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로 대리 배설을 한다"
  • 조규석(언론인) ()
  • 승인 2007.03.26 09: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벽 장식대 위의 컴퓨터 모니터에 떠오른 ‘야한 영상’- 정확히 표현하면 ‘남녀의 성희(性戱)’ 화면이었다. 영상은 조금 후에 서서히 꺼졌지만, 그렇다 해도 방문객으로서는 의아스럽고 민망한 장면과 잠시나마 대면했던 셈이다. <즐거운 사라>로 대표되는 ‘야한 작품’들을 발표해 법정에 섰고 최근에는 제자의 시 표절 문제로 잠정적이나마 다시 강단에 설 수 없게 된 마광수 연세대 교수. 그는 그렇게 통념으로는 ‘외설’일 수밖에 없는 거실 풍경을 ‘방치’한 채 우리를 맞았다. 단순한 부주의였을까, 의도적으로 그랬을까는 묻지 않았다. 시·소설·에세이·평론 등 글의 모든 형식을 동원해서 성(性)을 줄기차게 쏟아내는 마광수는 타락한 학자, 추잡한 지식인인가. 법과 규범으로 무장한 세상과의 불화(不和)를 마다하지 않는 그의 내면 풍경은 과연 어떠할까. “여기 오면서, 당신과는 밤 시간에 대화해야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당신에 대한 편견인가.” 불쑥 던진 첫 질문에 그는 낮은 음성으로 짧게 대답했다. “아니다. 학생들 앞에서 (성 관련) 강의도 하는데….” 환한 오후이지만 나름의 진실을 토로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서나 문학의 소재로서나 생활의 내용으로서나 당신에게 성(性)은, 섹스는 도대체 뭔가?


관심이 가다 보니 유일하게 되어버린 대상이다. 살다 보면 솔직히 얘기해서 먹는 것과 섹스,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지 않나. 그런데 먹는 것에 대한 연구는 누구나 한다. 경제학이 있고, 문학에서도 (사람의 생존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민중문학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성 연구는 불모지였다. 성 문학의 국산품은 별로 없고 외제는 많다. 대표적인 예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있다. 국산품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공부하고 창작한 것이다. 나는 먹는 것보다 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열매를 먹어야 사는데, 열매가 왜 열리나. 자웅의 결합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쇠고기를 먹으려면 우선 소가 섹스를 해야 한다. 동양철학의 음양 이론에서도 성을 중시한다. 음양의 기호가 다 성을 상징하는 거다. 동양에서는 서양의 중세기 역사, 즉 성 억압의 역사가 없다. 왜냐하면 공자·맹자가 음양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킨제이 보고서에서 남자는 10분에 한 번씩 섹슈얼 판타지를 갖는다고 얘기했다. 내가 볼 때는 돈을 버는 것도 섹스 때문이다. 먹으려고 벌지만, 먹는 걸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종국의 목적은 섹스다. 짐승이 싸우는 것도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성욕에 대한 의지가 권력욕인 것이다.


지금 말한 것은 학문 혹은 이론으로서의 성이다. 실제 삶에서는 어떤가?


사실 이론만 떠들었지 현실적으로는 내 성적인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카타르시스를 중시한다. 카타르시스에 대한 연구서로 유일한 책이 내 책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이다. 카타르시스는 우리말로 하면 대리 배설, 대리 만족이다. 성 문학은 성욕의 대리 배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회 속에서 살려면 윤리의 간섭을 받으니 성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 등으로 대리 배설을 하는 것이다. 꼭 직접 섹스만이 섹스는 아니다. 섹슈얼 판타지를 즐기는 것도 섹스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은 탐닉할수록 허망이 깊어지는 게 아닌가. 그리고 성에 대한 집착은 성에 대한 콤플렉스란 이론도 있다.


