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탈당, ‘위장 별거’인가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2.2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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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떠나도 애착은 변함없는 듯…열린우리당 지키기·재집권 전략 일환일 수도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이 마침내 현실화되었다. 대통령의 여당 이탈은 ‘정치 중립’ ‘대통령 선거 공정 관리’ 선언과 일치한다. 그러나 노대통령 탈당에서 그런 의지는 찾기 어렵다. 여전히 시선이 열린우리당을 통한 차기 정권 재창출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몸만 떠나는 격이다.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의 탈당을 기획 탈당, 위장 별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믿는 이유도 충분하다.
노대통령은 불과 한 달 반 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가 밉더라도 열린우리당 같은 당 하나는 키워야 된다. 열린우리당 도와주시면 고맙겠다”라고 했다.
유시민 장관 등은 내각에 그대로 남아
뿐만 아니다. 노대통령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의 청와대 회담에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 요구를 받자 “대통령도 정치인이므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이유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선거를 중립적으로 관리했거나, 그런 척이라도 한 것과는 판이한 태도다. 그런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고 열린우리당과 연을 끊는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일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 수십 명이 이미 통합신당을 만들겠다며 탈당해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소속 의원들도 동요하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곧 열린우리당은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고백한 마당이다. 이 모두 노대통령의 존재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당원으로 있는 한 열린우리당은 붕괴→소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노대통령 탈당은 마음에 내켜서라기보다 자신의 피와 같은 열린우리당 붕괴를 막아보려는 고육지책이다. “비록 당적은 정리하지만 나를 공격하는 것은 적극 대응하겠다”라고 말했고, “당적을 정리할 때 하더라도 당원들에게 한 번쯤 심경을 편지 형태로 전한 뒤 이달 안으로 탈당계를 내겠다”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획 탈당 의혹이 짙다는 증거는 더 있다. 열린우리당 출신인 한명숙 국무총리의 당 복귀 의사는 받아들일 전망이다. 왜냐하면 총리가 당적을 보유하면 내각의 성격은 물론 노대통령 탈당 선언이 거둬들일 효과가 반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총리의 당 복귀와 달리 유시민 장관은 “내가 탈당할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열린우리당 당원이고 제 발로 걸어서 당을 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라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 겸직을 못 박았다. 노대통령이 이끌 내각의 색깔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열린우리당 의원이 각료로 버젓이 활동하는 내각을 누가 중립 내각이라 하겠는가. 노대통령은 한 발짝 더 나갔다. “장관까지 내놓을 필요가 있나, 총리 문제로 정리됐으면 됐지. 그냥 넘어갑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총리 이외의 개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노대통령의 탈당 카드에는 대통령 연임제 개헌을 본격 드라이브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열린우리당 소속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해보아야 ‘정파적’이라는 비난이 돌아오고 여간해서 개헌 지지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상황을 감안해 당적 이탈을 통해 “나는 사심이 없다”라며 개헌론에 불을 지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헌론을 뒷받침해야 할 정당을 떠나면서 개헌 드라이브를 건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따라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이는 ‘위장 별거’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 모른다. 노대통령이 탈당을 예고하면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 다른 도전이자 판 흔들기?
물론 집권 세력 내에서도 노대통령이 위장 별거 후에 아무리 수렴청정(?)하더라도 열린우리당이 재집권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유시민 장관의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99%”라는 발언이 12월의 진보 세력 궤멸을 예감한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또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이 통합신당과 제3의 대선후보 옹립을 추진하지만 성공 가능성에는 스스로도 회의적이다. 이들의 시선은 12월이 아니라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 닿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노대통령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노대통령은 타고난 정치인이다. 해외 순방 중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의제를 던지고 반대파를 통박하는 스타일이다. 한나라당 집권을 수수방관할 리 만무하다. 성공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99%’라는 현실을 뒤집겠다는 투지가 전달된다. 진보 좌파는 ‘도전’과 ‘투쟁’에 능하다. 투쟁 없이 포기하는 일이란 없다. 지금 포기한다면 노대통령과 유장관 같은 인물들은 ‘진보의 수치’로 역사에 기록될 판이다.
노대통령은 후보 지지도 1위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해 “실물 경제 좀 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라고 깎아내렸고, 그의 지지도에 대해서도 ‘별게 아니다’라고 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1위 후보가 낙선한 예도 들었다. “2002년 대선 이맘때 지지율 5% 아래에 있던 내가 후보가 됐다. 내가 후보가 된 게 (2002년) 2월 말, 3월 초인데 그 뒤 내가 바닥까지 갔다 올라왔다. 이제는 막판에 바로 올라가도 되지 않나. 선거 구도는 바뀔 수 있다”라고 했다. 오기라고 일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국민) 지지만 갖고 모든 권력을 쥔 게 아니다”라는 일갈에서는 집권자의 프리미엄에 대한  확신이 묻어난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후보 검증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에 빠져 있다. 합계 70%에 이르던 이명박-박근혜 지지도가 떨어지는 조짐이다.
노대통령은 “임기 후에도 정치 언론 문제는 손을 놓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했다. “대통령 마친 사람이 정치하는 것은 맞지 않으나 편안하게 인생을 보낼 생각은 없다”라고 했고 “대선 때든 아니든 나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에게 응답하겠다”라고도 했다. 노대통령의 탈당은 또 다른 도전이자 판 흔들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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