기본이다. 하얼빈 인근에는 스키장과 눈썰매장도 많다. 겨울 장비를 꼼꼼히 챙겨가면 이런 데를 다닐 때도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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