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두산’ 쇼는 계속된다
  • JES제공 ()
  • 승인 2007.06.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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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일 만에 꼴찌에서 선두로 수직 비행…치명적 전력 공백, 뚝심으로 메워

 
미라클(miracle). 우리말로 ‘기적’이라는 뜻이다. 입신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교적 의미까지 지닌 이 단어를 수식어로 갖고 있는 프로야구 팀이 있다. 가장 대중적 스포츠인 프로야구에서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먼 ‘기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역설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미라클 두산.’ 팬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른다. 거슬러 올라가면 7년 전인 2000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초반 3연패 뒤 3연승을 거두었을 때부터 두산은 ‘기적의 팀’이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결국 7차전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팬들은 그때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기적은 올해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라클 두산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김경문 두산 감독이 2007 시즌을 앞두고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못 갈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말로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5위로 아쉽게 가을 잔치에서 탈락한 두산은 올해 4강 재진입을 지상 목표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즌 개막전인 4월6일 대구 삼성전에서 7-4로 앞선 9회 말 마무리 정재훈이 동점을 허용해 결국 연장 10회에서 7-8로 역전패하며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튿날인 7일 시즌 첫 승을 따낼 때만 해도 2승째를 얻기 위해 열흘을 기다려야 할 줄은 몰랐다. 8일 삼성전부터 15일 SK전까지 충격의 6연패. 17일 현대전에서야 가까스로 연패 수렁에서 탈출했으나 한동안 꼴찌의 수모를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곰 특유의 뚝심이 있었다. 차츰 투타에서 안정을 되찾아 5월5일 LG전 승리로 지긋지긋한 꼴찌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이후에는 눈부신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1일 한화전까지 6연승을 달린 뒤 5월26∼31일에는 다시 5연승으로 치고 나갔다. 1위 SK에 승차 없이 승률에서만 뒤진 채 2위를 달리던 두산은 마침내 지난 6월10일 8개 구단 중 맨 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시즌 첫 단독 선두. 5월4일 최하위에서 6월10일 1위까지 37일 동안에 펼쳐진 기적 같은 드라마였다.


최저 연봉 팀의 거침없는 반란
두산의 선전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치명적인 전력 공백을 땀과 노력, 투지로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두산은 토종 에이스 박명환을 라이벌 LG에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다.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간 베어스에 몸담았던 박명환은 4년간 40억원이라는 ‘FA(프리 에이전트) 대박’을 터뜨리며 옆집으로 떠나갔다. 뿐만 아니었다. 부동의 유격수 손시헌이 상무에 입대하고 외야수 임재철도 군 복무로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좌완 이혜천도 허리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겨울 김승영 단장이 미국까지 날아가 영입을 시도했던 김선우는 끝내 두산의 러브콜을 외면했다.
그러나 쉽사리 무너질 두산이 아니었다. 선발진에서는 리오스·랜들 두 외국인 투수가 더욱 위력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군에서 제대한 구자운 ·이경필, 전천후 요원 김승회 등이 필요한 순간 제 몫을 해내며 박명환·이혜천의 공백을 메웠다. 구원 투수로는 신인 임태훈과 좌완 금민철, 두 명의 정재훈을 앞세워 특유의 막강 불펜을 구축했다.
타선에서는 지난해 어깨 부상으로 FA 자격까지 뒤로 미룬 김동주가 덩지와 이름값에 걸맞은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시즌 도중 롯데에서 이적한 최준석도 중요한 순간 한 방을 날리며 김동주의 뒤를 받친다. 이종욱·고영민·민병헌 등 호타준족들도 활발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 수비의 혼을 빼놓고 있다. 유격수 손시헌의 공백은 SK에서 트레이드해온 이대수가 튼실하게 메우고 있다.
두산은 ‘저비용 고효율’의 상징 같은 팀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2월 집계한 2007 시즌 구단별 평균 연봉에 따르면 두산은 6천7백만원으로 8개 구단 중 최소를 기록했다.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선수 44명의 연봉 총액은 28억8천1백만원으로 지난해 32억9천6백만원보다 13%가량 줄어들었다. 평균 연봉 1위인 삼성(1억3천1백97만원)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위는 한화의 9천2백94만원. 3위는 SK의 8천1백67만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산이 무작정 돈을 아끼는 팀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김명제·서동환·이용찬·임태훈 등 유망주 투수들에게 각각 4억∼6억원의 입단 계약금을 안겨주는 등 전력 강화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김선우(현 샌프란시스코)를 영입하기 위해 무려 40억원 이상의 거액을 베팅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두산은 ‘깜짝 스타’의 산실이라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갔다. 마무리 투수 정재훈과 유격수 손시헌, 지난해 도루왕 이종욱, 주전 2루수 고영민 등 무명에 가깝던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간판 선수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그 전통은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는 SK에서 트레이드된 이대수. 시즌 초반 두산은 유격수로 나선 안상준·나주환 등이 수비에서 약점으로 드러내며 내야 전반에 걸쳐 수비 불안을 야기했다. 그러나 4월29일 나주환을 내주고 이대수를 받아들인 뒤 팀 수비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대수는 장기인 수비 못지않게 공격에서도 하위 타선의 첨병 노릇을 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대수 영입 후 대반격 시작돼
두산이 대반격을 시작한 때가 바로 이대수를 영입한 직후인 5월 초였다. 두산의 탈꼴찌와 선두권 도약에는 이대수의 깜짝 활약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또 올해 군에서 제대한 채상병도 주전 포수 홍성흔의 부상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다.
마운드에서는 고졸 새내기 임태훈이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임태훈은 묵직한 구위는 물론 19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두둑한 배짱과 여유 있는 마운드 운영을 보이며 불펜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궂은일을 도맡고 있는 김승회와 6월8일 삼성전에서 데뷔 7년 만에 승리 투수의 영예를 차지한 김상현 등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올라 다른 구단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두산이 이렇듯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특유의 뚝심을 잃지 않는 데는 김경문 감독의 ‘기다릴 줄 아는’ 리더십도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로 감독 4년차를 맞은 김감독은 당장의 성적 못지않게 팀의 미래를 위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한 번 준 믿음은 쉽게 버리지 않으며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시범경기 때 이 선수 저 선수 테스트해본 다른 팀과 달리 김감독은 매 경기 선발 라인업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또 시즌 초반 제1선발 리오스가 다소 부진했을 때는 “언젠가 제 몫을 해낼 것”이라고 변치 않은 믿음을 보냈다. 리오스는 5월 이후 파죽지세의 연승 행진을 벌이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주전 포수 홍성흔이 허벅지 근육통을 입었을 때도 김감독은 “한 경기 먼저 나가려다 수십 경기 놓칠 수도 있다”라며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그 덕분에 백업 포수 채상병은 공수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홍성흔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안방마님 자리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어느 팀이든 연승·연패를 할 수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라며 결코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으며 페넌트레이스를 운영하는 김감독. 이렇듯 ‘기다릴 줄 아는’ 리더십이 팀을 꼴찌에서 선두로 끌어올리는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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