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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직행로' 오르는 기업들 "갈고, 닦고, 조이자"

수출 확대·피해 최소화 전략 짜며 'FTA 리허설' 한창

왕성상 편집위원 ㅣ 승인 2007.04.16(Mon) 09: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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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기아차가 지난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연 투자 유치 설명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재계와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 쪽에 유리한 업종은 미국에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묘책을 찾고 있고 불리한 분야는 피해 최소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체제도 더욱 굳혀가는 분위기다. 3백조원대의 ‘큰손’인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우리 기업들의 조달 시장 공략 작전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경제 단체이다. 회원사들의 의견 수렴, 대정부 건의, 재계 차원의 지원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최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미FTA민간대책위원회 모임에서 “FTA 타결로 피해 보는 부분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재계의 상생 협력 방안을 찾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무역협회·경영자총협회도 비슷한 반응이다. 이들 단체는 수출과 투자 확대, 경쟁력 제고, 구조 조정 촉진에 힘써 FTA가 회원사들의 경제 글로벌화에 접목되도록 전략을 짜고 있다.
삼성·LG·SK·포스코·GS 등 대기업도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나섰다. 세계 최대의 미국 시장 공세와 방어를 위한 전략 수정이 핵심이다. 일부 그룹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경영 틀을 다시 짜고 있다. 기존의 메이드인마켓(Made in Market:현지 생산·판매) 전략과 함께 직수출 확대로 미국 시장 점유율 증대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관세율 인하와 무관세로 무역 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남미 지역의 현지 생산을 늘려 미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위는 삼성이 중나미 지역에서 연 판촉 행사.  
 
삼성그룹의 경우 FTA가 주력 분야인 전자 업종에 글로벌 적응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라고 보고 대미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그룹의 두뇌 격인 경제연구소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삼성·LG·현대 경제연구원 등은 FTA가 그룹 경영에 미칠 파장을 종합 분석하며 관련 세미나도 열어 여론 조성에 나설 예정이다.
수출 비중이 큰 전자 업계는 FTA 후속 조처 마련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LG전자는 중남미 지역에서 현지 생산 비중을 이어가면서 직수출 확대 방안을 찾고 있다. 두 회사는 북미 시장에 내다 팔고 있는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냉장고 등을 중남미 3개 생산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그러나 프리미엄급 제품은 국내 생산 비중을 높여 직수출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FTA 협상 타결로 미국의 기술 투자 유치를 확대하고 선진 경영 기법 도입 여지도 넓어졌다. 미국 시장 진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어지는 계기가 마련되면 공격 경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무관세로 당장의 영향은 없지만 전자회사들을 통한 간접 여파가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덤핑 제소를 당한 적이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는 상계관세까지 부과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 위축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져 있다. 회사마다 관세율 변화로 ‘미국산 수입’이 느는 만큼 무역 역조에 대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전담팀 구성이 좋은 사례다. SK그룹 석유화학 계열사들의 경우 엔지니어링·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기술 집약적 화학 제품 수입이 느는 것을 우려하면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히 고부가가치 합성수지를 비롯한 주요 수입품의 변화 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제품은 생산 기술이 범용화되어 있고 품질 차이도 적어 수출입량이나 구조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미국산 수입이 느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산업계도 돌파구 뚫기 안간힘


