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빅리거 '멸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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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4.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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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진출 인원 급감·박찬호 등 부진...프로 무대 거친 뒤 MLB 두드려야

 
메이저리그 시장에서 코리안 빅리거의 씨가 마르고 있다. 지난 4월2일 막을 연 2007 메이저리그 개막 로스터에 포함된 한국인 선수는 서재응·류제국(이상 탬파베이)·김병현(콜로라도) 등 단 3명에 불과했다. 김병현마저 시즌 세 번째 등판인 4월17일 경기에서 불의의 부상을 입고 15일짜리 부상자 명단(DL)에 오름에 따라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출장하고 있는 한국인 선수는 두 명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해마다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1994년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이후 코리안 빅리거는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파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2004년에는 무려 7명의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비기도 했다. 원인은 무엇일까.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코리안 빅리거들의 위상과 쇠퇴 이유를 점검해보았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을 해외에 진출하는 인원의 절대적 감소에서 찾는다. 일단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는 자원 자체가 크게 줄어들다 보니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선수의 수급도 원활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1994년 박찬호가 ‘코리안 빅리거 1호’로 성공 시대를 열어젖힌 이후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 러시가 봇물 터지듯 이루어졌다. 당시 전국 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고교 투수들은 자신의 목표를 ‘메이저리그’라고 입을 모았고, 동대문야구장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로 북적거렸다.
그러던 것이 2001년 이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조사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간 모두 21명이 미국 야구의 문을 노크했지만,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9명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국 프로야구를 거친 구대성(2005년)·최향남(2006년)을 제외하면 2003년 정성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선수는 정영일, 단 한 명뿐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준 것에 대해 야구 관계자들은 “1999년 ‘백차승법’의 실시와 한국 프로야구 FA(프리 에이전트) 시장 규모의 성장 때문이다”라고 진단한다. ‘백차승법’이란 1991년 1월1일 이후 한국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진출한 선수들에 대해 국내 복귀 때 2년간 유예를 두는 방침을 말한다. 이와 함께 2000 시즌부터 도입된 한국 프로야구 FA 시장은 현재 선수 1명당 100억원이 들 만큼 규모가 커졌다. 따라서 해외 진출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적지 않은 돈을 만질 수 있으며, 국내에서 경험을 쌓은 뒤 천천히 꿈을 이루더라도 늦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얘기이다.


“마이너리그에 우리 같은 선수 수두룩”


 
코리안 빅리거들 가운데 가장 최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는 탬파베이의 류제국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깜짝 데뷔전을 치렀다. 1994년 박찬호부터 따지자면 정확히 열두 번째 코리안 빅리거의 탄생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선수들은 어디에 있을까. ‘전멸했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짐을 싸 귀국하거나 은퇴했다. 현재 박찬호·김선우·백차승·추신수 등 마이너리그를 포함해 미국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 대부분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했으며, 아직 메이저리그 신고식을 치르지 못한 선수는 올해 미국에서 첫 시즌을 시작하는 정영일이 유일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넜으나 결국 3분의 2 정도가 빈손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에 대해 해외 진출 포수 1호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올해 KIA에 입단한 권윤민은 “막상 마이너리그에 가보니 나 같은 선수가 수두룩했다. 다시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한다. 계약금으로 100만 달러를 넘게 받았더라도 특별 대우는 없다. 중간에 부상이라도 당하면 구단의 시선은 싸늘해진다”라고 말했다.
입단 첫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박찬호·김병현은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루키 리그-싱글A-더블A-트리플A, 이른바 팜 시스템을 단계별로 거치면서 살아남아야 비로소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햄버거만 먹어가며 체격 조건이 월등히 뛰어난 중남미·미국 선수들과 경쟁해 이기기란 쉽지 않다. 권윤민은 “각 구단은 유망주가 팜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는 기간을 대략 3~4년으로 잡는다”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은 미국 진출 때 받은 계약금이 거의 바닥나는 시점과 일치한다.


요미우리 잔류한 이승엽의 선택 아쉬워


그렇다고 코리안 빅리거가 1994년부터 ‘득세’한 것은 아니다. 박찬호도 1996년에야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으며, 다양성을 띠게 된 것은 조진호(1998년)·김병현(1999년)이 가세한 이후이다. 따라서 현지 언론이나 팬들 사이에서 코리안 빅리거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조명을 받은 것은 박찬호의 힘이 크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마지막인 2001년 15승을 올린 뒤 5년간 6천5백만 달러라는 FA 대박을 터뜨리면서 메이저리그에서 영향력 높은 투수로 자리 매김했다.
그러나 FA 5년간 부상과 부진으로 33승(평균 7승)에 그치면서 코리안 빅리거에 대한 거품론이 제기되었다. 급기야 뉴욕 메츠와 두 번째 FA 계약을 한 올 시즌은 트리플A에서 출발했다. 메이저리그 내에서 한국을 대표하던 기둥이 무너지면서 메이저리그 시장에서 코리안 빅리거들도 한꺼번에 위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코리안 빅리거들이 위기 탈출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박찬호의 합류가 요구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 박찬호는 지난 4월15일 트리플A 두 번째 경기에서 무명의 타자 라이언 브라운에게 3연타석 홈런을 허용하는 등 4이닝 10피안타 8실점하는 부진을 보였다. 김병현도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 전 자신을 선발진에서 제외시킨 구단의 처사에 반발하며 날을 세우고 있던 처지라 컨디션 회복이 되더라도 빠른 시일 내 좋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백차승·추신수·김선우 역시 언제 메이저리그로 호출될지는 미지수. 현재로서는 서재응과 류제국의 어깨에 코리안 빅리거들의 생존이 달려 있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정영일의 성장을 지켜보아야겠지만 한국 프로야구를 거친 수준급 선수들의 진출이 메이저리그 내 코리안 빅리거들의 전통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기대를 품게 만는다. 1995년 노모 히데오(디트로이트 은퇴)를 비롯해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등 자국 리그를 거친 일본 톱 클래스 선수들은 경험과 경쟁력에서 앞서며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세계 4강 신화를 이룬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이치로나 마쓰자카 같은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말 메이저리그 진출의 갈림길에서 요미우리 잔류를 택한 이승엽의 선택은 조금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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