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속에서 울고 웃은 '아! 어머니'
  • JES ()
  • 승인 2007.03.05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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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고모령>에서 <어머님께>까지, 대중가요에 비친 어머니상 변천사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40대 중반 이상이라면 멜로디만 들어도 절로 가사가 떠오르는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한국 가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2007년, 젊은 가수들의 노랫말에서도 ‘어머니’가 자주 눈에 띈다. 테이의 <어머니>와 박효신의 <1991년 찬바람이 불던 그 밤>은 모두 신세대풍의 사모곡. F&F의 <사랑하는 어머님께>도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소재가 어머님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랫말 속의 어머니들은 그전 세대들이 불렀던 어머니와 어떻게 다를까?
시간 순으로 살펴보자. 광복 후 1960년대까지 한국 가요의 노랫말 속에 담겼던 어머니들은 모두 자식의 성공을 위해 머나먼 고향에서 갖은 고생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거나 그러다 돌아가신 애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못 오실 어머님을/원통해 불러보고/땅을 치며 통곡한들/다시 못 올 어머니여/불초한 이 자식은/생전에 지은 죄를/엎드려 빕니다’라는 <불효자는 웁니다>가 이 정서를 정확하게 대변해준다.


초기에는 ‘못다 한 효도에 대한 회한’이 주류


김희갑이 처음 부른 이 노래는 나훈아·하춘화 등이 이어 불렀고, 1980년대 이후에는 악극으로 구성되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나훈아의 <어머님의 영광>, 남진의 <어머님>, 남인수의 <어머님 안심하소서>에서 태진아의 <사모곡>이나 현숙의 <나의 어머니>까지 구성진 트로트 가락 속에서 이 정서는 면면히 숨쉬고 있다.
1970년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의 데뷔곡으로 발표된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는 이탈리아 원곡 <1943년 4월3일생>을 번안한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못다 한 효도에 대한 한 맺힌 노래’에서 탈피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는데/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가엾은 어머니 왜 날 낳으셨나요’라는 가사의 이 노래는 1972년에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박해일·염정아 주연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박해일의 목소리로 다시 등장했다. 장애인으로 성장하느라 유난히 어머니와의 사연이 많았을 이용복은 1971년 역시 이탈리아 가수 니콜레타의 원곡 <오 마미>를 번안해 소개한 적도 있다.
가사 면에서 이전의 노래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노래가 가끔 동요로 오해받는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1983)다. 직설법에서 한 단계 올라서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한 모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나는 내일 아침에/고등어 구이를 먹을 수 있네’라는 노랫말을 통해 모자 간의 정을 담아냈다. 그 이상 꾸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985년, 그룹 들국화의 데뷔 앨범 수록곡    <사랑일 뿐이야> 역시 ‘어머닌 아마도/제게 하나뿐인 화가처럼/온 세상 그대 손으로/아름답게 물들여요’라는 식으로 승화된 가사가 눈길을 끈다.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은 여전하지만 눈물도 없고 사무치는 그리움도 없다. 록의 시대와 함께 노랫말이 한층 세련되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시기는 젊은이들이 팝송을 벗어나 가요를 다시 듣기 시작한 시점과도 일치한다.
1993년, 이승환과 김종서는 나란히 <내 어머니>와 <어머니의 노래>를 발표했다. 물론 당시 이승환은 <내게>, 김종서는 <겨울비>를 히트시키던 시점이어서 이 노래들이 크게 주목되지는 못했지만 두 노래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내 어머니>는 ‘어머니 난 어쩌죠 너무 힘이 들어요/당신께서 가신 후 내 주윈 변해만 갔죠/…/내 어머니 당신께 죄송스런 맘뿐이지만/아직도 난 당신께 투정만 부리고 있는군요’, <어머니의 노래>는 ‘Mother! 흐린 두 눈에 내일의 꿈을 꾸나요?/마냥 녹슬어만 가는 당신의 어린아이들 우렁찬 캐터필러 광란의 노래/다 포근히 감싸며 안아주셨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머니의 노래>가 가리키는 ‘어머니’는 곧 ‘지구(earth)’라는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1980년대에 비해 노랫말이 다시 직설법으로 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 모두 록 그룹의 리드 보컬을 포기하고 좀더 대중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솔로 가수가 되었다는 사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어머니와 고등어> 이후 어머니를 소재로 한 최고의 히트곡은 1999년 그룹 god가 발표한 <어머님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어’로 시작하는 <어머님께>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놓고도 아들을 위해 끝내 젓가락을 들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힙합 곡인데도 중·장년층을 포함한 온 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며 히트한 데에는 담담한 대화체의 정감 넘치는 가사가 절대적 공헌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가요에서는 연인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도


 
올해 나온 테이의 <어머니>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사람/늘 고마웠어요 그 짙은 사랑을/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바보 같은 나였어요’, 박효신의 <1991년 어느 추운 날에>는 ‘내 키가 더 자라서/항상 당신을 지켜준다고 했는데/내가 걱정이 돼/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부탁해요’라고 노래한다. 이들 노래에서 이미 어머니는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인 못잖게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글머리에 나오는 ‘옷고름에 눈물 맺힌 노모들’과 이 어머니들의 차이를 이들 노랫말보다 더 잘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어쨌든 세월이 흘러도 여전한 것은 ‘모자 간의 사랑’이지만 가끔은 예외도 있다. ‘어머님 용서하세요/그녀에겐 저밖에 없는데/그녈 버릴 수가 없어요’라며 어머니의 뜻에 반대해 혼자 멀리 떠나겠다는 뜻을 담은 F&F의 <사랑하는 어머님께>가 대표적 경우다. 그룹 멤버 최성빈이 1990년대 발표했던 원곡은 제목 때문에 어버이날이면 라디오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이지만 가사 내용 때문에 정작 5월8일 하루 동안은 방송된 적이 없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를 지니고 있다.
또 1996년 윤종신이 부른    <너의 어머니>에 나오는 어머니 역시 ‘어머니께선 내 생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을 바라셨지/만족하신 듯했어 고개를 떨군 나를 보시며/스무 해가 훨씬 넘도록 곱게 키워온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내게 설명해주셨지 나보다 더 널 사랑하시는 것 같아’라는 식으로 ‘나’와 ‘너’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진미령은  2004년 발표한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에서 ‘내일이면 나는 쉰이라네/딸아이가 벌써 시집을 간다/우리 엄마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할까/그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그 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라고 노래했다. 여가수가 어머니를 노래한 것도 드문 일이지만 딸의 성장을 통해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돌이켜본 것도 이제껏 한국 가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각. 이 한 편의 노랫말이 한국 대중음악의 성숙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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