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벗 어나 내 갈 길 가리라”
  •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 전문 기자) ()
  • 승인 2007.05.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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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업장 노조, 상 급 단체 탈퇴 잇따라…노조 조직률도 ‘내리막길’

 
일본 산업 현장에 전투적 노동운동이 한창이던 1955년, 도요타 노조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산별 노조인 젠지(全自;전일본자동차산업노동조합)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1950년 회사측의 대량 감원에 반발해 75일간 파업을 벌이며 투쟁력을 과시했던 노조는 젠지의 투쟁 노선에 싫증을 느끼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해버렸다. 1956년엔 ‘외부로부터의 온갖 압력과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 운영을 한다’는 조항을 노조 강령에 넣은 뒤 정치 투쟁에 등을 돌렸다.
도요타에서는 그 후 노사 갈등이 말끔히 사라졌다. 지금까지 57년 동안 상생의 노사 문화를 바탕으로 무분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 들어서는 교세라 등 많은 기업 노조들이 산별 노조나 상급 노련에서 줄줄이 탈퇴하며 투쟁의 덫에 빠져 있던 일본 노동운동의 틀을 바꾸어놓았다. 일본에서는 기업별 노조들이 정치 세력화를 추구하는 상급 단체나 산별 노조와 적당히 거리를 둠으로써 노사 안정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도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인가? 최근 대형 사업장 노조를 중심으로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에서 탈퇴해 새 노동운동을 꾀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004년 장기 투쟁을 벌였던 코오롱노조는 그룹 회장 자택에 침입하는 등 막무가내식 투쟁으로 일관했다. 노조는 1994년 민주노총에 가입한 뒤 매년 5천만원의 분담금을 내면서 다섯 차례나 파업을 강행하는 등 투쟁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노조에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2006년 7월 합리적 노선을 표방한 김홍렬 위원장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김위원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강경 노선을 걷는 민주노총 탈퇴이다. 그는 상생의 노사 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난해 12월 조합원 95.4%의 압도적 찬성으로 상급 단체와의 결별을 결정했다. 올 4월에는 항구적인 무파업까지 선언했다. 또 임금 동결을 선언함으로써 경영에 힘을 실어주었다.
섬유 기업인 코오롱은 노동력에 기댈 수밖에 없어 파업을 하면 할수록 수익은 줄어드는 취약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가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값싼 노동력의 중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코오롱은 존폐 위기에 놓여 있었다.
더구나 강성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간부들은 해고되거나 구조 조정으로 직장을 잃은 상태이다. 노조로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던 것이다.
골리앗 투쟁으로 이름을 떨쳤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2004년 민주노총을 탈퇴한 뒤 인근 사업장 노조원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매년 상급 노동 단체에 내오던 연맹비(5억여 원)를 조합원 복지 등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울산 노동운동의 종가로 군림했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상급 단체를 탈퇴한 사실은 민주노총뿐 아니라 노동운동가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민주노총 안에서의 입김은 많이 약해졌지만 노동계에서 현대중공업 노조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만큼 현대중공업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대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산하 노조 매년 줄어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은 운동 노선을 바라보는 시각차 때문이다. 12년째 무분규 타결을 이룩하며 합리적으로 돌아선 현대중공업 노조 처지에서는 투쟁의 늪에 빠져 있는 민주노총과 계속 손을 잡고 있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간 격돌은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자살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박씨를 열사로 규정하고 계속 투쟁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조는 개인 사생활에서 비롯된 사태라며 이 요구를 거부했다.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상급 단체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제명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상급 단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별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독자 노선은 실용적 변신을 뜻한다. 정치 투쟁보다 조합원들의 권익 향상을 중시하겠다는 실사구시의 선언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 노조에서는 이제 옛날 투쟁 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노조는 선박 발주처인 엑슨모빌 사에 편지를 보내 노동계 안팎에 회자하기도 했다.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의 품질로 납기를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2004년 여름 한 달가량 파업했던 GS칼텍스 노조원들도 뒤늦게 파업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앞뒤 가리지 않는 지도부의 투쟁 전략에 떠밀려 파업을 벌였으나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GS칼텍스 노조는 파업이 끝난 뒤 대의원 대회를 열어 90%가 넘는 지지를 받아 민주노총을 탈퇴해버렸다. 불법 파업 대가로 노조 지도부는 깨지고 회사측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었다. 2005년 1월 GS칼텍스 여수 공장에서 만난 한 노조원은 “조합원들의 90% 정도가 파업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상급 단체를 탈퇴한 것은 무리한 파업을 이끈 노조 지도부에 대한 질타인 셈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노조의 무분별한 정치 세력화가 결국 많은 노조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라고 지적했다. 연봉 7천만원이 넘는 ‘귀족 노조’의 섣부른 투쟁이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만든 것이다.
건설업계 최대 노조였던 대림산업건설 노조는 지난해 5월 계열사인 고려개발과 함께 민주노총을 탈퇴한 데 이어 12월에는 아예 노조 해산을 결의했다. 집단 행동을 통한 ‘내 몫 찾기’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노동부 관계자는 “대림 노조의 상급 단체 탈퇴는 민주노총이 정치 투쟁에만 신경 쓰기 때문이었다. 민주노총이 새 노동운동 노선을 찾지 못한다면 위기에 부딪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1년 81일간 장기 파업을 벌인 태광산업도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뒤 온건 노선의 노동운동을 정착시켜가고 있다. 효성 노조 또한 민주노총 탈퇴 후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노조에 거부감을 느끼는 흐름은 노조 조직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 투쟁을 지향하는 노동운동 지도부와 고용 안정에 관심을 두는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노조 가입자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노조 조직률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1989년 19.7%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1998년 12.6%로 떨어진 뒤 2005년에는 10.3%까지 또다시 하락한 상태다. 노조 조직률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수를 전체 임금 근로자 수로 나눈 수치로,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자 10명 중 1명꼴로 노조에 가입한 셈이다.
노동계를 양분하고 있는 한국노총·민주노총 양대 노총 산하의 노조 수도 매년 줄고 있다. 2005년 한국노총 산하 조합과 조합원 수는 3천5백89개, 77만5백72명으로 전년보다 각 1백25개와 9천6백11명이 줄었다. 민주노총 밑에는 1천2백5개 조합, 64만2천53명의 조합원이 있다. 전년보다 51개 조합, 2만6천83명의 조합원이 감소했다. 우리의 노조 조직률은 독일(26.2%), 타이완(37.0%), 영국(26.2%), 싱가포르(25.0%), 일본 (18.7%)보다 낮다. 이는 노동조합이 강경 투쟁을 벌이면서 근로자들이 노조 가입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 생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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