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사람들도 FTA는 무서워
  • 왕성상 편집위원 ()
  • 승인 2007.05.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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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관세사 등 전문 자격사 단체들, 외국계와 겨룰 힘 키우기 총력전

 
정운기 한국관세사 회장(66)에게는 요즘 하루해가 짧다. 지난 3월 하순 관세사 회장 당선에 이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타결되어 챙겨야 할 일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FTA 대책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정회장은 31명의 관세사가 참여한 국내 최대 관세법인 에이원관세사법인 회장 직도 맡고 있어 FTA 타결에 따른 국제 경제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6개 지사를 거느린 매머드급 관세법인체로 외국과의 관세 업무를 대행해주면서 기업들 요구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있다.
FTA 타결에 따라 연관성이 많은 자격사 단체들이 ‘FTA 파고’ 넘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리사회·한국공인회계사회·한국세무사회·대한건축사회 등 한·미 FTA로 당장 영향을 받는 곳일수록 발걸음이 빠르다. 의사·공인노무사·기술사·감정사·수의사 등의 단체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책 마련에 부산하다. FTA 타결에 가장 민감한 곳은 대한변호사협회. 한정된 시장에 많은 변호사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어 법률 시장 개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변협은 FTA 발효를 앞두고 로펌들의 경쟁력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 4월11일 10대 로펌 대표자 간담회 자리에는 이진강 회장 등 집행부와 김앤장·태평양·광장·화우·세종·율촌·바른·충정·로고스·KCL 등 법무법인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어 4월26일에는 11위부터 50위까지의 로펌 대표자 간담회를 열고 FTA 대응책을 논의했다.
대한변협은 간담회 결과를 바탕으로 △고급 법률 서비스 시장 고객인 기업들 편익 향상 △미국 로펌의 선진 인력·정보 관리 시스템 벤치마킹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에 따른 신규 고용 창출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 로펌, 외국 로펌에 종속된다?


 
그러나 규모·자금력·네트워크 면에서 앞서는 외국 로펌에 국내 로펌이 종속될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응책도 짜고 있다. 로펌 대표들은 “법무법인 대형화·전문화 유도와 변호사들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을 법무조합 등으로 바꿀 때 일정 기간 과세 유예 조처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협회는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법무부에 건의서를 낼 예정이다. 또 법무법인에 대한 세제 개편, 변호사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을 위한 변호사법 개정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또 법무법인으로 조직을 바꿀 때 들어야 하는 보험 부담이 큰 점을 감안해 협회 공제기금 운영 방안 구체화 작업도 벌일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협회의 분야별 위원회 제도 활성화 △전문 변호사 제도 도입 검토 △시장 개방에 대한 정확한 홍보 및 효율적 관리 감독 시스템 마련에도 나선다. 특히 법률 시장 개방과 관련해 재계를 상대로 홍보에 주력키로 했다. 국내법에 관해서는 국내 로펌이 더 전문가이며 경쟁력이 높다는 점을 알린다는 것이다.
대한변리사회는 4월25일 지식재산 세미나를 열었다. 변리사 회원과 변리사사무소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주제는 ‘미국에서의 라이선스 규제개론’으로 김영대 변리사(장한특허법인)가 발표자로 나섰다. 이에 앞서 4월20일 서울 역삼동 한국지식재산센터 국제회의실에서 특허청 주최 ‘FTA 산업재산권 협상 결과 설명회’에도 참석해 대응책 수립에 나섰다. 특허·상표 등 산업재산권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제도 선진화 바탕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협회는 또 특허청에 FTA 문제점 및 건의서 제출과 외교통상부 주관 지식재산권 민간 자문단 회의 참가 등을 통해 FTA 파고를 이겨낸다는 계획이다.


건축사들, 100조원 시장인 미국 진출 노려


 
무역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관세사회는 FTA 교육에 매우 적극적이다. 특혜 관세 적용 제품의 원산지 증명 등 통관 심사가 까다로워질 것으로 보여 업무 흐름을 익히기 위함이다. 지난해 5월 타결된 한·아세안 FTA가 오는 6월부터 발효됨에 따라 교육에 열심이다. 관세청 주관 설명회는 FTA 협정 내용과 관세 양허 품목 등 실무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관세사회는 관세법인 대형화와 관세사들의 전문 컨설팅 업무 쪽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또 △상반기 중 FTA 종합 매뉴얼 작성 △FTA 고객상담 센터 설치 △관세청과 공동으로 기업 대상 FTA 설명회 개최 △공장 등록 대행을 비롯한 관세사 업무 영역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공인회계사회는 회원들에게 국제 회계 정보 제공에 나서고 있다. 국제회계사연맹(IFAC)이 사업체에 종사하는 회계사들의 편의 증진 차원에서 가동 중인 ‘지식 센터’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FTA 타결을 계기로 정부의 기업 회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회계사회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FTA가 발효되면 국제 표준에 맞는 기업 투명성 제도 정착이 시급하다. 분식회계 기업에 대한 세무 조사, 기업 회계 범죄 처벌 강화 등 정부의 강력한 기업 투명성 제고 대책 마련이 요청된다고 보고 대응책을 만들고 있다.
대한건축사회·한국기술사회 등도 FTA 관련 교육·설명회·홍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자격사 시장 분석과 시장 개방이 되었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 분석 및 대안 마련을 진행 중이다. 건축사들의 경우 우리보다 15배나 큰 100조원 규모의 미국 시장에서 일할 수 있다고 보고 해외 진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는 FTA가 자격사들의 생존력을 더 강화시켜주는 분위기다.

