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돈이다" 오염 감량 대작전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3.2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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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교토의정서 발효에 비상...자동차, 철강, 전자 업체 특히 민감

 
2008년 교토의정서의 본격 발효를 앞두고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1960~ 70년대 오일쇼크 때 겪었던 일이 6년 뒤에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정유·철강·시멘트 업종은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석유협회는 교토의정서가 본격 발효되면 휘발유·경유 값이 뛰어 유류 파동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원자재가 귀해져 자동차 생산과 주택 보급에도 차질이 오고 대중교통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가 교토의정서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량(1990년 기준)을 10% 줄일 경우 2020년에는 최대 29조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은 환경 분야 입지 확보만이 지구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산업계는 지난 2월 기후변화협약 대응 추진협의회를 발족시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환경 보호를 위한 산업계 자율 행동 계획’을 세워 실천에 나섰다. 우선 10개 업종별 대책반 협의회가 구성되어 가동 중이다.
업종 가운데서는 자동차·철강·전자 업계가 교토의정서 발효에 특히 민감하다. 탄소 배출에 직결된 에너지를 쓰는 데다 관련 원자재 종류도 다양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대체 에너지원을 찾는 자동차업계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배출 가스를 줄이면서 연비가 뛰어난 차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후변화협약 대응팀’을 만들어 체계적 대응에 나섰다. 올 연말까지 3단계에 걸쳐 △하이브리드 차 등 친환경 차량 개발 및 보급 확대 △생산 현장의 에너지 효율 제고 △교토의정서 대응 기반 구축 목표를 잡아놓고 있다. 유럽연합이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선을 정해놓고 2009년부터 이를 충족시키는 차만 수입하겠다고 선언해 자동차업계에 불똥이 떨어진 것이다.
하이브리드 차는 휘발유 엔진과 전기 모터를 움직여 연료를 아끼도록 고안된 차다. 휘발유 차보다 연료를 크게 절약할 수 있어 배출 가스 절감 효과가 뛰어나다. 수소를 모아두었다가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 나오는 전기 에너지로 차를 움직이는 ‘연료전지 차’가 최종적 대안이라는 데는 대다수 자동차 전문가가 동의하지만, 2020년까지 상용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하이브리드 차·에탄올 차·바이오디젤 차다. 현대차는 최근 친환경 고성능 승용차 싼타페S를 선보이며 저공해 차 개발에 나섰다. 기아·GM대우·르노삼성·쌍용 등 다른 자동차 회사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포스코는 2005년 말 국제 기준에 맞는 온실가스 관리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산화탄소 배출 줄이기에 힘을 쏟아 그해 조강 t당 배출량을 1990년보다 8.4% 줄였다.
‘환경’은 포스코 경영 전략의 기본 요소 중 하나다. 포스코는 환경 보호, 효율적 자원 사용, 지역 사회 복지와 조화를 이루도록 환경 방침을 정해 운용 중이다. 포스코는 에너지 사용량 감축, 친환경 제철 공법 상용화를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1백53건의 에너지 절약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포스코는 에너지관리공단 주관의 에너지 절약 기술 정보 협력 사업에도 참여해 환경 노하우를 다른 철강회사와 관련 업체들이 공유하게 함으로써 업계 전체의 에너지 사용량 감축에 한몫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고장력 자동차 강판 개발이다. 자동차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생산된 이 강판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승용차의 연간 주행거리를 1만1천6백km로 하고 10년간 운행할 경우 8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연비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공기업·정부 투자기관도 현금 지원 등 박차


