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돌고 인터넷 돌아 취업 시장 ‘블루오션’ 개척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2.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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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석 인크루트 대표

 
천문학과 인터넷의 공통점은? 일반인으로서는 요령부득이다. 그런데 이 둘 때문에 인생을 바꾼 사람도 있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33)가 그렇다. 국내 최초의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를 개설한 지 올해로 9년째. 나이는 비록 젊지만 이미 만만찮은 관록을 쌓아온 이 청년 벤처 사업가는, 사춘기 이후 우주에 미치고 인터넷에 빠져 ‘후회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의 첫사랑은 우주였다. 고교 시절, 선생님을 따라나선 별 보기 여행에서 그는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신비에 단숨에 매료되어 진로를 바꿨다. 그러나 1993년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 입학한 이씨를 또다시 울렁이게 만든 상대가 나타났다. 이제 막 세상에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이 그것이었다. “천문학과 인터넷은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한 신비로 가득 차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비슷했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그러나 연인을 둘씩 섬길 수는 없는 법.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인터넷으로 창업을 하는 길에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창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흥미를 느낀 것은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인터넷 보급 초창기인 당시만 해도 일반인이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았다. 낮에는 공익근무 요원으로 일하면서 밤잠을 아껴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한 결과 1997년 그는 웹상의 무수한 정보 중 유익한 것만을 신속하게 찾아주는 한·영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국내외 네티즌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ZIP!’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첫 번째 좌절이 찾아왔다. 그 와 더불어 ‘ZIP 인터넷연구회’라는 비영리 단체를 꾸려 일하던 동료 4명이 어느 날 대형 포털 사이트로 모두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스물네 살의 그는 한강을 앞에 두고 울부짖었다. 배신감과 좌절감에 몸부림치다 그는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제대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의 세계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마침 친구 서미영씨(인크루트 공동 창립자 겸 이사)와 통화를 하다 창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요즘 일자리가 최대 관심사잖아. 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때?” 때는 바야흐로 외환위기로 인한 고통이 가중되던 1998년 초였다.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구조 조정·정리 해고로 평생 직장의 개념마저 급속하게 사라져가던 시기, 야심차게 탄생한 ‘인크루트’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로부터 9년. 수많은 벤처의 탄생과 몰락을 지켜본 그에게 살아남은 비결을 묻자 뜻밖에도 “우리는 늘 거꾸로 갔다”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벤처가 호황을 누리던 시기, 인크루트는 동분서주해야 했다. ‘취업 중계 사이트도 벤처라 할 수 있느냐’며 투자자들이 이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벤처 붐이 스러져갈 즈음 인크루트는 오히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창업 이후 맞닥뜨린 최대 위기, 곧 2000년 말 미국 나스닥발 ‘블랙 먼데이’로 인한 도산 위기를 유료화 전략으로 정면 돌파한 덕분이었다. ‘이제껏 무료로 얻던 정보를 누가 돈 내고 보려 하겠느냐’라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인크루트는 그 뒤 매년 3백% 이상의 성장을 거듭하며 업계 1위로 발돋움했다. 단 업계 최초로 단행한 유료화로 인해 후발 업체들의 추격을 허용하게 된 것은 그로서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씨는 “우리가 고객을 직접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노동 시장이 유연해질수록 우리가 제공하는 양질의 정보를 활용해 인재를 기업과 연결시켜주거나 구인·구직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는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위한 아스팔트를 닦고 있다”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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