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묵은 헌법 고칠 수 있지만 원 포인트 개헌은 국력 낭비"
  • 김세원(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2.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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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임기의 4년 연임제 개헌을 전격 제안하면서 정국이 개헌 논쟁에 휩싸였다. 노대통령은 1월30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의 오찬에서 2월 임시국회가 끝난 뒤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31일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헌법개정 추진지원단’이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신행정수도 특별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 겸 선진화국민회의 상임공동위원장)와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세종대 석좌교수)이 2월1일 노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배경과 개헌의 필요성, 개헌 공방 이후의 정국 전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남시욱:노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는데 설 이후 과연 대통령의 권한으로 발의를 할 수 있는지가 관심사다. 발의권이 대통령에게 있기는 하지만 통과시키는 데는 열린우리당이 중심이 될 터인데 열린우리당이 공중분해 직전 상태라 과연 통과시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석연:개헌안의 내용은 별도로 하더라도 국민의 70%가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판정했다. 또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국민투표에 회부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분규 상태가 아니더라도 한나라당 의석만 봐도 숫자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데도 개헌을 발의 추진하는 것은 개헌 자체보다 개헌 부결시 그걸 빌미로 제2, 제3의 국면 전환 카드로 쓰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개헌안을 보면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로 하고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같이 치르겠다는 건데, 내용 자체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개헌을 하려면 최소한 지난해에 했어야 했다. 헌법 포럼에서는 이런 내용은 물론 다른 내용까지 포함한 개헌안을 재작년 말에 내놓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개헌을 꺼내는 것은 정략적 의도로만 보인다. 이걸 가지고 대통령이 계속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서 대선의 흐름이나 국민적 관심사에서 비껴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인 듯하다. 또 하나 개헌 추진 기구를 정부에서 만든다는 것은 개헌안에 대해 홍보를 하고 언론을 동원해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뜻인데, 역시 문제가 많다. 대통령이 헌법상으로 개헌안 발의권자로서의 지위는 보장받고 있지만 정부까지 동원하는 건 맞지 않다. 국정홍보처장까지 포함한 범정부 개헌 대책 기구를 만드는 데는 문제가 있다.


 
남:우리나라 정치 불안은 소수파 대통령이 나올 수 있도록 한 헌법 규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단순 다수결 당선 제도는 직업 정치인들의 이해타산에서 만들어졌다. 만일 프랑스나 라틴아메리카처럼 결선 투표를 하게 되면 소수파는 당선될 수 없다. 북한의 대남 전략 중에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 바로 다수파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헌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국가적 비용 등을 감안하면 원 포인트 개헌보다는 전반적인 통치 구조, 기본권 조항, 여러 경제 관련 조항까지 전체를 보완하자는 데 찬성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헌법은 크게 보면 통치 구조 분야, 기본권 분야로 나뉘는데 중요한 건 기본권이다. 통치 구조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개헌을 보면 국민이 주체가 되어 개헌안이 발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임기는 통치 구조에 해당된다. 그것만을 위해 개헌하겠다니 헌정사의 부끄러운 면이 또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헌정 사상 세 차례에 걸쳐 국민 합의에 의해 개헌되었다. 그때도 제일 중요한 관심사가 통치 구조 문제였다.
20년째인 현행 헌법은 최장수 헌법이다. 그래서 고쳐야 한다고 한다. 물론 헌법이 현실을 규율하지 못하면 고치는 건 당연하지만 시급한 건 국가 정체성에 관한 것과 기본권 조항 등인데 그건 제쳐두고 대통령 임기 조항만 바꾸는 건 낭비일 뿐만 아니라 전체 헌법 개정 논의에도 맞지 않다. 이번에 안 되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협박이다. 개헌은 대통령만 하는 게 아니다. 개헌안 발의권이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건 유신헌법의 잔재다. 원래 발의권자는 국회다. 또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어야 선(善)이고 아니면 낭비라는 것도 옳지 않다.
그동안 탄핵, 수도 이전을 비롯해 부동산 분양에는 사유재산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등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종합해보면 헌법 경시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번 개헌안 발의는 헌법 경시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남: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북한의 신년 사설이다. 반동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위험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도 북한이 상당히 협박했었다. 말만의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뭔가 일어나는 게 문제다. 협박 후에 KAL기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 김대중·노태우 정권을 생각할 때 새로운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우려를 갖고 있어 그런 적대감이 들지 않나 싶다. 정가에서는 지금 대선 후보의 신변 안전까지 걱정할 정도이다.


이:북한이 어떻게 해서든 대선에 개입해서 “친미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안 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핵을 사용하겠다”라고 한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선 막바지에 범우파 후보에 대한 테러와 관련된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요청을 해서 법안을 제출하도록 하려고 연구 중이다. 헌법에서는 40일 전까지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통령 후보를 대상으로 한 테러 대비 법안을 만들려고 한다. 국민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여러 유형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제를 바꿔보자. 노무현 정부가 1년을 남겨놓고 있는데 국가의 기본 틀과 격이 흔들리고 있어 걱정된다. 헌법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만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 합의 과정은 무시되고 국민은 속수무책이다. 앞으로 남은 1년이 4년보다 더 중요하다.
김대중·김영삼 정부 때보다 이 정부의 국가 부채가 훨씬 많다. 1년 후에는 몇 배로 늘어날 수 있다. 지금 개헌론도 그런 틀에서 나온 것인데, 헌법을 경시하고 위반하는 데 대해 국민운동을 펼치고 분명히 현 정권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남:이변호사의 헌법 포럼이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의 정통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없어 공공연하게 반국가적 교육을 시키고 반국가적인 행동을 한다. 일부 학생들은 자유주의가 뭐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대법원의 판결을 신문에서 봤는데, ‘이스라엘 공화국은 방어적 민주주의 국가다’라고 했더라. 이스라엘처럼 조그만 나라도 이런데 우리의 정치 지도자나 지식인들은 왜 침묵하는지….


