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푼돈 들여 ‘큰 쇼’ 했네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5.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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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너가 적극 ‘구매 외교’…원화 절상 압력 피하기 등 다목적 포석

 
중국이 한 주일 동안 일해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회사 물건을 사겠다고 생색을 냈다. 5월 하순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마음먹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려고 벼르고 있던 마당이다. 미국 기업들은 일단 반색한다. 대규모 구매사절단이 찾아와서 한꺼번에 27건이나 계약을 체결해 대박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나 경제 전문가들은 시큰둥하다. 첨단 분야 업계와 학계는 다른 눈으로 본다. 중국이 왜 IT 분야 기술을 대거 구매하려고 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중국은 지난 5월9일 캘리포니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포트웨어 13억 달러어치를 구매하는 등 모두 43억 달러에 달하는 구매 계약에 서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외에 오라클, 시스코 시스템스, 휴렛 패커드 등 첨단 분야 회사가 주 거래 대상이었다. 이번 구매 계약 체결을 두고 캘리포니아 주는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주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 차 있다.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앞으로 캘리포니아의 대중국 수출이 지난해의 2배인 2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40억 달러에 달하는 단번의 계약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시다.
중국의 이번 구매 계약은 지난해 대외 무역수지 흑자 2천3백20억 달러에 비하면 규모에서는 별로 대단하지 않다. 중국은 지난 4월 한 달 동안 대외 무역수지 흑자 1백70억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이 대충 한 주 동안 일해서 외국에서 벌어들인 돈만 해도 43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에서 생기는 수익 금액만 해도 한 해 29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요란한 구매 활동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에 마슈홍 상무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2백명의 구매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해 23개 주 24개 시를 방문했다. 미국 대륙 절반을 대상으로 구매 행사를 벌인 셈이다. 대미 상품 구매 규모 43억 달러만으로도 충분히 미국에 생색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중국측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무부는 5월 하순 미·중 무역 회담을 앞두고 조금은 당혹해하는 분위기이다. 폴슨 장관 등은 이같은 중국의 생색내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요구는 늦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간 1천7백억 달러의 대중국 무역 적자를 줄여서 조금이라도 미국 납세자들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미국 재무부는 중국의 ‘껌값 구매 쇼’에 넘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언론은 중국도 이번 양국 무역회담에서 미국측이 강경한 자세를 보일 것을 의식하고 사전에 물타기 작전을 펼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미 환율 조정회의에서 중국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그 공세를 완화시키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피터 모리치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 전 경제담당 수석보좌관은 중국의 구매 쇼를 ‘정치적 연막 작전’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중국의 구매 쇼가 어느 정도 중국측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미국 업계, IT 분야 기술 집중 매입에 ‘신경’


하지만 미국 첨단 산업계는 중국의 구매 아이템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번에 중국이 구매한 주 아이템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통신 분야다. 업계는 2년 전인 2005년 중국이 레노보 사를 앞세워 미국IBM의 PC 부문을 매입한 데 이어 본격적인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기술을 구입한 것은 국제 컴퓨터 시장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중국이 수준 높고 값이 싼 IT 인력을 배경으로 싸고 질적으로 손색이 없는 IBM PC를 국제 시장에 내놓을 경우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고, 이는 미국 컴퓨터 시장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IT 관련 학계는 중국과 인도가 일본과 유럽을 제치고 떠오르면서 앞으로 10년 내에 국제 IT 업계가 미국·중국·인도가 삼각 축을 이루는 형상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의 이번 소프트웨어 및 반도체 기술 매입은 이같은 세계 판도 변화에 가속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전망이다. 이같은 전망은 중국이 IBM PC 부문을 매입할 당시 스위스 IMD 대학의 장 피에르 레만 교수(정치 경제학)가 진단한 내용과 일치한다. 레만 교수는 유럽과 일본의 IT산업을 비판하면서 중국과 인도가 국제 IT업계에 태풍의 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다른 지역 이민에 대한 배타적 자세와 일본의 단일민족 지상주의가 그들이 IT산업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21세기 세계 경제의 주역이 IT산업으로 옮아가고 있는 마당에 경쟁력 없는 국민 정서나 국가 정책이 자국 패배의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업계의 또 다른 반응은 두려움에서 나오고 있다. 업계는 지난 3월 진런칭 중국 재무부장이 세계 최대 중국 투자 기구 설립을 발표한 뒤 곧이어 대미 구매사절단이 파견되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진런칭은 당시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에서 2천억 달러에서 최대 4천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운용할 대외 투자 기구 설립을 보고했다. 진런칭은 이 기구의 기금은 중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1조 달러 가운데 일부를 투자하는 형식으로 조성된다고 밝혔다. 인민일보는 이 기구가 미국의 국채와 증권에도 투자할 것이고 소비 제품이나 기술 구매에도 적극 나서 싱가포르의 테메세크 같은 기구로 운영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미국 국채 투자 등에서 지난해 수익율이 3%에 그친 반면 싱가포르의 테마세크는 1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사회주의 중국이 안고 있는 투자의 비효율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 대외 투자 기구 설립은 중국이 싱가포르를 모델로 해서 자본주의 방식의 적극적인 대외 투자를 시도할 것이라는 신호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업계는 중국이 이같은 대규모 자금력을 동원해서 IT산업에 매진할 경우, 미국 IT업계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점치느라 부산하다. IT산업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서는 이미 경쟁력을 잃은 2급 기술일지라도 마구 사들일 경우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선진국과 중국 간의 샌드위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국제 판도 변화는 거대한 흐름을 타고 소용돌이치고 있다. 미국·중국·인도라는 거대 국가들이 주축이 된 커다란 소용돌이다. 머지않아 중국이라는 거대한 탱크가 한국의 IT산업을 묵중한 무한궤도 바퀴로 짓이기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샌드위치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위기이다. 한국의 샌드위치 위기론은 오히려 한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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