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정치, 미국을 품을까
  • 조재민(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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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상원의원, 펠로시 하원의장 리더십 놓고 논쟁 '후끈'

최근 미국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힐러리 상원의원이 ‘모성 정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당수 미국 여성들은 두 여성 정치인의 역할에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두 사람은 할머니 혹은 어머니로서 정치에 부드럽고 자상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들의 역할을 놓고 모성 정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공방이 갈수록 도를 더해간다. 얼마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미국에 모성 정치가 출현할 때가 되었다고 전망했다.
미국 사회에서 고위 공직, 특히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오랫동안 다소 억울한 충고를 받아야 했다. 여성의 부드러움은 될수록 죽이고 강인함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은 여성이 국가를 이끌 만큼 강인해질 수 있느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성정치인 지지 그룹인 에밀리 리스트는 1988년 내부 보고서에서 ‘여성 후보자들은 자질과 힘과 강인함을 유세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고 충고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다이앤 페인스타인은 1971년과 1990년 ‘강인하되 자상한 여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저돌적 후보들도 ‘여성은 나약하다’는 의구심을 없애느라 고전했다.


미국 남성 64% “힐러리, 대통령 자질 있다”


 
일부 여성들은 사회 활동을 당연시한다. 워싱턴 주 민주당 상원의원 패티 머래이는 1992년 ‘테니스화를 신은 어머니’ 이미지를 내세워 남성 정치인들의 멸시를 일축했다. 그러나 15~20년 전까지도 여성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유보 심리는 상당했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 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들이 수세에 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정치 분석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유권자들은 여성이 고위 공직에 진출하는 데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펠로시나 힐러리 같은 여성 정치인들에게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은 오랜 기간 대중에 노출되어 권력의 속성을 익혔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여성으로서의 강인함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졌다.
힐러리의 대통령 자질은 최근 CBS 여론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조사에 응한 남성의 64%는 힐러리가 리더십을 갖추었다고 대답했다. 여성의 긍정적 응답은 74%나 되었다. 민주당 참모이자 페인스타인을 오랫동안 보좌했던 빌 캐릭은 “세상이 변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강인한 모성과 아이를 키우는 사랑은 정치적 덕목이 되었으면 되었지 약점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여성 후보를 ‘인간화’하는 동시에 유권자와 연결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모성 정치에 대한찬가를 억지 춘향이라고 비판하지만 펠로시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다섯 아이를 키워냄으로써 모성의 힘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힐러리는 아이는 하나를 키웠으나 법대 졸업 후 아이들의 권리를 신장하는 데 힘썼다. 이런 기록은 여성 정치인에게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서 결코 감출 일은 아니다. 어머니로서 이들의 힘은 실제 유세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문제는 여성의 미덕을 어떻게 유권자들의 가슴에 심느냐 하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초당적 우정과 연대를 내세웠고 펠로시와 힐러리는 모성애를 부각시켰다. 지난해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펠로시를 비정하고 세금이나 올리는 사람이라고 헐뜯었으나 그녀의 모성 이미지 속에 묻히고 말았다. 힐러리도 믿을 수 없고 냉정하며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저력이 있고 지적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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