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학>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 김지은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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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 부진에도 판소리 등 전통 예술 잇기 ‘펄펄’…정부 적극 지원도 한몫

 
영화 <천년학>이 끝내 높이 날지 못하고 날개를 접는 모양이다. 개봉 당시 거의 모든 매체가 극찬하는 기사로 날개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그 기대에 못 미친 나머지 개봉 때 못했던 말이라며 뒤늦게 쏟아져나오는 뒷이야기 또한 무성하다. 흥행 실패라고 못 박고 판소리라는 소재가 주관객인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지 않은 탓이라며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를 논하기도 한다. 상업 영화의 논리 앞에서 좌절했다는 분석도 있다.
<서편제>가 100만 관객을 넘길 때와는 14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다. 그동안 관객들은 1천만명을 넘은 흥행작들에 길들여졌을 수도 있다. 또 극장 배급망과 스크린 쿼터 등 많은 요소들이 변한 지금 ‘대박’을 점쳤다는 것은 오만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흥행 실패의 원인을 알려준다며 여기저기 헤집는 것은 <천년학>을 아름답게 본 많은 팬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일 같다. 또 판소리라는 소재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도 처음의 찬사에 비추어 마뜩하지 않다. <천년학>은 <서편제>보다 훨씬 업그레이드한 면들을 보여주었다. ‘소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노련한 솜씨로 펼쳐낸 영상미에다 오정해씨의 소리 연기도 자연스러웠다고 입을 모은다.
국악 전공 대학생 임바울씨(22)는 “국악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의무감으로 <천년학>을 보진 않았다. <서편제>는 당시 봐야 한다는 당위성이 널리 퍼졌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이 그런 걸로 좌우되는 건 시대에 안 맞다. 다만 우리 것은 지켜야 하고, 또 지키려 하고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데 영화까지 나와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100만 장이 팔렸다는 판소리 음반을 탄생시켰던 일제 시대 때 오히려 판소리는 대유행이었다고 ‘소리꾼’은 전한다. 이후 판소리를 포함한 국악은 서양 음악처럼 대중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최근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생기고 전문 학원들 또한 눈에 띄게 증가했다. 국악 전문학원 ‘국악의 향기’ 박상영 원장은 “우리 전통 문화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국악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 것을 알리는 계기는 되겠지만 문화의 수요를 직접 확산시키지는 않았다고 본다. 2000년을 전후해 국악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었는데, 원인을 들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다. 그중 제7차 교육 과정에 초·중·고 음악 교과의 국악 비중을 30~40%까지 하도록 규정한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최근에는 중장년층들이 자발적으로 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학원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박원장은 “33군데 국악 관련 학과들이 많은 젊은 국악인들을 배출해 우리 국악도 상당히 젊어졌다. 선생님들도 젊은 사람이 주축이 되어가고, 지역 축제 등 각종 행사도 젊은 사람들이 주역이 되어 일한다. 국악의 미래는 책으로 치자면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쯤 된다고 볼 수 있다”라며 밝은 전망을 내렸다.

 
 
남원춘향제·전주소리축제도 ‘쑥쑥’


박원장은 “요즈음에는 우리 전통 음악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일반인들도  국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을 연구해온 결과다. 수강생들이 직접 연주회를 열게 하고 방학 및 휴가 기간을 이용해 자연 속에서 연주를 해보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게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정부의 문화 정책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전통 예술 활성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김명곤 전 국립극장장이 문화관광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전통 예술 진흥을 문광부의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김장관은 지난해 6월 초 각계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전통예술 활성화 태스크포스팀’을 띄워 전통 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 과제를 개발하도록 했다. 7월에는 전통예술팀을 신설했다. 문광부의 30개 역점 사업은 전통 예술 창작 환경 지원과 저변 확대, 전통 문화 자원을 활용한 국가 의전 개선 등을 골자로 삼았다.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전통 예술 전용극장 건립, 초·중·고 음악 교과에서 국악 비중을 향후 제8차 교육 과정부터 50%로 확대, 정부 주요 기관의 국제 행사와 공식 행사의 애국가를 국악으로 제작·보급, 방송에 국악 쿼터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국악을 포함한 전통 문화 자원을 개발해 세계적 문화 상품으로 육성하고, 문화 원형의 디지털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100대 민족문화 상징 개발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해 사업을 추진했다. 김장관은 지난해 9월27일 국립국악원 별맞이터에서 전통예술진흥법 제정과 전통예술진흥원 설립, 전국 규모의 전통 연희  축제 개최, 대한민국 국악대상 신설 등 구체적 추진 방안을 담은 ‘전통 문화 활성화 방안-비전 2010’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열리고 있는 각종 행사에서 ‘소리’가 넘치고 전통 춤사위가 끊이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배우 오정해씨는 <천년학>이 소리꾼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영화 개봉 당시 말했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들려주려 국악 음반을 준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런 그녀가 영화의 흥행 부진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을까 했는데, 지난 5월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특설 무대에서 열린 ‘2007 봄 세종별밤축제’에서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신명난 ‘소리’ 한 판을 선사했다. ‘천년학’은 날개를 접어도 우리 소리 하나는 천년을 갈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엿보인다. 소리꾼 오정해가 영화배우를 겸업한 계기는 남원춘향제였다.
지난 5월4일 개막한 ‘제77회 전북남원춘향제’는 우리 문화 유산이 허공에 헛돌지 않고 현실과 어우러지는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사랑은 단 하루도 천년입니다’라는 주제로 개막한 남원춘향제는 국악인들과 다양한 장르의 인기 가수들이 대거 나서 광한루원에서 많은 시민과 관광객에게 즐거움과 신명을 전해주었다. 특히 이번 축제는 전통과 미래,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국악과 현대 음악의 만남으로 돋보였다는 평가다. 지역민을 위한 선심 쓰기형 지역 축제만 횡행한다는 비판 속에서 성공적인 축제로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성장한 데에는 바로 우리 것의 계승과 현실에 뿌리 내리게 하려는 노력이 한몫 했다.
문광부가 거푸 최우수 축제로 지정할 정도로 잘 꾸며진 축제도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것을 기본으로 국악 정체성 찾기와 대중성 확보를 함께 추구한다. ‘소리, 몸짓’을 주제로 내건 제7회 전주세계소리축제는 10월6일부터 14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및 전주 시내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 밖에도 최근 여성 국극인들의 <춘향전>과 안숙선 명창의 창극 <청> 등이 무대에 올라 전통 예술에 대한 향수를 달랬다. 판소리는 천년의 비상을 준비하는 격동의 몸짓을 하고 있는데, 영화 한 편의 흥행 실패를 두고 소재를 탓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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