 
이:강의를 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우리 체제의 고마움을 모른다. 이건 국가의 책임이다. 미국에서는 운전면허만 따도 헌법 정신을 묻는다. 학생들에게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실현하고 돈을 벌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회적 기여도 하며 사는 게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라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나서야 한다. 열몇 개의 과거사위원회가 예산 2천5백억원을 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분석하면서 판사들 명단을 담은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당시에는 실정법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마녀사냥하는 게 바른 것인가. 역사는 교훈과 성찰의 대상이지 살아 있는 권력 입장에서 청산하고 바로잡을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하면 헌법적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에서 법치주의가 안중에도 없다. 과거사위는 화해와 용서보다는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훼손을 바로잡지 않으면 기대할 게 없다.


남:과거사의 어두운 점을 비추어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하자는 취지 자체는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허물어 국가를 부인하겠다는 면이다. 이런 쪽에 많이 역점을 두는 사람들이 있다.


이: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이 개헌을 불쑥 제안한 것 자체도 반 헌법적 정신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런 얘기를 했다. “대통령의 권한과 지위는 헌법에 의해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헌법을 경시하거나 위반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폄하하고 스스로 국민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을 놓치는 것”이라고 했다. 법률가로서 나는 대통령에게 헌법 공부를 다시 하라고 말하고 싶다.


남:2~3년 사이에 뉴라이트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뉴라이트 운동과 더불어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랄까, 국정의 난맥 등이 겹쳐서 국민 의식이 상당히 보수화되고 있다.


이:뉴라이트 운동이 태동한 것은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 이후다. 그때 뉴라이트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헌법 포럼이 처음 만들어졌다. 지금은 뉴라이트 단체가 많이 생겨났고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반면 정통 보수가 더 자극받아서 전체 사회의 보수화, 중도 세력의 보수화가 진행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선진화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보수 세력이 산업화에 기여를 했고 민주화도 산업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바로 그런 목표를 뉴라이트가 지향하는 것이다. 현재의 좌파 정권으로는 안 되니까 올해 대선에서 제대로 된 역사의 길을 가는 미래 지향적 정권을 탄생시키는 것이 우선 목표이고 장기적으로는 선진화가 목표다. 그 과정에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선진화 운동의 핵심은, 특히 대선과 관련해서 ‘범우파, 보수 대연합에 의한 후보 단일화를 반드시 실시한다’는 것이다.


남:최근 노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에 대해 한 발언을 좋게 본다. 노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방적·자유주의적이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좌파적 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게 넓은 의미에서 보수 우파들의 논리인데, 지금 진보를 내세우는 좌파의 논리를 들어보면 현 정권이 추진하고 우파가 지지하는 신자유주의 경영이라는 것은 라틴아메리카식 신자유주의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노조 투쟁,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 등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노대통령과 우파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에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범보수 세력에서 대안을 내야 하지 않나 싶다.  


이:좋은 말씀 하셨다. 뉴라이트 하면 신자유주의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뉴라이트의 기본 정신은 헌법이 추구하는 기본 정신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싶다. 선진화도 헌법적 가치,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자유 시장경제, 기본권 존중이라는 헌법의 기본 정신 안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남:헌법적 가치의 존중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밖으로 드러나는 활동보다는 수면 밑의 문화·종교·교육·문학 분야가 훨씬 중요한데 과거 보수 진영의 잘못은 수면 밑 활동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문학·교육·문화 분야에서는 좌파가 강하고 그들이 내세우는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도 민족주의다. 결국 헌법적 가치와 민족주의적 가치가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적절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수 세력에서 부족한 점이다. 특히 통일 문제에 대한 적극적·공세적 비전의 제시가 부족하다.


이:동감한다. 보수 진영에서 통일·민족 분야에 대한 접근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통일 문제·민족 문제는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적 논쟁으로 가게 되고 보수 진영은 그 논쟁에서 대체로 밀렸다. 우리 사회에서 통일을 하려면 민족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국가 대 국가, 법치 대 법치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제쳐놓고 민족이 우선이니 민족을 배반하면 안 되고 민족은 반드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남: 과거 동독 공산주의자들과 서독의 일부 좌파 지식인들도 통일에 반대했다. 아랍 세계의 예도 있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정서적이다. 일제 때 저항적 독립운동의 이념 중 하나로 발전해오다 보니 현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일종의 민족 근본주의와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과거 자유 민주주의를 팔아 독재한 사람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 


이:역사적으로 민족을 강조하면 통일 과정에서 ‘피바다’가 안 된 때가 없다. 그러나 국가 대 국가, 법적 주체가 단위가 되면 그건 통일이 된다. 6·25도 민족 간의 전쟁이었고 피바다였다. 민족을 내세우는 통일 노래는 지극히 위험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족 지상주의로 나가고 있고 민족을 내세우는 데 보수 진영에서는 대응을 못하고 있다.


남:일부 좌파에서 내세우는 민족 논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과 합작하자는 주장이 어떻게 민족주의인가.


남:민족 통일은 구한말 이래 하나의 근대 국민국가의 이상으로 넣은 것인데 그 목표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헌법의 영토 조항과 관련해 북한은 주권 국가이므로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으니 이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이:통일이 자유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통일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역사에 역행할 뿐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래서 통일 지상주의를 우려한다. 국민들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헌법의 영토 조항을 말씀하셨는데 이 조항이라도 없으면 북한은, 민족은 같지만 별개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휴전선 이남으로 하자는 것은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로 역사 퇴보적이고 대한민국의 체제를 포기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에 우리의 주권이 미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리 김세원(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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