왜 허망한가. 의사들이 농담으로 말하길, 노인 환자가 죽을지 아닐지 테스트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남자 환자의 경우 예쁜 간호사를 보냈을 때 눈이 팍 돌아가면 살 사람이고, 별 반응이 없으면 죽을 환자라고 한다. 검열을 피한 작품들의 경우, 실컷 묘사한 다음 허무하다고 결론을 낸다. <즐거운 사라> 사건 당시 내 판결문만 봐도, ‘사라’가 반성을 안 한다는 게 유죄의 이유였다. ‘보바리 부인’도, ‘안나 카레니나’도 자살한다. 그 작품들의 한계다. 허망하다는 건 변명이다. 성욕은 죽을 때까지 있다. 다만 남자의 발기력 등 실행력이 문제일 뿐이다. 나는 콤플렉스를 부정한다. 프로이트는 뭐든지 콤플렉스에서부터 오고 변태를 낳는다고 했다. 심지어 직접 섹스를 안 한다는 이유로 관음증도 변태라고 봤다. 생식적 섹스, 노멀 섹스만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변태는 없다고 본다. 발기력이 부족할 경우,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취향’이지 변태가 아니다. 콤플렉스를 다른 수단으로 얼마든지 승화시킬 수 있다.


 
개인의 성의식은 유년의 성장 환경과 깊이 연관된다고 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님은 교육을 받지 않은 분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성적표를 단 한 번도 어머님께 보여드린 적이 없고 어머니도 그걸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권부재(父權不在)의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고 성장했다는 뜻이 되겠다. 내 성의식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이 넘치는 세상이다. 문학의 이름으로 성행위를 그렇게 장황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나?


거꾸로 얘기할 수도 있다. 성이 넘치는 세상에 왜 야한 소설 하나로 잡아가나? 이번에도 인터넷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다고 기소되어 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15년 전 것을 보고 지금 그것을 ‘야하다’고 할 사람 하나도 없다. 요즈음엔 더 야한 게 넘치고 넘친다. 그 당시에도 더 야한 번역서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넘쳐나는 성은 음성적이다. 공식적으로 매매춘 단속을 하지만 북창동이나 강남 룸살롱의 실태는 어떤가? 그렇게 음성화하니 성병 만연 등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넘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양지로 끌어내자는 게 내 주장이다.


제자들이 조어(造語)로 붙여주었다는 ‘마광쉬즘’은 정신보다는 육체에, 질서보다는 자유에, 관념보다는 감성에 가치를 둔다는 것 등으로 요약되겠는데,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즘’ 아닌가?


외국 사상과 다른 게 있다. 난 동양 사상을 접목했다. <음양사상과 카타르시스>란 논문도 있고, <주역의 상징 체계>라는 논문도 있다. 서양은 이원론이다. 선과 악, 천사와 악마 등. 육체는 더럽고 정신은 깨끗하다고 한다. 동양은 일원론이다. 음양의 상호작용을 주창한다. 어느 것이 위라고 볼 수 없다. 서양식으로 하면 양은 좋고 음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천국에 가기 싫다. 내가 쓴 것처럼, 천국에 빛만 있으면 잠도 못 자는 것 아닌가. 동양에서는 음양의 법칙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서양은 철저히 기독교 윤리에 입각했다. 가령 로렌스(<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 등이 끝까지 고수한 것이 일부일처제다. 그것은 굉장한 모순을 낳고 있고 그래서 무너져가고 있다.


문학에서 표현의 자유는 무한대로 보장되어야 하나?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전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이슬람 나라를 제외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섹스를 막지 않으면 온 국민이 타락한다는 생각은 굉장한 엘리트 의식이다. ‘내가 보면 예술이지만 네가 보면 포르노’라는 검열자의 입장은 아주 오만한 것이다. 문학성을 끌어내려면 우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서양 문학의 역사는 금서의 역사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40년간 금서였다. <테스> <데카메론> 등도 마찬가지다. 입센의 <인형의 집>이 나왔을 때 난리가 났었지만 지금은 여성주의의 원조 희극으로 본다.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는 상영 금지되었으나 지금은 유미주의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금지된 것에 도전하는 게 문학이다. 표현의 자유는 무한대로 보장해야 한다. 국가가 간섭하면 모든 예술이 죽는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금지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니 현실 속의 살인은 처벌해야 하지만 적어도 상상적 살인은 용인돼야 한다. 상상의 살인을 용인하면 직접적 살인 욕구가 억제된다. 대리 배설 이론이 그 내용이다.


