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악마의 판'에서 통할까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3.2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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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정치의 벽 높고 손학규와 충돌 불가피해 고민...지지율도 낮아 '이중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탈당으로 대선 방정식이 복잡해졌다. 특히 ‘제3 지대’에 병목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손학규 전 지사와 정운찬 전 총장의 충돌이다. 두 사람 모두 제3 지대의 패자를 노리고 있다. 과연 누가 제3 지대를 차지할까? 손 전 지사의 그림은 드러났다. 손학규-정운찬-진대제가 ‘드림팀’을 만들어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를 하자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한 그림이다. 그러나 정운찬 전 총장은 즉각 거절했다. “손 전 지사와는 인간적으로 만나자면 만날 생각이 있지만 정치적 모임을 할 생각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경기고·서울대 1년 선후배 간인데 찬바람이 불 정도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럴듯하다. ‘드림팀’으로 거론되는 세 사람 모두가 경기고·서울대 출신이고 자신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 손 전 지사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진 전 장관은 미국 MIT 공대 출신이라는 이력을 들었다. “외국 명문 대학 출신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꼭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 학부 출신들이 모여 ‘얼치기 쇼’를 해보아야 국민들이 거들떠보기나 하겠느냐는 비판이다. 정치적 판단에서 손 전 지사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 전 총장의 대선 레이스는 이미 출발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경제가 확 달라진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라고 포문을 열기도 했다. 아예 작심하고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는 듯한 태도다. 그는 자신의 운신 방향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꽃가마는 안 탄다”라며 반노무현-반한나라당을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에는 “국정 실패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라고 했고, 한나라당을 향해서는 “한나라당은 내 머릿속에 부패한 정당으로 각인돼 있다. 거기로는 못 간다. 한나라당으로 갈 경우 친구들이 돌을 던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손 전 지사와의 격돌은 피할 수 없다.

 
손 전 지사의 탈당 전까지만 해도 그는 이명박 전 시장만을 경쟁 상대로 보고 있었다.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과 누가 국가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갈 것인가를 놓고 국민 심판을 받는다면, 지금 출발해도 내가 밀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서울대 총장 시절 서울시장이었던 이 전 시장을 여러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거칠고 독선적이더라’고 평가했다. 급기야 ‘주변에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당신이 출마하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라는 말까지 털어놓았다. 이명박 대항마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설정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이 전 시장에게 자신감에 넘쳐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그가 본선에 진입도 하기 전에 제3 지대에서 손 전 지사와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프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면 넘치는 자신감만으로 월계관을 쓸 수는 없다. 그의 향후 행보를 두고 계산이 좀더 복잡해졌음은 분명하다. 대결 구도가 엉킨 만큼 경우의 수도 늘어난 것이다.


‘한국의 우드로 윌슨’ 꿈꾸지만…


그러나 정 전 총장은 이명박·손학규 등과의 대선 방정식을 따지기 이전에 분명하게 답해야 할 것이 있다. 상아탑 안의 대학 총장이 프로 정치인들의 세계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 혹시 되면 잘하겠는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다. 조순 전 서울시장, 이수성·노재봉·이홍구 전 총리도 정 전 총장 못지않은 서울대 출신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 정치 세계에서 포말처럼 사라졌다.
 대학 총장 출신들의 숱한 실패를 보아온 언론이 그냥 넘어갈 리 없다. “대학 총장이 대통령이 된 예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정 전 총장은 곧바로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 총장 출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그를 ‘성공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려놓고 평가하고 존경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미국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최하위권이다.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을 창립했고 국제 사회의 동의를 얻었지만, 자국 국회에서는 ‘참석 불가 결정’으로 타격을 입었다. 야당을 배제한 채 대표단을 여당과 측근들로 채웠기 때문이다. 윌슨의 임기 후반 인기는 거의 제로였다. 심한 병이 났으면서도 부인에게 정치를 맡기고 사퇴하지 않았다. 당연히 경제가 추락했다. 미국의 어떤 정치인도 윌슨을 따라 하지 않는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윌슨은 ‘캠퍼스 지식’을 정치에 접목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통령이다.
정 전 총장에게도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대학이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학생들과 아옹다옹해온 교수가 총장을 지냈다 해도 거대한 현실 정치의 벽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프로 정치인인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실패를 자인하고 있는 마당이다. 그 실패의 대부분은 여야 관계 파탄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정치권에 자신의 세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정치적 이해를 조정하고 국론을 모아 나라를 이끌 수 있겠느냐는 엄숙한 물음 앞에 서야 한다. 동료 교수인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악마의 정치’라고 표현한 현실 정치다. 게다가 그가 뛰어들겠다는 것은 국회의원 선거도 아닌 대통령 선거다. ‘대학 총장 자리도 쉽지 않은 자리’라고 능력을 내세우지만, 대학과 나라를 수평 비교하는 그에게서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그를 걱정하는 충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정 전 총장의 이미지에 기대어 국민들을 속이려 들지 마라. 어떤 구원 투수도 구여권을 구원할 수는 없다. 구여권의 ‘거짓말 게임’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라고 충고했다. 또 “서울대 총장은 한국에서 제일 손쉬운 직업 중 하나이다. 전국 1등부터 5천등까지 좋은 학생 싹쓸이해서 한국 대학 서열 1위 유지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라고 퍼부었다. 정 전 총장이 교수로, 총장으로, 이처럼 신랄한 비판에 직면한 적이 있는지 자문해야 할지 모른다.
여론조사는 그가 마주한 현실이다. 지난 3월7일 중앙일보 조인스 풍향계 조사 결과, 범여권 후보로 정 전 총장이 출마할 경우 ‘(지지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9.9%에 그쳤다. ‘(지지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무려 69.4%다. ‘(지지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호남 지역 거주자(24.4%) 및 출신자(17.6%), 열린우리당 지지자(18.3%)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역부족이다.
‘꽤 괜찮았던 정치인’ 손학규의 탈당을 보면서 ‘꽤 존경받았던 서울대 총장’ 정운찬의 정치 입문에 마음 졸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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