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덫'에 갇힌 일본
  • 조홍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3.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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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위안부 망언'으로 안팎 '망신'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유럽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 매매를 시인했다. 미국도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세계 속의 지위를 향상했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의 덫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 있다. 그곳은 지난 30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동아시아다. 그리고 이 지역 과거사에서 치욕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는 불행한 주인공은 일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만명의 아시아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하원이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하더라도 다시 사과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1백20여 명의 자민당 의원 그룹은 심지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일본군의 만행을 마지못해 인정한 1993년의 공식 사과마저 철회할 태세다. 이 그룹의 리더 나카야마 나리아키는 아시아 여성들이 돈을 받고 매춘을 했으며 일본군의 위안소는 지금의 매춘 카페테리아와 다를 바 없다고 강변했다. 그 일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생했을 뿐, 인류사에 줄곧 있어온 하룻밤의 파트너를 산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이제 와서 역사의 법정에 세운 나라가 하필이면 미국이다. 거기에는 함축성이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의 동맹이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과오를 바로잡지 않고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이룰 수 없다. 아울러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핑계로 6자회담 비협조를 공언하는 일본을 압박해 북핵 해결에 도움을 얻으려는 눈치도 보인다. 미국 하원 결의안을 일본계의 마이크 혼다 의원이 발의한 것도 기구한 우연이다. 일본을 방문한 존 네그로폰테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위안부 강제 동원은 “전쟁의 가장 개탄스러운 행위”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군이 즐긴 ‘위안’은 ‘강간’이었다고 혹평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북한의 반응이 이색적이다.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의 손자인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앞장서서 사과하기는커녕 이를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있는 모습은 적반하장의 극치라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아키히토 일왕을 지목했다. 문제 해결의 적임자는 히로히토의 아들 아키히토라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2년 베이징 방문 때 일본이 중국인들에게 참혹한 고통을 준 불행한 시절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쳤다.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원천적으로 치유하는 다음 단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지금이라도 정치권에서 맴돌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왕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면 실마리는 보인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로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긴장시킨 고이즈미 전 총리의 빗나간 외교를 불식하고 인접국들과의 화해를 복원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은 취임하자마자 사라지고 반대로 고이즈미보다 더 뻔뻔한 길을 택했다.
2차 대전과 냉전의 잔재 청소가 가장 느리게 진행되는 지역이 아시아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때문에 입은 피해는 현재사로 남아 있다. 두 나라의 상처를 밑천으로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은 사죄는 하지 않고 엉뚱한 데서 일본의 영광을 찾고 있다. 무력으로 아시아를 평정하려다 실패한 일본은 과거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과거에의 집착을 통해 구겨진 자존심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식 역사 왜곡의 전형이다.


 
미국 내 친일 세력도 점차 등 돌려


아베 총리의 행보에는 나름으로 이유가 있다. 그는 바닥을 기는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 보수 우파와 손잡고 있다. 민족주의로 채색된 보수 우파들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고수한다. 인접국을 점령한 것이 죄악이 아니라 피점령국의 발전과 개방에 기여한 시혜였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한국의 발전과 민주화는 36년의 일본 통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우기는 역사가도 있다. 아베는 이 세력의 비위를 맞추느라 바쁘다. 
그의 계산은 악용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국내 정치적 실정을 무마하는 데 아베 총리를 이용한다. 중국이 경제적 실리를 감안해 일본에 대해 반응을 자제하는 반면 한국은 거국적으로 일본 규탄에 나서 대조를 이룬다. 아베의 근시안적 접근을 한국 정치인들이 표절하는 것 같다.
아베 총리가 무슨 잔꾀를 부리든 한국 및 중국과의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 한 성과를 낼 가능성은 없다. 자민당은 2차 대전 전범자들의 처벌을 최소화했다. 그래서 얻은 것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 추락이다. 1995년 당시 사회당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사과도 함께 퇴색했다. 아시아에서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상실했다. 찰떡 궁합을 과시하는 미·일 동맹에도 그늘이 졌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은 일본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에 의해 무너졌다. 그는 1992년 방위청 문서 보관소에서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입증하는 문서를 찾아냈다. 이 문서에는 일본군이 패전 후 아시아 전역에서 운영된 위안소 관련 자료들을 소각·폐기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자신들의 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스스로 폐기하고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 하원이 일본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상정하고 3명의 피해 여성들이 증언한 자체가 사실상의 증거이다. 한국의 이용수 할머니(78)는 하원 증언에서 “내가 산 증거”라고 절규하듯 말했다.
도쿄에서 중립적 싱크탱크를 운영하는 모리타 미노루의 논평이 흥미롭다. 아베 총리가 증거 타령을 하면 할수록 일본과 그의 딜레마는 점점 깊어진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미국 내 친일 세력도 갈수록 등을 돌리고 있다. 미국의 대일 여론이 악화되면 부시 대통령도 언제까지나 그를 감쌀 수는 없다.
최근 들어서는 아베 총리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 그는 중의원에서 일본의 전쟁 범죄를 사과한 1993년 당시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의 ‘고노 성명’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항의는 못 들은 척하다가 뉴욕 타임스의 논평 후  태도를 바꾼 것이다. 불필요한 자극으로 아베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국과 호주에서 강요된 섹스를 고발한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거짓말’로 매도한 그의 오만과 우둔은 세계 전역에서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증폭시켰다. 10년의 경기 침체에서 겨우 벗어나 재기에 매진할 순간에 이런 식의 역사 논쟁을 재연시키는 아베 총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본 안에서도 팽배하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디나 셸턴 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다룬 ‘뉘른베르크 재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범죄는 제때 청산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연된다. 유고와 르완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분쟁에는 미국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미국은 1951년 미·일 평화조약에서 전쟁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규정하고도 당시 일본의 재정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위안부 보상 지연을 묵인해왔다. 이 규정은 지금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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