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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일그러짐 속에서 우아함을 빚어내다

세계적인 장애인 조각가 이원형의 '예술과 삶'

글·사진 최일옥 (소설가) ㅣ 승인 2007.04.09(Mon) 10: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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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다이롄에서 작업하는 이원형씨. 이씨는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작업장을 가지고 있다.  
 
국제조각가협회(ISC) 이사, 미국 버몬트 아트센터 이사, 토론토 아트스쿨 이사. 재캐나다 교포 조각가 이원형의 직함이다. 그의 외모에서는 19세기의 곱사등이 화가 로트렉을 볼 수 있으며, 그의 작품에서는 로댕과 자코메티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그를 알면 알수록,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갖고 있는 세계적 조각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재료의 맥박이 시작합니다/ 그의 되어감으로 꿈틀댑니다/ 모델과 욕망의 기계는
주위를 맴돕니다/ 무당의 가락에/
욕구의 손은 찢고 매만집니다/ 작품은 터부의
벽을 잘라 나갑니다/ 그리고 혼돈의 신선한
공기를 불러들입니다/ 성스런 새벽에/
가상의 실체가 그들의 순간을 교환합니다’
 
2006년 2월에 쓴 이원형의 작가 노트이다. 그는 흙과의 만남에서부터 흙의 맥박을 보고 흙이 살아 있음을 안다. 신들린 무당처럼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욕구를 찢어 신이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어 인간을 만들었듯 혼돈의 신선한 공기를 불러들여 인간의 욕망과 성스러움을 흙과 교환한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만은 신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예술가를 ‘신을 닮은 원숭이’라고 말했다. 예술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을 창조하기에. 인간의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 이원형은 정말 신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그를 품지 않았다


이원형은 광복이 되던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곧 이어진 좌·우익 사상 대립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북으로 갔다. 가족에게 씌워진 멍에는 ‘빨갱이’였고 갈수록 그늘은 어둡고 깊어만 갔다.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방첩대에 불려다니던 끝에 그 지옥 같은 나날이 힘겨워 5남매를 남겨놓고 미국으로 가버렸다.
그는 아주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남보다 짧고 가는 왼쪽 다리, 그 불균형으로 뒤뚱거리는 엉덩이와 허리, 오른쪽 날갯죽지 뼈마저 낙타 육봉처럼 솟아난 중증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육신은 뒤틀리고 일그러졌어도, 그는 다른 장애인을 돕는 의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의과대학 필기 시험에 합격했으나 대학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외국어대학 영어과로 진학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고 음악을 즐기던 그가 얻은 일자리는 당시 유행하던 음악 다방의 DJ가 고작.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감추기에는 유리 부스 안이 맞춤이었으나, 미래를 맡길 일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미적 표현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던 그는 다행히도 어머니의 초청으로 미국에 갈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경제적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노력뿐이었다. 미국 대학에서는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학교 앞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다. 가장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조각이었으나, 미술의 기초인 그림 공부부터 시작했다. 1976년 페퍼다인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로스앤젤레스 시립 중앙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즈음 친지의 소개로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 그들의 생계 또한 그의 몫이었다.
우선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사 갔다. 1980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상대 회계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토론토에서 공인회계사 사무실을 열었다. 캐나다 세금 제도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는 교포 사회의 크고 작은 업체들을 도와주었다. 그림을 그리듯 치밀하고 성실하게 운영한 그의 회계법인은 날로 번창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은 창작이었다.
그는 기다림의 의미를 안다. 용트림하는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을 정지한 휴화산, 그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 세계적 작가와 어깨를 겨루기에는 회화의 조류가 너무 멀리 가 있었다. 그가 가장 하고 싶던 것, 언젠가 때가 되면 기필코 자신의 전부를 투영하고 싶던 작업이 조각이었다. 그는 드로잉 작업부터 새로이 시작했다. 그의 사무실 지척에 있는 작업실에는 수십 권의 드로잉 북이 놓여 있다.
이리저리 만들고 뒤틀어본 흙덩이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널려 있다. 고향에 두고 온 한국의 영상들이 작은 테라코타 조형물이 되어 작업 선반에 줄지어 앉아 있다. 그는 그렇게 손과 몸을 풀며 서서히 그 영상들을 파괴하고 재융합하기 시작했다.

   
  이원형씨(위)는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영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밤낮없이 작업한다.  
 
7년 휴지 기간이 끝나면서 분출을 시작한 그의 창작 열기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잘 때도, 먹을 때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온통 수많은 형상이 꿈틀댔다. 온몸에서 뿜어나오는 창작의 열기는 그의 불편한 몸조차도 이겨내고 말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기다려오는 동안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비명과 달관된 시선은 그의 작품에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숭고한 혼을 불어넣었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극한적 한계와 규제를 휴머니즘으로 감싸 안으려 한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를 감상적으로 생각하거나 나약하게 보지 않고 삶의 희망으로 바꾸었기에 가능하다. 그가 최근에 내놓는 추상 작품들은 질병으로 파멸된 인체의 실망과 절망을 보여준다. 고통받는 인간의 뒤틀린 형상은 인간의 나약함을 말해주는 철학적 아름다움마저 드러낸다.