FTA 최대 수혜 업종으로 떠오른 자동차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의 부진을 털고 새 도약의 발판을 삼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문이 본격 열리게 된 만큼 공격 경영을 펼치고 있다. 관세 인하 분만큼 가격 경쟁력을 높여 현지 시장에서 일본계·독일계 업체 등 경쟁사를 따돌리고, 필요에 따라 한판 대결도 불사할 태세다.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관세 폐지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자동차산업이 무한 경쟁 시대를 맞게 됐다. 신차 개발, 선진 노사 문화 정착, 시스템 경영 강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농·수·축산 업계도 대책 마련에 바쁘다. 축산 업계는 정부의 후속 조처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FTA 협상 때 쟁점이 되었던 쇠고기 때문이다. 이르면 추석 전에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것으로 보고 축산업자 보호에 힘쓰고 있다. 업계는 국내 쇠고기 수입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호주산을 미국산으로 바꿀 전망이다. 호주산과 미국산이 값 경쟁을 벌이면 호주산 값도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2년 동안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누려온 호주산 값은 국제 평균가의 두 배에 팔리는 실정이다.
문화산업계 역시 대책 마련에 부산하다. 영화계는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배급·제작 분야에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멀티플렉스가 확산되면서 생산·소비 구조가 안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산 영화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자본 투자가 움츠러들어 걱정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제작 편수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FTA 타결을 계기로 부가 판권 시장을 살리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저작권 보호 강화와 더불어 영화 창작의 바탕이 되는 독립·예술 영화 제작이 활성화된다면 시장 전체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FTA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게임·음원·캐릭터 업체들은 저작권 보호 대응책 마련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 업계는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일시적 복제권’ 도입에 우려를 나타내며 긴장하고 있다. 일시적 복제 범위를 어디까지로 하느냐에 따라 업계에 파장이 미칠 수 있어서다. 일시적 복제권을 포함해 저작권을 침해할 때 저작권자(권리자)에게 침해한 사람의 개인 정보를 제공토록 하는 조항이 추가되어 관련 소송도 늘 것이라는 분석이다.
방송계도 해법 찾기에 나섰다. 본격 시장 개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기 있는 미국 드라마를 거의 같은 시간대에 볼 수 있고, 국내 PP(프로그램 공급자)가 수입하지 않는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질 전망이다. CJ미디어·온미디어 등 국내 주요 PP가 미국 콘텐츠와 경쟁하기 위해 자체 프로그램 제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이다.
PP 업계도 비상이다. PP 업체 관계자는 “(협상 결과가) 최악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PP 업계 판도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미국 미디어 업계는 국내 법인을 통해 우리말 더빙이나 광고 영업을 할 수 있는 만큼 국내 PP에 팔던 콘텐츠들을 직접 배급할 가능성이 크다. 방송·영화·신문 등의 사업을 함께 하는 ‘복합 미디어 그룹’ 형태의 미국 업체에 밀리지 않으려면 우리 업계도 몸집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M&A를 통한 대형화에 속도를 붙이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이 밖에 섬유·기계·타이어·제지·조선·해운·유통·금융 업계 등과 법률·특허 분야도 미국 공세에 철저히 맞서면서 소량 다품종, 서비스 차별화, 틈새 시장 파고들기로 수출을 늘린다는 전략이다.

골리앗 앞에 선 제약업계 "뭉쳐야 산다"

인수·합병으로 살길 찾기...연구개발에 투자 늘리거나 지배 구조 바꾸기도

   
  종근당은 바이엘과 레비트라(위)의 판매 제휴를 맺었다.  
 
한 ·미 FTA 협상 타결에 따라 피해를 가장 많이 입게 될 업종으로 제약업이 꼽힌다. 미국에 비해 크게 열세인 제약업계는 사업 존폐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FTA 직격탄을 맞은 제약사들은 생존의 몸부림을 치며 살아남기에 안간힘이다. 병원·의원 등 의료업계와 함께 국민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는 업종이어서 다른 산업계와 달리 관심이 쏠려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미국은 우리보다 제약 산업 규모가 30배 크고 5백50조원에 달하는 세계 제약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의약품 최강 국가이다. 따라서 제약사들은 신약 연구개발(R&D) 역량을 키워 △수익원 다변화 △지배구조 안정화 △마케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윤리적 영업 행위’ 요구가 받아들여져 리베이트 관행의 수정까지 불가피해져서 영업 구조도 손질 중이다.
미국계 제약사들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5조원. 반면 국내 1위인 동아제약은 5천7백억원에 머물렀다. 2백여 제약업체(제약업계 회원사 기준) 중 신약 개발 능력이 있는 수십 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1만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생기고 한 해 1조~2조원의 피해가 날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1천억원 정도의 피해에 그칠 것’으로 보는 정부 쪽 시각과 큰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는 ‘업계의 지나친 엄살’이라며 견해를 달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위기의 제약업계는 무엇보다 신약 개발 능력을 갖춘 대형 회사 중심의 업계 재편을 꾀할 전망이다. 연매출이 적어도 1조원은 되어야 다국적 제약사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분석이 그 근거다. 제약사의 인수ㆍ합병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과감한 R&D 투자 △신약 개발 △기술력 있는 바이오 벤처와의 제휴 △영업망 제휴 및 공동 마케팅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미국 다국적 제약사 머크의 계열사인 한국MSD는 최근 SK케미칼과 MSD 백신 제품의 영업 마케팅 제휴를 맺었다. 세계 최초의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가다실’과 로타 바이러스 위장염 예방 백신 ‘로타텍’의 올 하반기 시판을 앞두고 시장을 앞서 장악하겠다는 포석이다.
   
