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분의 1초’ 속도로 분자들의 동작을 찍었더니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2.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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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한국 화학의 미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효철 교수(35․화학과)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모두가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때 그는 용감하게 도전해 과제를 해결했다.

2005년, 그는 액체에서 일어나는 분자의 구조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구명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화학자들도 ‘도저히 풀 수 없다’며 포기하던 일이었고, 화학 교과서에서조차 불가능한 연구라고 규정한 과제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물 한 잔에도 수많은 물 분자들이 춤추고 있다. 대부분 화학 반응은 이같은 용액에서 일어나는데 지금까지는 용액에서 일어나는 미시 세계, 즉 나노보다 작은 분자의 정확한 구조 변화를 실시간으로 직접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 분자들의 움직임이 작고 너무나 빨라 카메라나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교수는 빛을 이용해 액체 속 분자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했다. 액체에 빛을 쪼인 후 일어나는 분자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100억분의 1초 간격으로 찍었다. 분자들이 움직이는 모양을 동영상처럼 실시간으로 촬영하면 화학 반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하게 응용 가능하다. 예컨대 10억분의 1m 크기인 나노 물질이나 생체 단백질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알아낼 길이 열린 것이다.

이교수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단백질 구조를 실시간으로 구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단백질 구조를 ‘동영상 촬영’할 수 있다면, 신약 개발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단백질 연구는 신약 개발에서 아주 중요하다. 약 대부분이 우리 몸속 단백질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단백질 구조를 찍은 스틸 사진을 보고 신약을 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교수의 연구가 성공하면 단백질 구조가 용액 속에서 변화하는 동영상 사진을 보면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이효철 교수는 “우리 몸 안에서 단백질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면 인체에 훨씬 잘 반응하면서도 부작용이 적은 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화학은 미시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그걸 바탕으로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학문이어서 매력적이라는 것이 이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의사 또는 판․검사와 비교하면, 과학자는 고생한 것에 비해 대우가 후하지 않은 직업이다. 그러나 내 연구로 인해 인류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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