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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깨우는 솔직 당당한 '독백' <버자이너 모놀로그>

여성의 날 전후해 세계 각지에서 공연...지구촌 여성 실상 고발

홍선희 편집위원 ㅣ 승인 2007.03.05(Mon) 10: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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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8일 미국 워싱턴에서 이라크 전쟁에 의한 여성 피해자들의 참상을 고발하며 반전 시위를 벌이는 이브 엔슬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배우 제인 폰다(맨 오른쪽).  
 
연례 아카데미상 발표 며칠 전인 2월21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셀마 헤이엑, 샐리 필드, 제인  폰다, 마리아 토메이, 로사리오 도슨, 케리 워싱턴 등 유명 여배우들이 연예 잡지 <글래머>의  초청으로 한 행사에 모였다.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 종식을 요구하는 캠페인인 이 행사에서는 분쟁 지역 출신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치욕적 폭력 사건과 고난을 넘어 평정을 얻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배우들은 이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V데이’는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려는 지구촌 운동이다. 대체로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을 전후해 열린다. 강간·구타·근친상간·성적 노예 행위 등을 중지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나서서 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환기시킨다. 강연, 기록영화 상영, 기금 모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기존 비폭력 운동 단체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
캠페인이 어디서 벌어지든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주된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것은 같다. 여성 단체나 대학생 동아리가 캠퍼스나 지역 사회에서 이 작품으로 자선 공연을 펼친다. 때로는 정식 공연이 아닌 독회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전세계에서 2천7백 회 이상 공연되었다. 원작자의 대본을 수정할 수는 없지만 매년 특별히 정한 주제에 대해 대사를 첨가할 수 있는데, 지난해 주제는 ‘정신대에게 정의를!’이었고 올해 주제는 ‘분쟁 지역의 여성’이다.
여성들을 위한 신세대 경전으로 여겨지는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위트 있고 무례할 정도로 과감하다. 미국의 극작가이자 시인, 사회운동가, 시나리오 작가인 이브  엔슬러가 성(sexuality)에 대한 기억과 경험에 대해 각계 각층 2백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 지금까지 중국, 크로아티아 등 세계 2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작품의 취지에 공감한 위노나 라이더, 수전 서랜든, 우피 골드버그, 케이트 윈슬렛, 멜라니 그리피스, 브룩 실즈, 귀네스 팰트로 등 60여 명의 배우가 지금껏 이 공연에 출연했다.
연극은 일반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행사장에서는 <폭력이 멈출 때까지>라는 필름을 상영하고 멕시코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된 여인들에 대해 보고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아프가니스탄 여성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강간 억지 전략을 수집하는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 이브 엔슬러는 지난해 6월 ‘뉴욕에 폭력이 멈출 때까지’라는 이름으로 2주일간 연극·웅변·공연 및 지역 행사를 포괄하는 축제를 열었다. 뉴욕을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만들자는 희망으로 기획된 이 축제 기간에 2천여 명이 모여 지정된 공원에서 폭력 추방을 위한 달리기 행사를 가졌다. 50명의 여배우와 100명의 작가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바쳤으며 지하철·버스 내 캠페인과 미디어를 통해 수백만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V데이 캠페인으로 여성 네트워크 확대


V데이 캠페인은 아프리카·중동 같은 저개발 지역에서는 비폭력 운동의 씨앗을 심고 여성 네트워크를 태동시킨다. 이집트와 이라크에 쉼터를 개설했고 요르단에서는 매년 워크숍과 전국 규모의 캠페인을 지원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이리듐 휴대전화를 제공해 그들과 통신을 계속하고 행동 강령을 전달한다. 수단,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시리아 및 레바논에서는 여성 폭력저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을 지원한다.
인도 여성은 어느 나라 여성들보다 강하고, 맹렬하고 지도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인도에서는 영아 살해, 염산 세례, 지참금 불만 등으로 인한 살해가 빈번하다. 2004년 이브 엔슬러, 제인 폰다, 마리아 토메이 등이 인도·파키스탄 여성들과 공동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8회 공연 내내 매진을 거듭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수익금으로 현지에 두 개의 쉼터를 건립해주었다.
V데이의 홈페이지에는 각 나라에서 이 캠페인을 공동 주최하는 단체에 대한 정보와 사업 내용, 공연 배우들이 V사인을 한 단체의 이미지 등이 실려 있다. 홈페이지에 실린 파키스탄의 공연 배우들은 차도르를 벗어던지고 진홍빛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손가락으로 V사인을 그려 보이고 있다. 그들이 의미하는 V는 승리(victory), 사랑(valentine), 성기(vagina)를 의미한다.
이브 엔슬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는 연극이라는 장르가 이렇게 대단한 가능성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연극의 신성한 본성과 가슴속 상처를 밖으로 폭발시키는 힘으로 관객을 가르치며 정치적·영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종국에는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이 작품은 여성 성기에 대한 단어를 입으로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논쟁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어느 언어권에서든지 인간이 가장 거리를 두고 싶어하며 불경스럽게 여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핵, 스커드 미사일, 플루토늄 같은 단어들이 매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한들 이러한 소란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 단어가 이렇듯 터부시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입에 올릴 수 없었으니 존재하기를 멈춘 것이다. 그래서 일상과 격리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소녀들이 학대당하고 성 매매에 내몰린다.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염산 세례로 얼굴이 없어지고 집단 살인이 벌어지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바로 그러한 틈새를 이용해 지구촌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다.

   
  올해 한국 공연에 참가한 출연자와 스태프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여름 여성문화예술기획(이하 ‘여문’)이 김지숙·예지원 씨 주연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뮤대에서 초연했다. 여문의 대표인 이혜경씨가 연출을 맡았다. 그 후 서주희·장영남 씨 등을 주역으로 꾸준히 공연되어 상업 연극의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를 굳혔다.
올해 서울에서는 3월3일과 4일 홍대 근처의 카페 빵에서 이 작품이 한글과 영어로 공연되었다. ‘나눔의 집’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한국인들에게 여성 폭력에 대해 알리고자 원어민 강사, 한국인 시민운동가와 행위예술가 등이 2달간 주말에 모여 연습해왔다.
재미동포 김정아씨는 이렇게 말했다. “출연하는 모든 이들이 모국어를 사용했고 모든 대사가 자막 처리됐다. 전세계에서 여성과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에 대해 한국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높이고 저지 운동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려고 이 연극을 공연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가 성이나 여성·남성의 몸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성에 대해 내놓고 이야기를 하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해 편안해진다. 한국은 진보하는 나라인데 이러한 운동을 통해 사회를 더 낫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정신대라는 화두는 덮어두고자 하는 듯하다. 정신대뿐 아니라 도처에서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일 뿐 아니라 어머니이고, 자매이고, 딸이고 친구이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은 한국여성의전화에 기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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