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당' '보수 본색' 꼬리표 굳어질라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3.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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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손학규 탈당에 비상..당 이미지 악화 걱정
 

한나라당에 비상이 걸렸다. 손학규 전 지사 탈당 때문이다. ‘보수 꼴통, 대구·경북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그동안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의 훌륭한 페이스 메이커, 도우미였다. 그는 성향도 상대적으로 진보·개혁 쪽이고, 출신도 경기도이다. 보수 성향인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를 대체하기는 어려웠어도 보완재 역할은 충실히 해왔다. 그런 그가 빠졌다. 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함이 한나라당을 덮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1997년, 2002년 두 번의 대선 악몽 때문이다. 이회창 후보도 ‘보수 꼴통’ ‘영남당’이라는 정치 공세 앞에서 무너졌다.
손 전 지사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은 군정 잔당들과 개발 독재 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라고 퍼부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군정 잔재는 박근혜 전 대표, 개발 독재 시대 잔재는 이명박 전 시장이다. 손 전 지사의 저주를 풀지 못하면 한나라당은 군정 잔재와 개발 독재 잔재 간에 경선을 벌여야 할 판이다. ‘보수 꼴통의 리그’로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벌써 열린우리당에서는 “손 전 지사 탈당으로 한나라당에는 박정희·전두환 두 사람의 사진만 걸렸다”라고 비난하는 판이다.


이명박·박근혜 모두 TK 지역 출신


더 괴로운 것은 이-박 두 사람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한 사람은 포항, 다른 한 사람은 대구다. 두 사람의 경선은 영남도 아니고 ‘대구·경북 그들만의 잔치’로 치부될지 모른다. 비영남 출신 원희룡 의원 등이 있다지만, 구원 투수가 마땅치 않다. 홍준표 의원도 영남 출신이고, 그렇다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다. 한나라당 경선은 이미 흘러간 옛 노래요, 늘어진 테이프 되듣기가 되었다.
이-박 캠프는 손 전 지사 탈당을 애써 평가 절하한다. 이 전 시장측 정두언 의원은 “여론지지율 측면에서 손 전 지사가 차지한 비중이 작아 달라질 점은 없을 것이고, 있더라도 원희룡 의원이 공백을 메워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원은 “오히려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후보로 가시화될 경우 경선 구도는 더 안정화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박 전 대표측 유승민 의원도 “경선 구도에 당장 변화가 올 것 같지 않다”라고 해석했다.
손 전 지사 탈당이 당장 한나라당에 일격을 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지지율이라야 고작 5% 안팎이었다. 당내 대의원 지지도는 더욱 미약하다. 그러나 그의 탈당을 수량으로만 계산하면 곤란하다. 그의 탈당으로 한나라당에 덧칠해질 색깔이 문제다.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을 바로잡고 새 기운을 불어넣어 미래·평화·통합의 새 시대를 여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왔으나 실패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미래·평화·통합의 세력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투다. 그의 말은 곧 현실화될 한반도 평화 체제와 ‘신북풍’ 등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을 뒤덮는 ‘황사’가 될지 모를 일이다.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이-박 두 사람도 급해졌다. ‘보수 꼴통’의 딱지가 붙기 전에 변신해야 한다는 요구에 쫓기고 있다. 역시 이 전 시장이 빠르다. 그는 손 전 지사 탈당 직후 “한나라당이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가려면 시대 변화에 반보라도 앞서야 한다”라며 ‘개혁’을 화두로 치고 나왔다. “우리는 변화하고 있는데 국민은 이를 느끼지 못한다”라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반개혁’ 딱지를 경계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전 시장은 손 전 지사에게 탈당의 빌미를 주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손 전 지사 탈당 직전, 일산에서 전당대회에 버금가는 출판기념회를 갖고 고집스럽게 대세론을 밀어붙였다. 소속 의원의 절반인 62명이 참석함으로써 확실하게 세를 과시했다. 공천을 미끼로 한 초선 의원 줄 세우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정중하게 모셨다. 당장 ‘구태’라는 손가락질이 돌아왔다. 손 전 지사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줄 세우기를 강요한 이 전 시장측과 소장파들의 훼절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 전 시장은 줄 세우기와 관련해 박 전 대표측으로부터도 협공당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캠프의 대변인 한선교 의원은 “권력 지향적 소장파만 존재한다. 손 전 지사를 떠나보낸 것은 소장파”라며 소장파 의원들이 다수 포진한 이 전 시장 캠프를 비난했다. 이 전 시장이 줄 세우기 비난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국민의 정당’ ‘정책 정당’ ‘개혁적 민주 정당’만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TK 행사 참석·지역 방문 등으로 ‘눈살’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그는 손 전 지사가 비난한 ‘군정 잔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독재에 대한 시비에 온몸으로 맞서야 할 처지다. 이미 긴급조치의 비인간적 성격과 인혁당 사법 살인, 고 장준하 타살 의혹 등 박 전 대표가 입장을 밝혀야 할 소재들이 많다. 더구나 그는 박정희 정권이 광주 학살의 원인까지 제공했다는 비난을 극복해야만 한다. 박 전 대표가 손 전 지사 탈당 직후 “내가 꿈꾸는 사회는 개혁을 핑계로 헌법 정신을 무너뜨리는 좌파의 잘못된 개혁도 아니고 무조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도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고, 고칠 것은 과감히 고치는 것이 내가 꿈꾸는 사회”라는 ‘중도’ 표방도 정곡은 아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씌워진 ‘보수 꼴통’이라는 딱지는 이-박 두 사람의 후보 경선이 ‘대구·경북-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냐는 따가운 손가락질보다 상대적으로 벗어나기 쉬울지 모른다. 그 예가 눈앞에 있다. 이 전 시장은 손 전 지사가 탈당한 다음날 서울에서 열린 TK(대구·경북) 행사에 참석했다. 같은 날 박 전 대표도 경북 안동을 찾았다. 안동은 이 전 시장이 하루 전날 방문한 곳이다. 영남 후보들이 영남의 잔치를 위해 영남을 찾은 격이다. 당장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영남 세력으로 낙인찍기 위해 안간힘이다. 호남-충청을 연결하는 서부 전선을 구축해 영남을 ‘왕따’시키는 전략의 효용 가치를 충분히 아는 터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그 함정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보수 꼴통의 리그’와 ‘영남 후예들의 잔치’ 속으로. 이회창의 ‘뺄셈 정치’의 악몽이 손학규를 포용하지 못한 한나라당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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