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땅에 한국을 색칠한다
  • 정준모(미술사가, 미술행정가) ()
  • 승인 2007.02.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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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아르코 아트 페어'에 주빈국으로 참가...백남준 특별전 등 다양한 전시 행사 열려

 
고백남준 씨가 하늘로 간 지 벌써 한 해가 되었다. 이때를 즈음해 여기저기서 각종 추모 행사로 떠들썩하다. 생전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백남준의 죽음에 아쉬움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해서라기보다는 한국인으로서 세계적 미술인의 반열에 오른 백남준에 대한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간 여러 경로로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세계 속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해왔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질서는 세계화라는 테제 속에 자국의 이익을 가장 극명하게 확보하려는, 우아하지만 치열한 문화 전쟁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2월14일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세계적 아트 페어인 ‘아르코(ARCO·Feria Internacional de Arte Contemporaneo)’에서 한국이 주빈국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트 페어란 작가들 중심의 국제적 순수 미술제인 비엔날레와는 달리 특정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미술 장터이다. 고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수한 작품이나 지리적 이유로 잠재 고객들에게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합리적으로 모아 전시하고 판매하는 미술 시장으로서 오늘날에는 부가가치가 큰 컨벤션 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트 페어는 1966년 독일 쾰른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수백 개의 페어가 펼쳐진다. 아르코 아트 페어는 1982년 마드리드에서 출범했고 현재는 문화 행사인 동시에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어 매회 개막식에 스페인 국왕이 참석할 정도이다. 스페인어권인 남미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이 권역의 수집가들이 대거 몰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개의 아트 페어는 흥행을 위해 매년 주빈국을 지정해서 행사를 갖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번 아르코 아트 페어의 주빈국으로 선정되어 특별 전시실을 운용하며, 이를 계기로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펼친다. 1996년 파리에서 열린 피악(FIAC), 2005년 쾰른 아트 페어에 주빈국으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민과 관이 힘을 합쳐 행사를 추진한 예는 없다.
하지만 큰 행사는 언제나 준비 과정에 진통이 있는 법. 행사를 주도할 민간 커미셔너를 선정한 후 정부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로 불협화음이 들려오더니 급기야 커미셔너를 바꾸는 등 삐걱거렸고 스페인측 운영위원장이 바뀌면서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아 주빈국 전시 공간이 3분의 2 정도로 줄어들기도 했다. 또 특별관 행사를 위한 초청 화랑 선정 과정의 갈등으로 불평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이지만 준비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 2월14일부터 19일까지 6일간 ‘한국의 해’ 행사가 열린다. 


5월까지 음악 공연·한국 영화제 등도 곁들여


 
스페인측에서는 주빈국 특별관에 참가하는 화랑들에게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여기에는 가나아트갤러리·시몬·인·현대·국제·노·박여숙·박영덕·선·아트파크·카이스·학고재·아라리오·원&제이 등 14개 화랑이 선정되었고, 문경은 이지은 최선명 노상균 문범 최우람 홍성철 김준 배준성 박준범 정연두 김홍석 홍승혜 이강욱 박형진 권기수 강현구 함섭 김창영 등 4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 외에도 우리 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과시할 기획전이 마드리드 도처에서 열리는데 1주기를 맞는 백남준 특별전을 비롯해 2006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한 한국 작가 황인기, 마이클 주 등이 출품하는 ‘뿌리를 찾아서: 한국 이야기 펼치다’와 아트센터 나비가 기획한 ‘인터미디아애-민박’, 안규철의 설치 미술전, 사진작가 주명덕의 ‘사진으로 본 한국 전통공간 디자인’전, 젊은 작가들의 ‘도시성을 둘러싼 문제들’전과 실험적인 디자인 작품을 모은 ‘한국 디자인전-리셋’전 등 순수 미술뿐 아니라 여러 장르를 통해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한다.
더불어 ‘코레아 아오라(Corea Ahora, Korea Now)’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문화 행사가 5월까지 이어지는데 김금화의 서해안 풍어제, 안은미 댄스컴퍼니의 현대무용, 인디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콘서트, 앙상블 TIMF 및 현대음악 4개 팀이 참여하는 공연과 대표적 영화감독 12명의 영화 30편을 상영하는 영화제와 김기덕·홍상수 감독의 영화제가 있다. 고은·현기영·최승호 등 문인들이 참여하는 문학 포럼도 열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불의 개인전이 마드리드 근교의 살라망가에서 열려 한국 미술과 문화의 열기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행사는 전자 상품 수출 으뜸 국가인 한국의 원천이 문화에서 비롯됨을 유럽 문화계에 보여주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관공서에서 추구하는 성과주의는 이러한 문화 예술 행사에 치명적이다. 일회성 행사에 35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미덕인 은근과 끈기를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끊임없이 지속시켜서 은연중에 한국 문화를 지구촌에서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잔칫날 하루 잘 먹고 끝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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