‘킬러’ 키우고 몸집 불려야 산다
로펌들, 한·미 FTA 타결 이후 전문화·대형화 바람…회계업계 판도 ‘지각 변동’ 올 듯

 
한·미 FTA 협상 타결로 국내 법률·회계 시장의 문이 본격 열리게 된다. 변호사·공인회계사 급증으로 국내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계 로펌과 회계 법인까지 가세하게 되어 시장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업체들이 생각하는 생존 비결은 두 가지다. 로펌의 대형화와 전문 분야에서 최고 실력을 갖춘 ‘킬러 변호사’ ‘킬러 공인회계사’를 확보하는 길이 그것이다. FTA 타결 뒤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로펌의 합병 바람.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소형 로펌과 대형 로펌 간의 이합집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도 국내 로펌의 대형화ㆍ전문화를 위한 조직 변경 때는 청산 과세를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로펌의 전문화를 이끌기 위해서다. 법무부·재정경제부·국세청 등이 관련 종합 대책을 마련하여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전후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문 지식을 갖춘 변호사들의 몸값이 치솟게 될 것이다. 금융·증권 업계는 여러 전문 분야로 나누어 변호사를 뽑고 있다. 펀드와 각종 대출, 해외 증권 발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파생 금융상품, 자산 유동화 등으로 세분화하고 이를 다시 로펌의 대형화로 연결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법률법인 화우는 최근 상사 사건 전문가인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등을 영입해 경제 및 기업 분야를 강화했다. 율촌 역시 송무·세금·공정 거래 분야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전문가 채용에 나섰다. 광장은 전문성 강화를 위해 조직의 틀까지 바꿨다. 소속 변호사의 주특기와 분야별로 기업 자문·금융·지적재산·송무 4개 전문팀을 꾸려 책임 전담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로펌들의 이합집산도 전문화 추세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로펌의 전문·대형화는 법률 시장 개방에 대응하고 나은 법률 서비스를 위해 불가피한 실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율촌은 특허법인 명문과 합쳤다. 정보기술·지적재산권 분야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합병 사례다. 광장은 특허사무소인 제일국제특허법률사무소와 제휴 및 합병했다. 충정은 지난 2월 애플·지멘스 등 다국적 회사들을 거래처로 가진 중견 로펌 ‘서울 로 그룹’과 합쳤다. ‘토종 기업’과 외국 고객사들을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서울시내 한 로펌 소속 변호사는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는 2009년부터는 마케팅·홍보·인사·관리 등 지원 조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변호사업계 못지않게 회계업계에도 지각 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주 대상은 법인 형태의 회계 업체들. FTA 여파에다 상장기업의 경우 6년 연속 외부 감사인을 맡은 회계법인을 바꾸도록 하는 ‘주식회사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약칭 외감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부터는 회계법인들의 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 외부 감사를 주로 맡고 있는 회계법인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한 회계업체 관계자는 “6년 연속 외부 감사인을 맡은 회계법인들의 변경이 시작됐다. 회계법인 변경은 내년에 최고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삼일회계법인 등 대기업체 외부 감사를 맡고 있는 회계법인들이 많이 바뀔 것이다. 매년 3분의 1 정도의 법인이 연속 감사 제한 규정에 걸려 회계 법인들이 변경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서 이름난 세무·회계 법인들이 우리 시장에 상륙할 조짐마저 보여 내년에는 회계업계의 시장 싸움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KT는 지난 6년간 외부 감사를 맡아온 삼정회계법인을 안진회계법인으로, 두산인프라코어는 안진회계법인에서 삼정회계법인으로 맞바꿨다. S-오일·NHN·삼성중공업·현대건설 등 시가총액 상위권의 상장사들 역시 연속 감사 제한 규정에 걸려 회계법인을 변경해야 한다. 하이닉스반도체·LG텔레콤·두산건설·대한통운·LG카드 등 다른 업체도 금융감독원의 외부 감사인 지정으로 최근 회계법인이 바뀌었다.
이와 함께 삼일·안진·한영·삼정 등 국내 ‘빅4’ 회계법인이 외부 감사인 지정을 장악하는 현상도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이 외부 감사인 지정에 중소 회계법인 참여 기회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회계업계에서는 일정률을 중소 회계법인에 나눠주거나 중소 회계법인의 참여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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