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날아라 허동규>
  • JES 제공 ()
  • 승인 2007.04.3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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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웃음 잔잔히 번지는 감동

 
인생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누구나 홈런 타자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한 소년은 생각이 다르다. 아웃만 면하고 홈으로 돌아오는 것이 소원인 순진한 아이다. 공이 무서워 휘두르지도 못하면서 아이는 번트로 인생에서 아웃되지 않고, 무사히 홈으로 돌아온다.
<날아라 허동구>(박규태 감독)의 원제목은 ‘번트’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전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던 히딩크 감독의 한국식 애칭이 허동구였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날아라 허동구> 역시 인생의 희망을 엿보게 하는 착한 영화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착한 영화가 범하기 쉬운, 억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거나, 로또가 대박이 나는 등의 뻔한 공식과 과장은 없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웃음과 감동이 톡톡 튀어나오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된다.


아역 배우 최우혁은 ‘리틀 조승우’


 
초등학교 3학년생 허동구(최우혁)는 지능지수 60의 발달장애아다. 해가 하늘에 떠야 아침인 줄 알고 3년을 다녀서야 집과 학교 가는 길을 겨우 안다. 주전자에 대한 애착도 엄청나 물 주전자로 아이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일을 가장 즐거워한다.
그러나 물반장 동구에게 시련이 닥친다. 그를 왕따시키는 아이들과 반 평균을 깎아먹는 그가 탐탁지 않은 선생이 동구를 특수학교로 전학 보내려 하는 것이다. 동구의 아빠 진규(정진영)는 남들과 똑같은 학교에서 동구를 졸업시키고 싶은 생각에 급히 대안을 찾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부원이 모자라 문을 닫기 직전인 야구부에 입단시키는 것. 동구는 야구부에서도 물 주전자 담당이다. 그러나 야구의 룰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또다시 왕따당할 위기에 처한다.
소소한 스토리이지만 감독은 동구의 심리를 세심하게 묘사하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동구가 하는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발달장애아들에 대한 이해를 돕게 이끈다. 또 대사 하나 없이 거의 표정과 행동으로만 해맑은 동구를 연기한 최우혁군의 연기는 ‘리틀 조승우’라는 칭찬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달리기 시험 날 갑자기 남들보다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고 “왜 그랬냐?”라고 혼내는 선생에게 건강 때문에 뛰지 못하는 짝을 보며 “짝 주려고요”라고 씩씩하게 외치는 동구의 모습은 “공부해서 남 주냐?”라고 하는 어른들에게 잊고 있던 동화의 순수함을 일깨워준다.
 
암에 걸려서라도 보험금을 마련해 집이 팔리는 것을 막아보려 하는 진규가 탄 고기를 먹고, 일부러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더욱 애잔한 감동을 준다. 동구에게 맞아서라도 1루에 걸어 나가라고 강요하는 익살맞은 야구부 코치 역의 권오중은 코믹함으로 영화의 활력소 노릇을 한다.
<날아라 허동구>가 던지는 교훈은 비단 동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돈과 학벌 혹은 신체 장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홈런’보다는 ‘번트’가 우리에게 더 필요하고 소중한 감동임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방망이를 못 휘두르면 공에 갖다 대는 연습을 하면 된다. 또 문제를 못 풀겠으면 모든 답안에 1을 써놓으면 된다. 동구가 찍어서 받은 24점은 0점을 예상하던 동급생들에게 시원한 한 방을 날려준다. 그렇게 인생의 중요한 숙제는 아웃되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날아라 허동구>는 야구식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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