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장비 업체는 “죽지 않아”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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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값 폭락에도 ‘꿋꿋’…국산화율 높이기는 숙제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면서 ‘반도체로 먹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의 대표 업체인 삼성전자나 하이닉스반도체보다도 오히려 이들 회사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과 달리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아직까지는 평온한 분위기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이나 피에스케이, 케이씨텍 등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반도체 가격 하락이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른 반도체 관련 납품 업체들도 비교적 차분하다.
반도체 장비 업체로 유명한 주성엔지니어링은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2백57% 늘어난 1백1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반도체 제조 장비에 소요되는 세라믹 소재 생산 업체 솔믹스도 전년 대비 38% 증가한 19억원의 1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4월 한 달 솔믹스 주가는 31% 상승해 같은 기간 코스닥 상승폭(4%)을 훨씬 웃돌았다.
반도체 부품 및 장비 업체인 비아이이엠티도 반도체 부품 소재 매출 증가와 원가 절감 등에 힘입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2.6%나 늘었다. 비아이이엠티는 “반도체 부품 소재의 매출이 증가했고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수주했다”라며 “2006년 하반기 이후 신제품의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지속적인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인 것이 실적 개선의 주요인”이라고 밝혔다.
영업이익이 줄면 상대적으로 설비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은 반도체 산업의 독특한 특성을 그 이유로 꼽는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반도체장비산업 담당자는 “반도체 시장은 영업이익이 줄어도 현실적으로는 설비 투자가 증가하는 반비례 현상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조형수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도 “반도체 산업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죽는 산업이다. 올 1분기 D램 가격 폭락이 설비 투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분야는 유통업체처럼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재빨리 투자를 줄여야 하는 업종이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 장비 산업이란 반도체의 원료인 규소를 가공해 평평하게 만드는 웨이퍼의 제조·가공, 반도체 칩의 조립·검사 등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제반 장비를 포괄한다. 따라서 반도체 장비 산업은 라이프 사이클이 빠른 기술 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반도체 검사 장비를 만드는 디아이의 한 직원은 “반도체 장비 산업은 전방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경기, 특히 반도체 생산량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별히 계절적 경기 변동보다는 반도체 소자 업체들의 설비 투자 계획에 의해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메모리 생산 라인 투자의 경우 일정 기간에 집중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분기 동안 반도체 소자 업체와 장비 업체 간의 희비가 엇갈린 이유는 반도체 가격 하락과 맞물려 집중적인 설비 투자가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가격 급락에도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가 위축되지 않은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품목 다양화로 교차 수주가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에 납품을 하던 업체가 하이닉스반도체에도 교차 납품을 할 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에도 많은 수출을 이루어냈다. 2006년을 기점으로 타이완·싱가포르·중국의 설비 투자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1분기 실적 저조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측이 현재 투자 축소 계획이 없다고 밝힌 점도 장비 업체들에게는 힘이 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미국 오스틴에 있는 3백mm 반도체 공장을 증설함에 따라 장비 발주가 임박하면서 국내 장비 업체들의 수주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제 표준화 실패하면 위기 맞을 수도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5월 안에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제조법인(SAS)의 2라인 건설에 따른 장비 발주를 시작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오스틴 2라인은 오는 3·4분기 중 낸드 플래시 생산에 들어가고 D램 제조에도 착수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총 1조3천억원 상당을 투입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는 앞으로도 높은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올 1분기 실적만을 놓고 반도체 소자 업체는 힘들었고 납품 업체는 마냥 즐거웠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10년째 반도체 장비 업체를 경영해온 한 기업체 사장은 “장비 업체들의 1분기 실적은 지난 2006년 10월께 반도체 가격이 한창 높을 때 수주받은 결과이다. 보통 한 번 주문을 받으면 6개월 정도에 걸쳐 납품이 이뤄진다. 호황을 누리는 곳은 선택받은 몇몇 업체에 불과하다. 반도체 소자 업체가 원가 절감을 위해 납품 업체에 ‘짠 수건 또 짜기’식으로 고통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몇몇 반도체 장비 업체 최고경영자들은 업체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미 사령탑을 교체하고 일종의 위기 경영에 돌입한 업체도 있다. 최대 주주인 ‘오너’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는가 하면 물러났던 CEO를 복귀시키는 극약 처방도 단행했다. 아예 계열사 사장을 맞바꾸며 심호흡을 가다듬는 기업도 있다.
라셈텍, 아바코, 유니셈, 아이피에스, 아토 등이 최근 주주총회를 통해 CEO를 바꾸었고 디아이와 오성엘에스티는 대표를 새로 선임했다.
 이들 장비 업체들은 반도체 값의 등락과 상관없이 기술력 한계와 거대 자본의 장벽 앞에 버거움을 느껴왔다. 핵심 부문에서 외국과 견줄 수 있는 반도체 장비 업체를 갖추려면 1조원 이상이 들어가야 하는데 국내에는 그럴 수 있는 장비 업체가 없다. 이는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이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기도 하다.
올 상반기 반도체 장비 산업 부문은 큰 폭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반도체 장비 수입은 33억2천5백만 달러로 수출 5억7천6백만 달러의 5.8배나 되었다. 반도체 장비 중에서도 핵심 부문으로 꼽히는 전 공정 장비의 경우는 수입이 수출보다 7.1배나 많았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은 전세계 시장의 18%를 차지한다. 하지만 국산 장비 비율은 20%를 밑돈다. 특히 고부가가치 핵심 장비라고 할 수 있는 전 공정 장비의 자급률은 더 낮다”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도 “세계 반도체 장비 업체 상위 50위 안에 한국 업체가 1개 사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원천 기술 부족, 신뢰성 미흡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12일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장비 표준화 5개년 계획’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복안이다. 장비의 효율성 극대화와 수출까지 고려할 때 관련 국제 표준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것이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의 목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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