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고 버무린 공연 "와우"
  • 홍성민(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 ()
  • 승인 2007.03.1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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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연극, 영상, 무용 등 온갖 재료 뒤섞어 창조한 '다원 예술' 각광

 
뒤섞어 만든 비빔밥식 공연이 대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에서 정통 연극이나 순수한 현대무용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떠돌이 서커스에 현대 감각의 연출가가 가세하고 현대무용과 각종 장치들을 추가해 혼합한 총체적 공연물을 창조해 성공을 거두면서 명품 관광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상·춤·연극이 혼합된 실험적 작업들이 넘쳐나고 있다.
국내에도 전통 악기와 연극, 태권도와 연극, 비보이와 발레리나가 뒤섞인 공연이 호응을 얻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의 반주에 맞추어 비보이가 멋지게 춤을 추는 광고가 젊은층의 큰 관심을 받았다. 들여다보면 뒤섞기 유행이 이는 곳은 단지 공연예술뿐만 아니다. 패션과 인테리어의 ‘믹스 앤드 매치’는 동양과 서양의 가구, 최첨단과 고풍스러움이 뒤섞이고, 운동화에 정장 재킷을 입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영국식 모자를 쓰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바야흐로 섞고 비벼야 첨단이 되는 세상이 되었고 이러저러한 크로스오버 시도들은 국내 순수 공연예술계에서 ‘다원 예술’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언제부터인가 다원 예술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이야기되는가 싶더니 이제 기존 예술 장르 속에 떡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한 명칭이 되었다. 다원 예술은 1990년대 인터넷의 등장과 멀티미디어라는 용어가 익숙해지던 시기에 우리와 급속히 친해지기 시작했다. 비선형적 멀티미디어·멀티태스킹·학제 간(interdisciplinary)·다제 간(multidisciplinary) 등 1990년대는 ‘인터’와 ‘멀티’가 넘쳐났고 또한 각광받았다. 인터·멀티·만남·크로스오버 등 출처는 조금씩 다르지만 유사한 맥락의 용어들은 사실 일순간 지나가는 유행이라기보다는 한계에 다다른 예술 장르와 관객들의 ‘요구’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최근 ‘다원 예술’이라는 명칭으로 아우르고 있는 통합적 예술의 당위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해준다.


다원 예술은 ‘유기농 재료’로 만든 비빔밥


 
필자 또한 수년 전 비빔밥 만들기 대열에 합류했다. 필자가 연출한 <토탈씨어터 앨리스>라는 제목의 공연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구애하는 줄거리로서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을 배경에 놓고 한 제약회사의 캐릭터인 판피린 걸이 등장하는 이상하고 거창한 비빔밥이었다. 이 작품은 서울 인사동의 쇼핑몰 쌈지길의 마당에서 공연되었는데, 국악 연주자들의 라이브 연주 속에 춤·노래·연기·영상과 함께 지게차와 리프트가 출몰하고, 옥상에서 유리창닦이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거나 바비큐를 굽는 등 일반적 개념의 현대무용과 연극의 범주 내에 포함되기 어려운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 예술 부문 지원금으로 이루어졌는데, 만일 다원예술분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공연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공연은 기존 연극·무용·미술·국악의 어느 범주에도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전통적 장르로부터 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현재 중앙과 지방의 문화재단들이 다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예술 장르를 뒤섞거나 해체해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조만간 서울에 다원 예술 공연을 위한 전문적 공간이 신설될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다원 예술이란 것이 기존의 여러 순수 예술 장르 중에서 단순히 또 하나의 장르로 추가되는 정도의 개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마치 그것은 뷔페식 식당에 단지 비빔밥 메뉴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 다원 예술이란 이러저러한 요리들을 한곳에 모아놓는 뷔페식 식단이나 스파게티 위에 김밥을 얹어놓는 식의 퓨전이 아니다. 뷔페 음식과 어설픈 퓨전 음식은 오히려 맛이 떨어지지 않는가.
 
대신 다원 예술은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낸 맛깔난 비빔밥에 가깝다 할 것이다. 산업화와 단절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변질되어 잊힌 근본적인 맛과 여흥, 자연 재료의 절묘한 공감각적 하모니처럼 음악·미술·춤·문학·연극 등으로 독자적인 문법의 구축을 위해 치달아온 예술과 전통의 변질된 모습들을 회복하고 그로 인해 누수가 생겼던 지점들을 끊임없이 보완해야 하는 어떤 것들이다. 다원 예술은 기존 예술 장르의 판을 흔들어주고 자명종을 울려주는 대안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말고 언제나 기존 예술의 판도에 따라 이리저리 새로운 자명종의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준비된 유연함을 견지해야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의 다원 예술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장르 간 크로스오버란 것이 근본적으로 서양의 구체적 장르 구분법의 오류에서 시작한 터이다. 우리의 굿판에서 발견되는 총체적 특성, 즉 춤·음악·시각성 (무화·깃발), 음식 등이 한판에 버무려지면서 만들어내는 시너지의 힘 또는 시서화 삼절이야말로 진정한 다원 예술의 모범적 원형으로서 이미 우리의 전통에 내재해왔다는 사실도 간과되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다원 예술 공간, 그리고 열린 마음과 진보적 전문가들이 포진한 다원 예술 기관의 지원으로 신선하고 다양한 비빔밥을 많이 생산해내는 환경이 구축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문화예술 식단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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