 
포스코는 오는 5월 광양 경제자유구역 내에 친환경 니켈 공장을 건립한다. 광양제철소 동호안 매립지 6만 평에 3천5백억원을 들여 내년 말까지 연산 3만t 규모의 공장을 짓고 2009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공원 안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연면적 1만8천 평에 녹지율이 30% 이상 되게 설계했다. 환경 감시카메라·자동 측정기 설치 등 상시 감시 활동도 벌인다. 특히 공정에서의 배출수를 재활용하고 최신 집진 설비와 탈황 설비를 들여와 소량의 대기 배출물을 완벽히 없애는 최첨단 공해 방지 설비도 갖춘다.  
전자산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에서 6대 환경 유해 물질이 없는 제품 생산 및 원부자재 수급 체계 구축을 끝냈다. 삼성은 2년 전부터 이를 해외 사업장으로 넓히고 친환경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LG전자 계열사는 전사 차원의 중장기 에너지 사용 감축 계획을 세우는 한편 에너지 절약을 위한 자발적 협약 체결, 온실가스 발생 감축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정유·화학·항공·타이어·제지·섬유·유통·레저 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에너지사업부문에 ‘에너빅스’라는 브랜드를 들여와 사업 확장에 나섰다. 에너빅스는 ‘인간과 환경 중심의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에버랜드는 에너지 절감 사업을 통해 1997년부터 10년간 4천7백억원어치의 에너지를 절약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1백20만t을 줄였다는 계산이다. 이는 나무 5천만 그루를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LG화학은 2004년부터 기후변화협약 대응팀을 운영하면서 모의배출권 거래는 물론 자체 기술 개발에도 나섰다. 그 결과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회사 나주 공장은 폐열을 기계적 압축을 통해 재활용함으로써 손실 증기를 50% 줄인다. 이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한 해 1만5천t까지 감축하는 기술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대기업 못지않게 중소기업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교토의정서 관련 전문회사까지 생겼다. 청정개발체제(CDM)사업 전문 컨설팅업체인 (주)에코아이가 대표적인 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록된 CDM 사업 건수는 4백9건이고 이 가운데 한국은 9건으로 한 해 1천5백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 감축이 예상된다. 한국 등록 9건 중 7건을 에코아이가 개발했다.
공기업·정부 투자기관 및 관련 단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눈길을 끄는 분야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철도. 환경 물류 대안으로 주목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국가물류기본계획(2001~2020년), 국가기간교통망계획(2000~ 2019년)을 세우고 2020년까지 총 길이 4천9백8km, 복선화율 80%, 화물 분담률을 20.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디젤 기관차를 전량 전기 기관차로 바꾸고 천연가스 버스 도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에너지관리공단 역시 온실가스 감축·대체 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에 곧바로 이어지는 사업은 ‘온실가스 감축 현금 지원제도.’ 올부터 기업들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t 줄일 때마다 5천원씩 지원하기로 하면서 생겨난 제도이다. 공단은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관리하는 곳으로 올해 중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 분석 대상을 이산화탄소 이외로 넓힐 예정이다. 또 온실가스 통계 정보 시스템을 갖추고 국가 온실가스 배출 계수도 개발한다. 중부발전소·대체에너지 분야에서는 ‘태양광 주택 보급’을 공단의 핵심 과제로 삼아 2012년까지 태양광 주택을 10만 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풍력 발전·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에 관심 집중


 

지구온난화를 막아줄 희망으로 바다가 관심을 모으면서 이 분야의 연구도 활발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올부터 연차적으로 동·남·서해에 수중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기적으로 측정해 비교·분석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수산과학원 해양연구팀은 2005년부터 이 연구를 위해 제주도 남서쪽에서 배를 이용한 이동 관측을 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해조류 광합성을 이용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흡수 방안과 심해 이산화탄소 저장고를 만드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전력회사들도 대책 마련에 열심이다. 공해가 심한 석유나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해화력발전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순환유동층 보일러와 태양광 발전을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국내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상업용 태양광 시설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한 해 9백2MW로 3백 가구가 연간 쓸 수 있는 양이다. 동해화력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년간 1만1천t까지 줄일 계획이다. 줄인 양만큼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10월 준공식을 가진 강원풍력은 국내 최대의 상업용 풍력발전단지이다. 현재 49기를 대관령목장에 설치해 운영 중이다. 연간 발전량은 24만4천MW로 강릉시 가구의 절반이 쓸 수 있는 전력이다. 이 회사는 2006년 3월 CDM 사업 등록을 마쳤고 한 해  15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여 배출권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약 24억원어치다. 강원풍력의 유효 기간이 10년이므로 온실가스 저감에 따라 2백40억원을 더 벌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전력발전사업체 유로스에너지는 마루베니 사와 함께 강원풍력발전단지 건설비의 60%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 이들 회사는 전남 보성에도 풍력단지를 세우기 위해 풍향과 풍속을 조사 중이다. 조사가 끝나 사업성이 좋다고 판단되면 4천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보성을 노리는 또 다른 이유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비용 때문이다. 일본에서 탄소 1t을 줄이는 비용은 5백 달러이지만 한국에서 CDM 사업을 통하면 15달러로 충분하다.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울산화학은 에어컨 냉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일종인 수소불화탄소(HFCs)를 성공적으로 줄였다. HFCs는 CO2보다 2천4백 배나 유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래는 HFCs를 대기 중으로 전부 뽑아냈지만 지금은 소각로를 이용해 없애고 있다. 이 소각로를 만드는 비용을 일본의 이네오스화학이 투자했다. 이 회사는 시설비 30억원, 운영비 10억원을 들여 매년 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의 50%를 챙기고 있다. 적은 돈을 들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채우고 수익도 얻게 된 것이다. 울산화학은 유엔이 인정한 국내의 첫 CDM 사업이며, 특히 HFCs를 줄이는 사업으로서는 세계 최초이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꿀 교토의정서 발효를 앞두고 기업들은 지금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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