<즐거운 사라>를 가령 <채털리 부인의 사랑> <북회귀선> 등과 비교했을 때 스스로 작품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나?


그건 희망 사항이다. 어느 작가든 그걸 바라지만 자신 있다는 사람은 건방진 거지. 단,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대로 썼다. 그런데 그 ‘사라 사건’ 후에 피해 의식과 자기 검열이 생기더라. 내가 ‘(글 쓰는) 공장 하나 망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작품들이 언젠가는 문학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고 본다. 대학 교수들에게는 아직도 내가 뜨거운 감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마추어 연구자들의 논문은 많다. 내 시의 경우, 직접적 묘사가 없고 음란하다는 느낌은 안 주기 때문에 교수나 평론가가 많이 언급한다. 그래서 내 시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라고도 한다. 나의 수필 <서편제 비판>이 교과서에도 들어갔다. 경희대·건국대에서 개설한 ‘문학과 성’ 과목에서 쓰는 교재로 내 글을 채택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 된 것 같다. 엘리트주의, 문학적 엄숙주의, 경건주의와 같은 것을 부순 거니까. 그런 면에서 <즐거운 사라> <권태>(<권태>는 <즐거운 사라>보다 다섯 배 야한데 안 걸렸다) 등은 적어도 ‘문학사적 가치’는 인정받을 것 같다.


단순한 독자의 독후감으로는 <즐거운 사라>는 그냥 야한 소설이라는 느낌뿐일 수도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느끼게 되는 생명·진지성·절실함 같은 게 없지 않은가?


호불호의 문제다. 나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싫어한다. 그것은 관념 소설이다. 무겁고 진지하다. 나는 톨스토이, 이광수, 이런 거 진저리가 난다. 나는 정반대다. ‘작가의 말’에 썼듯, <즐거운 사라>는 가벼운 소설이다. 왜 엄숙해야 하나. 나의 가벼움은 의도된 경박성이다. 나는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무거운 게 있으면 가벼운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달라는 거다. 모두 다 가볍자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판타지 소설은 평론에서 제외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그렇게 팔려도, 우리나라 작가가 쓰는 판타지 소설에 대해서는 문학성을 거론조차 안 한다. 문학계 주류에서는 민족주의와 리얼리즘밖에 모른다. 늘 주류에 끼려고만 하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변절한다. 예전에 좌파 문학 하던 이들이 지금은 모두 포스트 모더니즘을 떠든다. 웃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이름 바꾼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변절이다. 왜 바꾸나. 그것도 필요한 것인데. 시류 따라가는 거지, 지조도 아니다. 여러 가지가 있어야 한다. 나 같은 놈도 있어야 하고…. 전부 나 같아지라는 게 아니다.


저서 <문학과 성>에서 우리나라 문학에는 유미주의가 없다고 했다. 작가가 꼭 유미주의에 평생을 걸 필요 있나?


문학사에서 유미주의는 굉장히 중요하다. ‘예술 위한 예술’이 유미주의이고, ‘인생 위한 예술’이 리얼리즘이다. 그게 서로 보조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미주의적 글쓰기를 한 사람은 기껏해야 김동인뿐이고, 나중에는 그조차 못 썼다. 광복 이후에 유미주의 계승자가 없다. 리얼리즘과 교훈주의(이광수주의)뿐이었다.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도 심지어 조선 시대에조차 신윤복이 춘화를 그렇게 그려도 안 잡아갔다. 오히려 지금이 이상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조선 중기 이후의 ‘나쁜’ 주자학과 광복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들어온 ‘나쁜’ 의미의 기독교(청교도주의) 탓이다. 청교도주의는 매우 나쁘다. <주홍글씨> 보면 나온다.


저서가 분야와 양 면에서 방대하다. 대중에게는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으로만 알려진 게 억울하지 않나?


