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뼈들고, 유리 헬멧 쓰고 베니스 비엔날레에 홀로 도전
  •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 승인 2006.12.2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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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이형구]

 
서울 연남동 주택가에 있는 평범한 사무용 건물 1층.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실색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른 평 남짓한 실내 곳곳에 동물 뼈다귀가 널브러져 있기 때문. 물론 자세히 보면 합성수지로 만든 가짜 뼈다. 색깔이나 모양새가 해부학적 구색을 갖추었지만 입이나 손발 등이 익살스럽게 과장되거나 변형된 것이, 척 봐도 로드 러너와 코요테, 혹은 도널드 덕이나 벅스 바니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조각가 이형구씨(38)의 작업실 겸 생활 공간. 뼛조각들은 그가 수년째 만들고 있는 <아니마투스> 연작에 쓰였거나 쓰일 부속품들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밥을 지어먹고, 잠을 잔다. 그는 지난해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가 되면서 대학 강의까지 중단했다. 미혼인 그는 그야말로 24시간 예술 활동에만 전념하는 전업 조각가다.

일상의 이미지를 비트는 것이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지만, 이씨는 그 대상을 자신과 미디어 속의 문화 아이콘으로까지 확대시켰다. 미국 유학 시절 외모 콤플렉스를 느낀 그는 군데군데 볼록 렌즈를 단 유리 헬멧을 쓰고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다. 입과 눈 등이 외계인처럼 확대되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비디오 카메라에 담겼고, 전시장에서 상영되었다. 귀국한 뒤 그는 이 ‘헬멧 시리즈’로 2004년 성곡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살을 발라내고 뼈대만으로 만화 캐릭터를 재현한 <아니마투스> 연작으로 2006년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이형구가 누구냐고? 미술 동네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겨우 4년밖에 안 되는 신인이다. 개인전도 단 두 차례 가졌을 뿐이다. 그런 그가 최근 떴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작가로 선정되었기 때문. 한국 미술계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가들을 보내기 시작한 1995년 이래 작가 한 명이 홀로 참가한 사례는 없었다. 보통 2~3명, 많게는 15명까지 떼로 참가하던 행사에 젊은 그가 ‘단독 국가대표’로 뽑혔으니 화제가 될 만했다. 이에 대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안소연씨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냉정한 국제무대인 만큼 나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가장 경쟁력 있는 작가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7년 홍익대 조소과 재학 시절 조수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따라간 적이 있다. 당시 세계 미술의 현장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그는 졸업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0년이 지난 현재, 그가 이번에는 주인공이 되어 베니스 무대에 다시 서는 것. “당시 나도 여기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겠다.” 이씨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신의 ‘헬멧’ 작업과 <아니마투스> 연작을 함께 전시하며, 개막일에 퍼포먼스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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