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시장 '부드러운 손' 엠니스
  • 노진섭(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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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 · 요리 등에 관심 많은 남성 늘어...육아 용품 ·화장품 구매도 적극적

 

회사에서 퇴근한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 “밥 먹자. 아이는? 불 끄고 자자”라는 세 마디 말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한때 코미디의 소재로 쓰였다. 말이 많으면 안 된다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비꼬는 말이지만 이런 무뚝뚝한 남성은 이제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남성 염색체인 ‘XY’에서 남성을 상징하는 ‘Y’염색체가 ‘X’의 성향으로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때이다.
“변화를 거부하다가 공룡처럼 멸종할 것인가, 카멜레온처럼 영리하게 살아남을 것인가.” 지난해 출판된 <남자의 미래(The future of men)>라는 책에서 트렌드 분석가 메리언 살츠먼은 “거칠고 단순한 남성의 시대는 끝났다”라면서 이같이 묻는다. 저자는 여성적 특징을 두루 갖춘 남성, 즉 엠니스(Mness)가 미래의 남성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엠니스는 남성을 뜻하는 맨(man)과 성질·상태를 나타내는 니스(ness)의 합성어로 힘·명예 등 전통적인 남성의 특징에 양육·소통·협력 등 여성의 특징을 결합한 남성을 일컫는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기혼 여성 직장인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상 1위가 ‘엠니스형’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리쿠르팅 사이트 잡코리아와 직장인 전문 포털 비즈몬이 최근 여성 직장인 7백56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남성 유형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서 로맨티스트형(36.9%) 다음으로 가정적 남성상인 엠니스형이 23.9%로 2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기혼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엠니스형이 49.1%로 1위를 차지했다.


 
20, 30대 남성 직장인 48% “나는 엠니스족”
또 많은 수의 젊은 남성들은 자신을 엠니스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0, 30대 남성 직장인 9백23명을 대상으로 엠니스족 선호에 대한 조사 결과 48%는 “나는 엠니스족”이라고 대답했다. 또 85.3%가 엠니스족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전체 응답자 중 45.4%는 피부 관리나 옷 구입 등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51.9%는 쇼핑을 즐겨 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67.5%는 육아나 가사 역할에도 관심이 많거나 적극적인 편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이 늘어나면서 가사나 육아에 관심을 갖는 남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남성 스스로 시대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공룡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최근 영국과 독일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인간의 골수에서 인공 정자를 만들어냈다. 남성 없이도 임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화 속 아마조네스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엠니스족은 소비 시장의 판도도 바꿔놓았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강세를 보이던 IT나 주류, 자동차 시장에서 남성 소비자들이 패션이나 미용, 육아 시장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 이들은 요리·미용·육아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과 가족을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에 따르면 그동안 여성들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육아 용품과 미용 상품을 구매하는 전체 소비자 중 남성의 비율이 2005년 10%에서 지난해 20%로 늘어났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매년 10%씩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올해에는 30%대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 특히 고가 상품인 유모차나 카 시트를 구매하는 소비자 10명 중 7명은 남성”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나이가 많을수록 남성 소비자의 비율이 여성보다 높다. 인터파크 직영 온라인 할인점 인터파크마트의 20대 소비자 중 남성 비율은 28.8%, 30대는 32.9%, 40대는 36.9%, 50대는 46.4%, 60대는 58.5%로 집계되었다. 장보기가 20~30대의 젊은 남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인터넷 구매를 편리하게 생각하는 남성이 늘고 있고, 최근 이혼과 자녀 유학 등으로 혼자 사는 장년층이 늘어나는 사회 풍토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현대백화점은 업계 최초로 남성 전용 쇼핑 도우미까지 도입했다. 백화점을 남성 소비자와 돌아다니며 직업·스타일·피부색·취향 등에 맞춰 넥타이나 화장품까지 함께 골라준다. 현대백화점 김준영 과장은 “과거에는 남성들이 아내를 백화점에 데려다주는 ‘운전형’이었다면 요즘은 직접 참여하는 ‘쇼핑형’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도 그런 남성 소비자 잡기에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엠니스족은 육아나 자녀 교육에도 관심이 높다. 유아 용품 전문점 아가방이 제품 개발에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연 ‘아가방 프로슈머 카페’의 경우 참가자 중 10% 이상이 남성이었다. 또 이 회사는 지난 4월 발표한 ‘제1회 캐릭터 및 로고체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을 남성의 작품으로 결정했다. 아가방 홍보부문 김영일 팀장은 “남녀 간 역할이 파괴되면서 육아나 유아 용품에 대해 아빠들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젊은 아빠들도 여성들만큼 정보를 모으거나 나누는 데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미용에도 관심이 많은 엠니스족은 화장품 시장에도 변화를 주었다.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전체 화장품 시장 규모(5조5천억원)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매출은 2005년 4천5백억원에서 지난해 5천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매년 1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소망화장품의 경우 남성 화장품 매출이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이다. 소망화장품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아 여성 화장품 매출이 정체기를 맞을 때도 남성 화장품 매출은 꾸준히 성장세를 탄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아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은행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는 식당, 미장원, 도서관, 세탁소, 병원을 떠올린다. 그만큼 엄마는 아이들에게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만, 아빠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기계쯤인지도 모른다. 남성이 엠니스족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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