정부에서 그렇게 만든 거다. ‘<즐거운 사라> 사건’이 없었으면 거부감이 없었을 텐데, 대중이 매스컴 때문에 나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갖게 됐다. 막상 내 책 한 권이라도 봤냐고 물어보면 봤다는 사람이 없다.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즐거운 사라> 사건’ 후 있었던 토론회에서, 한 여자 교수가 핏대 올리면서 내 욕을 하더라. 사회자가 내 책을 봤냐고 하니, 돌아온 대답을 그대로 옮기면 “내가 그 따위 책을 왜 봐요”였다.


일상의 안정 등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해도 좋을 만큼 창작이 중요한가?


그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왜 그랬겠나? 처음 난리가 난 게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때다. 이번처럼 (학교 당국이) 내 강의를 뺐다. 학생들이 데모해 복직은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때 국문과 교수 중 그 책을 본 사람이 없었다. 안경환씨(서울대 교수)가 인권위원장이 된 것을 보고 이 정권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그는 <법과 문학사>라는 책도 냈고, 스스로 문학통이라 자부하는 사람인데, 내 재판 때 <즐거운 사라>는 ‘하수도에 버려야 할 폐기물’이라는 극언을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인권을 말할 수 있나. 어찌됐거나 창작의 중요성을 점점 더 절감한다.


그림도 상당한 경지이고, 시는 대중음악 가사로도 인기다. 당신을 천재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 마광수’는 누구인가?


솔직히 말해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 공부꾼이다. 모든 게 공부라는 간접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여러 결과물(저서)이 나오는 것이다. <즐거운 사라>나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싸잡아 욕을 하니 다른 업적이 가려져 섭섭하다. 지난해에만 책을 네 권 냈고 <삐딱하게 보기>라는 논문도 냈다. 내 연구 업적의 대표적인 것이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시학>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등이다.


최근 표절 시비는 교수로서나 작가로서 치명적이다. 왜 그랬나?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 아닌가?


그것은 아니다. 5백30 쪽짜리 그 시집에 실린 시가 4백 편이다. 출판사상 제일 두꺼운 시집인데 굳이 변명하자면, 어린애가 남의 집 가서 예쁜 장난감 하나 가져온 거다. 그야말로 작품이 아까워서였다. 그러나 미친 짓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잘못했다.


남녀의 육체적 특징을 근거로 들어 ‘두 번 결혼’이 합리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나는 결혼 말고 계약 동거를 주장한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거의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간통죄’라는 웃기는 법이 있는 건 우리나라뿐이다. 자발적 동의 아래 동거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갈 것이다.


결혼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사상에 도달하기 전이었나?


결혼은 서른네 살에 했는데, 그때까지는 성에 대한 공부가 많지 않았다. 결혼 후 연구가 시작됐다. 성이 결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컸고, 아내와는 궁합이 안 맞았다. 이혼 동기는 다들 말하는 ‘성격’ 차이 때문이었지만, 더 중요한 건 성적 차이였다. 성관(性觀)이 너무 달랐다. 밤이 재미없었다.


지금은 성생활 선택의 자유를 확보했는데?


그렇긴 하지만 이혼 후 계속 안 좋았다. 1991년에 이혼하고 92년에 ‘<즐거운 사라> 사건’이 났다. 학교에서 잘리고 복직한 후 과 선생들이 ‘이지메’를 해서 2000년부터 2년 반 동안 쉬었다. 이혼 후 한시도 맘 편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늙어버렸다. 지금은 또 유행이 ‘연상녀와 연하남’이다. 난 기회를 잃었다.


쉰 중반이 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성이 화두인가?


그걸 고민 중이다. 두 달 전 <유혹>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또 걸렸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결정이 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표지 양쪽에 뻘겋게 ‘19세 미만 구독 불가’ 표시를 인쇄해서 비닐 포장을 하고, 진열도 못한다. 끝까지 성 문학을 하자는 소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검열의 문제가 있고, 그래서 독자와 내가 차단된다. 독자는 <즐거운 사라> 정도에 만족을 못하고 더 하드코어적인 것을 원하는데 검열의 기준은 예전과 똑같다. 그러니 늘 눈치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마음의 욕심은, 어쨌든 하나만 파고 싶다는 쪽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