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각의 땅에 보물이 주렁주렁
  • 윤지현 프리랜서 기자 ()
  • 승인 2007.06.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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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산업, 온 ·오프라인에서 대약진...시장 규모 4천억원 넘어
 
지난 4월의 마지막 날과 5월의 첫날 잇따라 발행된 두 권의 만화책이 인기다. 아동 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코믹 메이플스토리> 21권(서울문화사)과 대하소설 <토지>를 만화로 각색한 오세영의 <만화 토지> 7권(마로니에북스)이 그것이다.
<코믹 메이플스토리>는 2004년 국내 최초로 게임을 만화화해 3년간 6백만 부 이상을 판매했다. 유치원생·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이 책을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이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다음 편이 많이 기대되는 책” “웃음과 재미를 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책” “스토리에 푹 빠져 집중이 잘되고 잡념이 사라진다” 등등 아이들의 반응은 매우 뜨겁다. 이 책의 인기에 영향받아 아동 게임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겨나고 이후 비슷한 성격의 책 출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로부터 “토지를 각색한 작품 가운데 가장 원작에 가깝다”라는 평가를 받은 <만화 토지>의 등장 역시 출판 만화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만화 삼국지>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다양한 층의 독자를 만화 시장으로 끌어 모은 바 있다. 하지만 <삼국지>가 중국 소설인 데 반해 <토지>는 한국의 대표적 현대 소설로서 곡절 많은 근세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한국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토지>의 텍스트와 만화가 오세영의 4년간의 땀이 오롯이 밴 만화판 <토지>의 등장은 기존 문학 작품의 만화화를 더욱 촉진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펴낸 <만화산업 백서 2006>에 따르면 국내 만화 산업은 2005년도 4천4백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화 출판 제작이 2천1백85억원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만화 유통과 임대업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출판 만화 시장에서 아동·학습 만화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학습 만화로 대표적인 <마법천자문>은 한자를 이미지로 배운다는 새로운 학습 방식을 앞세워 성공을 거두었다. 높아진 아동·학습 만화 수요에 따라 문학 출판사와 대교·웅진 등 교육 전문 기업도 학습 만화 출판 경쟁에 뛰어들었다.
고급화한 복간 만화의 등장도 최근 출판 만화 시장의 새로운 흐름이다. 복간 만화는 과거 히트작을 중심으로 컬러를 추가하고 판형을 고급화한 것이다. 과거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만화들이 복간 만화의 주를 이루고 있다. <꺼벙이> <공포의 외인구단> <아기공룡 둘리> <H2> <슬램덩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복간 만화를 소장용으로 구입하는 사람도 많다. 영풍문고의 직원 김문희씨(27)는 “종이 질이나 컬러가 고품격화한 만화를 소장하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보급에 힘입어 인터넷 만화 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01년 1백37억원이었던 온라인 만화 시장 매출은 4년 만인 2005년 3백19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기업·지자체, 만화 홍보물 제작도 활발
인터넷 만화는 2003년 심승현의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밀리언셀러로 떠오르고 이어 강풀·강도하 등 인터넷 인기 만화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성기를 열었다. 인터넷 만화가 빠르게 확산되자 기존의 출판 만화 작가들이 인터넷으로 검증을 거친 뒤 다시 오프라인으로 만화를 출간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을 정도이다.
초기에는 만화 전문 사이트를 통한 인터넷 만화 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 만화를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포털이 과거 만화 잡지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네이버·다음·야후 등 6대 대형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수많은 사이트에서 만화를 서비스하고 있다. 만화는 포털 사이트들에 수익을 올려주는 주요 콘텐츠가 되었다. 방문자 수를 늘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만화를 담당하는 김원씨(30)는 “유명 만화가들의 만화가 온라인에 연재되면서 사이트 방문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인터넷 만화가 이처럼 급속하게 성장한 것은 만화가들이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만화가들은 인터넷상에서 출판과 유통 구조의 제약 없이 자기 능력에 따라 작품을 발표할 수 있다. 만화가와 독자 간의 소통도 활발해 트렌드의 변화도 만화 속에 쉽게 녹아든다. 내용과 형식에 제약이 없는 것도 인터넷 만화의 장점이다. 출판 만화 시장에서 기피하는 장르의 만화물이 인터넷에서는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 <아파트>의 원작인 강풀의 <미스테리심리썰렁물>, 스릴러와 코믹이 잘 어우러진 김선권의 <수사9단>, SF 장르를 시도한 창작 집단 풍경의 <블러드오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터넷 만화가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보완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특히 저작권과 권익 보호 문제는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출판 만화에 비해 60~70%에 불과한 인터넷 만화 원고료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만화 홍보물도 근래 들어 속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예전에도 <똘이장군> 같은 홍보용 만화가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최근에는 만화의 가치와 효용을 인지한 사람들이 늘어 만화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홍보 대상도 다양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원칙과 가치를 만화로 설명한 홈페이지 코너를 만들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만화로 보는 즐거운 남도여행>이라는, 만화로 된 관광 홍보 책자를 내놓았다. 부여군은 달라진 회계 제도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아하! 그렇군요>라는 만화 책자를 발간했다.
기업들도 홍보용 만화를 잇달아 만들고 있다. 알리안츠는 올 1월 보험 안내장의 낯설고 어려운 용어를 만화로 만들어 배포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홍보 만화 전문업체 씨스톰의 강진석 실장은 “친숙함과 재미를 가진 만화가 차세대 광고 기법으로 떠오르고 있다”라며 홍보 만화의 미래를 낙관했다.
게임·영화 등으로도 높은 부가가치 올려
만화 산업에서 만화 원작 활용의 증가 현상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만화를 원작 텍스트로 한 영화·게임·드라마의 성공은 만화를 통한 새로운 수익 창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일숙의 <리니지>, 이명진의 <라그나로크>는 게임 분야에서 수천억원 대의 시장을 창출했다. 충무로에서는 만화가 콘텐츠 가뭄의 단비가 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난해 제작된 <아파트> <다세포소녀> <타짜> 등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계의 제작 수준이 높아져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현실화할 여지가 커지면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TV 드라마 <궁>과 <쩐의 전쟁>도 만화가 원작이다.
대한민국 만화상 수상작인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는 5월 초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올 하반기에 소설과 영화 버전도 나올 예정이다. 강풀의 <순정만화>는 연극으로 제작되어 인기를 모았다. 강풀의 경우 <아파트> <바보> <순정만화> <26년> 네 작품 모두 영화화되거나 제작 중이어서 만화 상품화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만화의 원작 활용이 각광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장점은 이미 확보된 독자들의 반응을 발판으로 대규모 투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의 다양한 콘텐츠와 소재 활용이 가능한 것도 이점이다. 하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만화계가 양질의 만화를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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