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돌아서서 우는 일본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2.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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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기울인 납북자 문제, 합의문에 빠져 허탈…국제 사회 ‘고립’ 위기감도

3년 반을 끌어오던 6자 회담이 타결되었다. 약속대로만 된다면 북한 핵 프로그램도, 북한의 고립도 끝난다.

 
한반도는 핵 위기에서 벗어나고 동북아에는 평화와 안정의 꽃이 핀다. 1년 전까지도 부시와 김정일이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쪽에서는 축제 분위기이지만 일본은 울상이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가 발표문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타결 발표가 있자마자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대북 지원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일본 국내 문제를 내세워 독자 행보를 고집하면 고립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북한을 고립에서 꺼내려다 자신을 고립시키는 모순에 빠진 꼴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는 북한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으로 정권을 잡았다. 이 약속이 실종되었다. 향후 실무 그룹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를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을 이행할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1970년대에 발생한 납치 문제를 북핵과 결부해왔다. 북한은 일본인 12명의 납치를 시인하고 4년 전 5명의 생존자를 송환하면서 나머지는 사망했다고 통보했다. 일본은 이 말을 믿지 않고 몇 명은 살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지율은 바닥이고 생사 불명의 자국민 문제를 포기할 수도 없는 아베의 처지가 진퇴양난이다. 야당은 심지어 아베가 처음부터 납치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대책도 없으면서 선거에 이용했다고 몰아세운다.
이와테 주립대학의 다니구치 마고토 총장은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일본이 넓은 시야에서 아시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미 관계만 고려하고 아시아 인접국들과의 우의를 소홀히 하면 동북아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심지어 일본이 납치 문제에 “납치되었다”라고 비꼬았다.
미국 ‘위안부 청문회’, 엎친 데 덮친 격
일본은 북·미 실무회담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 회담에서 납치 문제를 단단히 따지고 여의치  않으면 중유 공급 외에도 외교 관계 수립이나 식민 통치 배상 문제 토의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태도는 다르다. 북한 외무성 관리 리평덕은 교토통신과의 회견에서 납치 문제는 종결되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실무회담에서 ‘식민 지배 시절 일본의 범죄를 중점적으로 논할 것이며 진전이 없으면 수교는 없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납북자 문제 외에 베이징 합의의 모호성도 일본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자국 상공으로 북한 미사일이 날아간 일을 기억하는 일본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과 여기에 장착될 수 있는 핵탄두가 마음에 걸린다. 고이즈
 
미 총리 시절 일본의 대북 강경 정책에 화가 난 북한은 핵으로 일본을 공격할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6자 회담 합의문에는 이런 사항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일본 언론들은 납북자 문제보다 오히려 북핵의 잠재적 위협에 초점을 맞추면서 6자 회담에서 일본이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협상에서 중국과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방관자가 됨으로써 국력에 상응하는 위상을 상실해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대미 관계만 치중하다가 자초한 결과라고 비웃기도 했다.
아베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다. 이번에 합의를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이 부시와 김정일의 ‘절망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처음부터 많지 않았다. 부시는 이라크·이란·아프가니스탄, 11월 선거 패배 등에 대한 탈출구가 필요했고 김정일은 중국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다. 일본인들은 북핵이 겨냥하는 1차적 목표물이 미국이나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배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양국 관계를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런 우려는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핵 보유 주장으로 이어진다.
6자 회담은 한·일 관계에서도 일본에 어려운 숙제를 안겨주었다. 양국이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라는 뉴욕타임스의 분석도 아베를 괴롭힌다. 한국은 입지가 자유로워진 데 비해 일본은 손이 묶였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대북 관계에서 가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본을 우울하게 만든다. 한반도의 분단 고착에서 어부지리를 취해온 일본은 성숙되어가는 남북 화해 분위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다. 노무현 정권에서 훼손된 한·미 관계마저 차기 정권에서 복원되는 날에는 일본의 입지가 더욱 궁색해진다. 요미우리와 산케이 신문에 의하면 야마자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는 비핵화로 가장 득을 보는 측은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납북자 문제로 우물거리다가 북·미 수교라는 선수를 미국에 빼앗기면 일본의 대응 수단은 없어진다고 경고했다. 아베의 노선을 지지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북한을 상대하는 데는 일관된 외교가 필요하며 따라서 이 시점에서 입장을 바꾸는 건 현명하지 않다는 주장이 여야 일각에서 나온다.
일본의 딜레마는 자승자박의 측면이 있다. 세계 2위의 강대국 자리에 너무 오래 안주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인접국에 가한 잔혹 행위에 비하면 일본인 납치 문제는 사소한 국내 문제일 수 있다. 6자 회담에서 다른 5개국이 이 문제에 미온적 관심을 보인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납북자 문제로 궁지에 몰린 아베에게 나쁜 뉴스 하나가 추가되었다. 미국 하원이 하필이면 이때 위안부 청문회를 개최한 것이다. 그것도 일본계 의원이 주도했다.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도 채택될 전망이다.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주변국과의 관계를 미봉해온 아베의 ‘소프트 노선’도 흔들리고 납북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무색해진다. 인권에 대한 일본의 위선적 태도가 벌써부터 헤드라인으로 올라온다.
역설적으로 김정일의 약속 불이행이 아베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고 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설사 그런 사태가 오더라도 한 국가의 중대사를 상대방의 ‘나쁜 행동’에 의지하는 것이 너무 치졸하다는 점이다. 부시가 ‘훌륭한 첫걸음’이라고 치하한 이번 6자 회담 합의가 일본에는 애물이 된 셈이다. 일본을 울리는 6자 회담은 어쩌면 모두를 울릴지 모른다. 하지만 함께 울어줄 파트너가 생길 때 일본은 또 한번 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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