  삼진제약이 최근 화성에 세운 중앙연구소.  
 
CJ 제약사업본부도 일본 생활화학업체 라이온 사와 손잡았다. 일반 의약품 부문의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다. CJ는 라이온 사의 유명 제품인 스토파 위장약, 스마일 점안제 등을 들여와 독점적으로 팔 예정이다.
이미 맺어진 종근당과 바이엘의 결합은 성공적 사례로 꼽혀 다른 제약사들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를 놓고 맺은 제휴로 지난해 5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 2월5일부터 제품명을 ‘야일라’로 바꿔 한 달 만에 35억원어치를 팔았다. 종근당이 목표로 하는 이 제품의 올해 매출액은 약 100억원. 
이런 가운데 한독약품은 올해 중에 충북 음성 공장 안에 있는 중앙연구소를 서울로 옮길 예정이다. 우수 인력이 많은 서울 지역에서의 운영이 신약 개발에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는 경쟁력을 쌓아온 의약품 마케팅과 신약 개발 쪽의 역량을 높일 계획이다.


정부에 “신약 개발 지원하라”


삼진제약도 최근 경기도 화성 향남제약단지에 첨단 중앙연구소를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연면적 3천㎡ 규모인 연구소는 합성연구실 등 6개의 테마별 연구실과 세포치료연구실, 약리 실험을 위한 첨단 무균 동물사육실,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연구 분야는 합성 연구(항암제·항바이러스제·당뇨병 치료제), 천연물 연구(치매 치료제·당뇨병 치료제), 제제 연구(난용성 약물의 가용화·새로운 제어 방출형 제제의 개발), 세포 치료 개발(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손상 및 퇴행성 질환 치료) 등이다.
제네릭(복제) 의약품 비중이 높은 한미약품은 올해 연구개발비를 매출액의 10%까지 늘린다. 또 국제 기준에 맞는 평택공장단지 및 정밀화학 합성공장 완공으로 세계 시장 진출의 인프라도 갖출 예정이다.
R&D 중심 기업인 LG생명과학은 다양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 신약의 연구 개발도 중요하나 회사 매출 늘리기 체질 강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에서다. 건강보조식품을 비롯한 관련 산업으로의 진출 역시 적극 검토 중이다. LG는 바이오 벤처와의 협력 강화를 통한 신약 공급처를 넓혀 신약 개발과 수익성 향상이라는 두 바퀴를 돌리고 있다.
지배 구조를 바꾸는 제약사도 있다. 중외제약이 대표적이다. 중외는 최근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대웅제약·녹십자제약에 이어 국내 제약사로는 세 번째다.
FTA 타결 이후 제약업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등장한 것이 복제약이다. 국내 전체 의약품 매출의 49%를 차지할 정도로 제약 시장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다. 따라서 자체 신약 개발이 점점 어려워져 제약사들의 생존이 힘들어지게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이 최근 신약 개발 육성책 마련을 정부에 요청해 눈길을 끈다. 1986년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 국내 대표 50여 개 제약사가 참여해 비영리 연구개발 지원 단체로 세워진 조합은 혁신형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지원을 뼈대로 한 건의안을 낸 것이다. FTA의 궁극적 목적이 국내 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연구 개발을 통한 혁신성 강화가 절실하다는 견해다.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진행 중인 신약 개발에는 연평균 8천6백억원이 필요하지만 기업의 투자 여력은 3천억원대로 크게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조합은 산업계·학계·정부가 참여하는 ‘신약개발혁신기획위원회’ 구성도 제안했다. 제약협회는 국내 제약사들과 외국 제약사들이 7 대 3으로 나누어져 있는 의약품 내수 시장이 5년 안에 3 대 7로 뒤바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맞물려 염려되었던 의료 시장 개방 또한 또 다른 시한폭탄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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