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운명, 아줌마 손에 달렸다
  • 노진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2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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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개발에서 판매까지 영향력 막강...술에서 수입차끼지 구매도 좌우

 
미국의 한 중소기업은 지난해 야구공 모양의 진공 청소기를 개발했다. 바닥에 놓아두면 온 방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이는 로봇 청소기의 일종이었다. 소형이라는 장점 때문에 이 회사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출시되고 난 후 이 제품은 기대만큼 환영을 받지 못했다.
고민에 빠진 이 회사는 주부평가단을 모집해 제품 사용 후기를 받았다. 결과는 엉뚱하게도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이 제품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주부들의 의견을 판매 전략에 반영해 고양이 장난감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청소기라는 점을 부각시켜 시장에서 큰 시선을 끌었다.
이처럼 아줌마들이 한 회사의 앞날에 큰 영향을 주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아줌마는 제2의 CEO(최고경영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시장에서 제품을 많이 구입하는 소비층이 주부이기 때문에 아줌마들의 구매 심리를 이용하면 제품을 많이 팔 수 있다는, 이른바 ‘아줌마 마케팅’은 구시대적 판매 방법이 됐다.
이제 아줌마를 기업 경영에 참여시키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 주 소비자인 아줌마는 왕성한 구매력을 보일 뿐만 아니라 입소문과 인터넷으로 제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퍼뜨리기 때문이다. 아줌마닷컴의 황인영 대표는 “아줌마의 결집력은 대단해서 이들의 제품 평가는 입과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로 퍼진다. 아줌마는 광고보다 친구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특징이 있다”라고 말했다.


아줌마 59% “입소문 듣고 제품 구입”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학부모 7명이 교복의 과도한 거품 값을 빼기 위해 2개월간 노력한 끝에 신입생 2백여 명의 하복을 공동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학교 홈페이지의 교복 공동 구매 입찰 공고를 통해 참가한 23개의 교복 업체 가운데 품질과 최저 가격을 따져 한 업체를 입찰했다. 그 결과 기존 하복 가격 9만원을 4만9천원으로 내렸다.
이렇듯 아줌마의 힘은 세다.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관계’ 의식에서 나온다. 아줌마는 이웃집·미용실에서부터 학부모 모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아줌마 10명 중 7명 이상이 평균 5.1개의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이 아줌마닷컴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이다.
이 관계를 통해 입소문이 난다. 제품을 직접 써본 아줌마가 다른 아줌마에게 사용 소감을 말해주는 식이다. 아줌마들이 광고보다 입소문에 의존해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모니터센터가 최근 20세 이상 기혼 여성 2천3백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중복 응답)한 바에 따르면, TV 광고를 보고 제품을 구입한 경우는 30%에 불과한 반면 입소문에 영향받아 제품을 구입한 경우는 59%에 달했다. 인터넷 사용기를 읽고 제품을 구매한다(37%)와 샘플을 사용해보고 제품을 구매한다(36%)가 그 뒤를 이었다. 각종 광고를 보고 제품을 구입했다는 응답은 10%를 넘지 못했다.
또 입소문으로 얻은 정보에 대한 아줌마들의 관심도를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4%가 입소문에 관심을 보였다. ‘관심 없다’라고 한 응답은 1%에 그쳤다. 제품을 사용한 후 다른 사람에게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82%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동차나 술 하면 성인 남성의 선택권이 절대적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열 가정 중 여섯 가정은 주유소를 주부가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모니터센터가 지난해 1백55 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적으로 (주부가) 결정한다’가 26%, ‘남편과 상의하지만 주로 내(주부) 의견이 영향을 미친다’라는 응답이 34%로 집계되었다. 전체 응답자의 70.3%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가정에서 마시는 술을 구입할 때 주부의 영향력은 75.6%로 나타났다. 주부 4백75명 중 남편이 술을 구입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13.7%에 불과했다.
 
여성용 제품은 물론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제품의 구매에도 아줌마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아줌마의 영향력은 고급 자동차 구매에까지 미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DIA)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우디와 렉서스 등 수입차를 구매한 고객 중 여성이 50%를 넘었다. 아우디의 경우 지난 2월 말 기준 40대 여성 구매자가 35명으로 남성(33명)을 앞질렀다.
아줌마의 영향력은 나이도 초월한다. ‘뉴포티(New Forty)’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가꾸는 데 적극적 태도를 보이는 등 이전 40대와는 사뭇 다른 소비 패턴을 가진 요즘 40대 전후 연령대의 아줌마를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패션 제품 소비를 이끌어왔던 고객층은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의 의류 구입 비용은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뉴포티의 소비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패션 정보사인 퍼스트뷰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20대 후반 여성의 월 피복비 지출액은 2005년 10월 27만8천원에서 올 3월 21만5천원으로 줄어들었지만, 40대 여성의 경우는 18만8천원에서 35만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회사 채윤진 대리는 “과거 20대를 겨냥한 제품을 30~40대 아줌마가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 또 실구매력은 20대보다 30~40대 아줌마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


주부 평가단 혹평에 신형 냉장고 출시 포기


요즘 아줌마는 옛날처럼 펑퍼짐한 아줌마가 아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데 처녀들 못지않게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흡사 자매처럼 보이는 엄마와 딸이 팔짱을 끼고 쇼핑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패션계가 ‘맘앤도터(Mom & Daughter)’ 마케팅을 펴는 이유이다. 50대 가수 인순이가 지난해 캐주얼 브랜드 베이직하우스의 모델로 발탁된 것이 모녀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이다. 동시에 캐스팅된 신세대 20대 가수 아이비와 흡사 모녀처럼 다정한 포즈로 광고용 포스터를 찍었다. 이 브랜드의 주 고객은 20대이지만 30대 중반 이상 연령대의 구매 비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중장년층의 캐주얼 제품 구입이 늘었다고 한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1년간 청바지 구매 패턴을 조사한 결과 30~40대 구매 비중이 82%에 달해 이들 연령대의 구매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손진기 의류 총괄이사는 “10~2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청바지를 찾는 아줌마들이 늘었다”라고 말했다.
GS스퀘어백화점은 매월 ‘프로 주부의 쇼핑 탐방기’를 전단에 내보낸다. 지난 3월에는 아줌마가 쇼핑한 아이템을 전단에 소개했고 4월에는 아줌마가 만든 음식을 소개했다. 5월에는 아줌마 고객이 선정한 중남미 관련 아이템을 전단에 소개했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이 마케팅은 30~50대 아줌마들의 공감을 일으키며 지난 3월과 4월 전단에 나간 아이템의 매출이 30% 이상 늘었다”라고 말했다.
아줌마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잘 활용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손실을 줄일 수도 있다. 냉장고를 개발한 한 가전 업체는 출시를 앞두고 아줌마 평가단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그 냉장고를 사고 싶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는 고심 끝에 그 냉장고 출시를 취소해 더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줌마들의 체험을 제품 개발이나 경영에 참고하려는 기업의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기업들은 아줌마들에게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아줌마 마케팅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아줌마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경우는 적다는 것이 아줌마들의 주장이다.
아줌마닷컴의 황인영 대표는 “젊은 아가씨들이 서비스하는 주유소 광고는 아줌마들에게는 오히려 반감을 산다. 정유사는 최근 늘어나는 아줌마 운전자를 의식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실시하지만 정작 젊은 아가씨들이 있는 주유소는 달갑지 않다. 젊은 아가씨가 있는 주유소에 남편과 함께 찾아갈 아내가 얼마나 있겠는가. 작은 부분에도 아줌마들의 체험과 시각을 반영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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