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진화는 계속된다
  • 박충선 (대구대 교수·가정복지학과) ()
  • 승인 2007.04.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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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규범 벗어난 다양한 ‘신가족’ 공존…개인과 공동체 행복 동시 추구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믿음의 상징이다. 그동안 사회적 충격 흡수 장치와 복지 수단, 그리고 정서적 보호벽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왔다. 이러한 가족 사회가 최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가족 사회의 해체나 붕괴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지금은 가족 사회의 과도기 상태이다. 신가족 개념으로의 전환 몸부림이 심하다.
최근 가족 사회의 변화를 보면 가족 구조가 다양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감소와 이혼 증가, 재혼 증가, 사실혼 증가, 자발적 무자녀 가족 증가, 국제 결혼 증가 등이 그 사례다.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공수정이 늘어나고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감소되고 있다. 현대 가족은 그야말로 질적·양적 변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변화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가지고는 쉽게 해석하기 어렵다.  가족 사회 변화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기존 가치관을 재조명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유교와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남녀 평등적인 가치관으로 바뀌고 있다. 가족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관으로, 세대 중심적인 가족 관계에서 인간 중심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가족법의 개정으로 이어졌고, 개정된 가족법은 가치관의 변화를 확산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했다.
 
‘신가족’이 출현하면서 가족의 공동체적 성격도 희박해졌다. 이에 따라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개인 존중 가치관이 보편화되고 있다. 더 이상 가족을 위한 개인적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개인이 최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가족 유형을 선택하고 있다. 기존의 가족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개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절묘한 결합이다.
가족 사회가 변화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다양한 틀을 만들어나간다. 제한된 틀조차 완전히 깨버리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이 신가족의 탄생을 가져온 원동력이다.
‘신가족’은 아직 학문적으로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용어이다. 신가족의 핵심은 다양한 가족 개념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독신, 동거, 동성애 가족, 캥거루 가족, 딩크족 심지어 사이버 가족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가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다양한 가족 문화가 새로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처럼 가족 문화가 획일적이지 않다.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가령 남편은 가계 담당자, 아내는 가사 노동자로 규정짓는 이분법적 구분은 배제된다. 성적인 관계에서도 아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결혼에 대한 획일적인 개념이 존재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말은 결혼 개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결혼을 일생에 한 번만 한다거나, 결혼하면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규정처럼 되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 자녀의 관계가 혈연으로만 엮여야 한다거나, 노년기에 배우자를 잃을 경우 홀로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등의 규범적 제한들이 사라졌다. 이 모든 규범적 규제들이 사라지면서 그 중심에는 ‘개인의 행복’ 추구권이 굳게 자리 잡았다. 가족은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적 여건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신가족’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신가족은 가족 구조적인 측면에서 다양성을 보인다. 반드시 부부와 자녀를 갖춘 가족만이 가족이 아님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이 사회 규범이나 관습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행해질 수 있다. 이혼도 결혼과 똑같은 또 하나의 삶의 형태라는 것을 수용한다. 법적인 측면에서는 부부 간의 평등성이 보장된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가 아닌 양성 평등적이고 민주적인 가족 관계가 주류의 가치관으로 등장했다. 자녀 양육 및 교육은 개인적 부담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족 붕괴 아닌 가족 의미의 변화로 해석해야


 
재산 상속의 개념도 바뀌었다. 재산을 자녀에게만 물려주겠다는 생각보다는 ‘부의 사회적 환원’을 고려한다. 이에 따라 부모의 부양이나 효도의 형태도 전통적인 가족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 가족과 사회가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부양 부담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신가족주의 시대에도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의 조건은 ‘가정의 화목’이다. 동성애 가족이나 사이버 가족과 같은 가족 형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인간적인 애정과 사랑, 책임과 배려, 그리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가족이다. 가족의 근본적인 모습은 변형될지언정 결코 변질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의 자율성·평등성·독립성을 유지한다. 최적의 상호 유대와 지지를 바탕으로 애정의 결합이 가능한 역동적인 유기체이다.
일부에서는 신가족이 가족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혼은 이혼으로 해체되지만 가족은 결코 해체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혼을 통해 또 다른 가족을 구성한다. 가족의 붕괴를 지적하기보다는 가족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용어 속에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가족은 구성원들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구성원을 함께 연결해주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신가족은 가족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 적응력이 높은 새로운 가족을 일컫는다. 그 속에는 가족의 공동체적 성격이 여전히 존재한다. 신가족은 개인의 행복 추구와 더불어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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