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절반은 '나홀로 집에'
  • 김세원(언론인) ()
  • 승인 2007.03.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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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구 중 1가구 '1인 세대'...영국 35~45세 남성 싱글족, 새 '소비 귀족'으로 떠올라

 
'세련되고 사려 깊은 신사를 찾습니다. 50~58세의 준수한 용모의 소유자 원함. 50대 초반의 전문직 여성으로 사교적이고 자연을 사랑함.’ ‘키가 크고 푸른 눈의 62세 남성입니다. 집과 차 소유. 운전, 운동, 공연 관람이 취미. 비슷한 취미를 가진 여성 구함. 금발 환영. 친구로 시작해서 동반자가 될 수도 있음.’ 유럽 어느 나라이건 지방 신문의 구인 광고란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성 친구를 찾는 중장년 싱글족들의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결혼 상대가 아니라 애인이나 이성 친구를 찾는 것이 목적이다.
중장년 싱글족의 구인 광고가 워낙 넘쳐나다 보니 벨기에에서는 ‘짝 찾기 광고의 숨겨진 진실’이라는 유머까지 나왔다. 광고 문구에서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면 남자의 경우 ‘소파에 드러누워 1주일에 60시간 이상 스포츠 채널을 시청한다’라는 뜻이고 여자의 경우에는 ‘가슴이 절벽’이란 의미라는 것이다.
‘자연을 사랑함’이라는 표현은 남자의 경우 ‘10일에 한 번 샤워를 한다’, 여자의 경우 ‘팔다리에 털이 무성하다’라는 뜻이란다. 광고 문구의 ‘사교적’은 남자는 ‘언제라도 상대의 여동생을 유혹하겠다’, 여자는 ‘한동네 남자들과 두루 성 경험이 있음’으로 해석된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개인주의와 자유로운 성 문화의 바탕 위에 여성 경제활동 인구의 증가가 가져온 여성 싱글족의 증가는 ‘싱글족의 천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프랑스 국립통계 및 경제연구소(INSEE)의 인구통계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25세 이상 인구 중 9백60만명(남자 5백20만명, 여자 4백40만명)이 ‘나홀로 집’에 산다. 20세 이상으로 따지면 싱글족의 숫자는 1천3백80만명으로 더욱 늘어나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한다. 지난 40년 동안 프랑스 사회의 ‘나홀로’족 숫자는 계속 늘어나 1962년 전국적으로 5가구 중 1가구였던 ‘나홀로 가구’가 2000년 들어서는 전국적으로 3가구 중 1가구, 파리 시내에서는 2가구 중 1가구에 이르게 되었다. 프랑스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과거 싱글족이 20대 전문직 남성이나 배우자와 사별한 할머니였다면 새로 싱글족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30~40대 전문직 고소득 여성이 많다고 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싱글족들이 가장 선호하는 활동은 TV 시청, 집에 머물기, 독서 등이다. 싱글족의 생활 만족도는 의외로 높아 91%가 자신들의 삶이 행복하다고 여긴다. 특히 친구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언제라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싱글족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마음이 통하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동반자를 만나려는 이유가 독신 생활로부터의 탈출보다는 외로움을 달래려는 데 있는 만큼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년 여성 싱글족이 많은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여자 친구나 가족 없이 홀로 사는 35~45세의 남성 싱글족이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 런던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나홀로 세대’들이 토지와 에너지, 가전제품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35~45세 남성 싱글족의 소비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요즘의 싱글족은 60세 이상이 주류를 이루었던 이전의 독신 세대와는 달리 돈이 많고 왕성한 소비 성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남성 싱글족들은 세탁기·냉장고·TV·스테레오·컴퓨터 주변기기 등을 많이 사용해 1인당 소모량으로 따지면 4인 가정과 비교해 전력은 55%, 가스는 61%나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누에고치처럼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외부와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코쿤(cocoon)족과 구별해 디지털 코쿤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유감스러운 독신자(Regretful Loner)’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사회 계층의 등장은 1980년대 들어 이혼과 가족 해체가 급증한 데 뿌리를 두고 있다. ‘유감스러운 독신자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은 바로 귀족적인 영국식 발음과 장난스러운 얼굴 표정이 매력적인 영화배우 휴 그랜트. 그는 영화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2002년)에서 멋진 비혼남으로 나와 남성 싱글족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영국 싱글족의 비율은 1971년 18%에서 2001년에는 30%로 대폭 상승했는데 2026년에는 전 가구의 38%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매년 15만명이 ‘홀로 살기’를 선택하고 있다. 신용카드 회사인 마스터카드는 지난해 ‘아시아의 미래 소비자 시장을 형성하는 10가지 역동적인 트렌드’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도시에 거주하며 고소득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20~35세 젊은 싱글족이 미래의 핵심 소비 주체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시아에서도 비혼자가 미래 소비 주체 될 것”


이 보고서는 “싱글족은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기 때문에 저축을 하는 등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현재 자신의 만족을 위해 소비하고 자신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특성이 있어 아시아의 소비 문화를 주도하는 강력한 세력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젊은 싱글족이 연평균 1.5%씩 늘어나 2004년 7천9백30만명에서 2014년에는 9천1백30만명에 이르고, 인도도 연평균 3.6%씩 증가해 같은 기간 6천8백20만명에서 9천3백30만명이 될 전망이다.
중국 신화통신도 최근 싱글족이 광둥·베이징·상하이·우한 등 대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늘어나 이미 베이징과 상하이 두 도시에서만 1백만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독신 왕국’ 일본의 고민 역시 ‘나홀로 가구’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점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30대 전반의 싱글족이 1950년에는 남성 8%, 여성 6%였던 것이 2000년에는 남성 43%, 여성 27%로 크게 늘어났다. 일본의 총인구는 2004년을 정점으로 200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대신 총 세대 수는 2000년 4천6백78만 세대에서 지난해 4천9백55만 세대로 급격히 늘었다. 인구 감소와 세대 수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나홀로 세대’의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나홀로 가구’는 전체 가구의 27.6%를 차지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2002년 조사에 따르면 18~34세 미혼자가 말하는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첫 번째는 남녀 모두 적당한 상대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맞선이나 직장에서의 사내 결혼은 줄어든 대신 안정되고 새로운 만남의 장이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일본의 고용 악화도 싱글족 증가에 한몫 한다. 일본 여성의 91%가 결혼 상대의 조건으로 경제력(2002년 조사)을 들고 있는 마당에 얄팍한 월급 봉투는 결혼의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경제의 주요 트렌드를 미리 짚어 매년 초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역할로 유명하다. 지난 1월 말 폐막한 올해 세계경제포럼은 ‘권력의 이동’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거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개척해야 한다면서 ‘싱글즈 이코노미(Singles Economy)’라는 신조어를 내놓았다. ‘싱글즈 이코노미’ 분과회의는 “오늘날 선진국 도시에서는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성을 가진 30대 안팎의 싱글족들이 생산과 소비의 중요한 주체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혼 성인과 다른 취향을 갖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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