세계가 그를 격찬하다


   
  영국 런던 서레이 조각공원은 <뒷간의 아낙네>(위)를 영구 보존한다.  
 
그의 작품을 처음 주목한 곳은 영국이었다. 한 아낙네가 시골 뒷간에 앉아 용변을 보는 도발적 형상, 지극히 에로틱한 인간의 원초적 모습이다. 그의 작품에 매료된 영국 런던 서레이 조각공원(The Pride of the Valley)에서 <Girl at the Outhouse; 뒷간의 아낙네>와 추상 작품 <The Fool; 바보>를 영구 보존하는 조건으로 구입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그의 작품과 그를 보는 비평가들의 시선은 매우 호의적이다.
‘이원형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의욕과 재능, 환상까지 지닌 누구보다 뛰어난 조각가이다.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좀 불편하지만, 자신의 장애를 훌륭히 극복하고 있다. 신체적 결함을 극복해낸 의지와 결심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그의 품성은 작품 속에서 빛을 발하며, 표출되는 강인한 의지, 카리스마, 지성, 열정, 고뇌 그리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 안팎에 들어 있는 아름다움이다.’- 에디 파월 (영국 서레이 조각공원 큐레이터)
‘사려 깊고 대담하며 원초적인 그의 작품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에게 천부적 재능이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들 만큼 강렬함과 신비함을 발산한다. 그의 작품은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시 판매 중이며 애호가들의 주문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가 위대한 조각가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특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추상 작품들이다. 뒤틀리고, 교란되고, 고통받는 인간의 형상은 질병으로 파멸된 인체의 실망과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동시에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예언적 기질을 보여준다. 특히 <A Family of faces: 한 가족의 얼굴들>은 이런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들만이 성취할 수 있는, 관객의 내면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데이비드 커트니지 (영국 예술투자회사 대표)
그가 쏟아내는 작품의 양과 질에 놀랄 뿐 아니라 곳곳에서 펼쳐지는 미학 강의 또한 다양하다. 그는 한국·중국·베트남 등지에서 열리는 조각 심포지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자신을 알리는 한편 타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이다. 세계로 발돋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멕시코·영국 등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는 틈틈이 그는 그가 좋아하는 ‘드루즈 미학 강의(Deleuzean Aesthetics)’를 한다. 중국 선양 노신 대학, 다이롄 대학과 멕시코 라울 안지아노 주립 미술관 초대전 등 동서를 누비며 강의와 개인전을 쏟아내고 있다. 난해한 ‘드루즈의 미학 이론’을 유창한 영어로 풀어가는 그의 강의에 몰려든 수백 명의 학생을 위해 통역을 자처하고 나선 노신 대학 영문과 교수는 별도로 미술 공부를 해야 했다.
그의 작품은 영국 런던 조각공원과 멕시코 현대미술관 등 대형 전시관 및 세계 각국의 미술 애호가에 의해 소장되고 있다. 2005년 세계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도 그의 대형 작품 <A Family of faces>가 한 애호가에게 고가에 판매되었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곳 또한 적지 않다. 올해 안에 미국 텍사스의 베니니 재단 조각공원과 버몬트 존슨 주립대에 대형 작품 <Meditators;명상가들>이 각각 설치된다. 뉴욕 그리니치 갤러리에 유일한 조각가로 초대되었으며 토론토 뮤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의 미학 강의를 기다리는 학교도 줄을 이었다. 올 6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국제목각심포지엄에 참가해 작품 제작과 워크숍 및 드루즈 미학 강의를 하고, 중국 노신 대학과 다이롄 대학에서 2주간 강의를 한다.


그는 지구를 돌고 있다


   
  이원형씨의 대형 작품 <한 가족의 얼굴들>(위)은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 중국 다이롄, 멕시코 등 세 곳에 작업실을 열고 있다. 주문받은 작품 제작은 물론 그의 말처럼 미친 듯이 쏟아져나오는 영상들을 구체화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작업한다. 그는 명랑하고 부지런하다.
채찍에 맞는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채찍질을 한다. 개인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하루에 두 시간씩 수영과 헬스를 한다. 주말이면 장애인 표시인 오렌지 깃발을 펄럭이며 카트를 타고 골프를 친다. 이미 일그러진 육신이지만, 쉼 없는 에너지를 충전시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건강한 육신이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는 말은 그에게 진리이다.
그의 작품은 다양하다. 그는 다양성만큼이나 고뇌한다. 그가 흙을 빚어 만든 형상이 동(銅)으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지의 제작 과정은 참으로 길고 복잡하다. 그는 죽어 있는 흙을 보는 순간 흙의 호흡을 들을 수 있고, 그 흙을 떡 주무르듯 하여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의 작품은 그 크기와 크나큰 울림으로 하여 보는 이를 압도한다. 장애의 몸으로 어떻게 그처럼 많은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은 부질없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한 호흡까지도 흙에 불어넣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지도 모른다. 작은 거인, 일그러진 영웅, 어떠한 찬사도 그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다만 세계적 조각가 이원형일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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