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있는’ 한국 미술
  • 베니스·김세원 (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6.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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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 참관기/이형구 개인전 ‘주목’

 

 
물의 도시 베니스는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대 현대미술 축제인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6월10일~11월21일)를 맞아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 베니스의 거리 곳곳은 물론 수로를 오가는 배 위에 올해의 상징인 체리핑크 빛 악어 조형물이 붙어 있고 비엔날레를 알리는 체리핑크와 연둣빛 대형 플래카드가 다리마다 걸려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올해로 52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의 주제는 ‘감각으로 생각하기, 마음으로 느끼기, 현재 시제의 미술’(Think with the senses-Feel with the Mind-Art in the Present Tense). 미국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감독이 된 로버트 스토 예일 대학 예술대학장은 “플라톤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정신과 육체, 이성과 직관, 지성과 감성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동안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시도들에 대한 우대 정책으로 온갖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작품들이 한바탕 ‘난장’을 펼치는 무대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올해는 미술사학자 출신인 스토 교수가 전시 기획을 맡으면서 ‘실험과 정통의 조화’ 혹은 ‘이성과 직관의 화해’ 쪽으로 균형을 잡았다. 특히 스토 감독이 직접 구성한 본 전시에는 전세계의 작가 96명이 소개되었다. 세계 모더니즘의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96)를 비롯해 다니엘 뷔렝, 소피 칼, 시그마 폴케, 솔 르윗, 지그마르 폴케, 게르하르트 리히터, 수전 라우셴버그 등 대가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온 낯선 작가들을 나란히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비엔날레에서 홀대받았던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으나 식상할 정도로 검증된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해 지나치게 안전성을 추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77개국 2백80여 작가 참가 ‘사상 최대’
77개국 작가 2백80여 명이 참가해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번 행사는 아르세날레의 본 전시와 자르디니 공원의 세계 각국 국가관 전시, 협력전 등 부대 행사로 나뉘어 11월21일까지 계속된다. 그중 국가관을 별도로 가진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34개국이다. 조선소를 개조해 만든 아르세날레 본 전시관에서는 미술의 주류로 부상한 사진이 강세이다. 비엔날레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도 말리의 사진작가 말릭 시디베(71)에게 돌아갔다.
조각가 이형구(38)의 개인전으로 꾸민 한국관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독일관·일본관에 둘러싸인 한국관은 70평 남짓한 작은 규모이지만 세계인에게 친숙한 만화 주인공 톰과 제리가 쫓고 쫓기는 장면을 뼈다귀로 재현한 ‘아니마투스’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마투스와 함께 전시된 신체 변형 기구 ‘오브젝추얼스’도 눈길을 끈다. 이씨가 예일 대학 유학 시절 동양 남자로서 서양인의 거대한 육체에 대해 느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작품들이다. 전등갓으로 헬멧을 만들어 눈과 입을 확대하고, 물을 담은 페트병과 위스키 잔에 팔뚝과 손가락을 넣어 굵어 보이게 만들었다. 이씨는 “7백70만 종의 뼈를 소장하고 있는 스위스 바젤 자연사박물관에서 작품 구입 의사를 타진해왔다. 플라스틱 재료인 레진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만화 주인공의 뼈다귀를 만들면서 미술관이 아닌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꿈이었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의 전시관, 작가, 젊은 작가에게 각각 주어지는 3개의 황금사자상은 오는 10월 결정된다.
미술가라기보다는 사이비 고고 생물학자인 이씨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릴지도 관심사다. 1995년 한국관이 개관한 이후 한국 작가로는 1995년 전수천,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이 3회 연속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미술의 중심에 찍은 ‘거대한 점’
이우환 화백, 한국 화가로 유일하게 <베니스 비엔날레 협력전>에서 초대전 열어

한국 화가로는 유일하게 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 협력전>(collateral events)에 초대받은  이우환(71·사진)의 개인전이 열리는 ‘팔라조 팔룸보 포사티’(Palazzo Palumbo Fossati)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베니스의 번화가 산마르코 광장 뒷골목에 숨어 있었다. 전시장으로 통하는 길은 미로처럼 얽혀 이우환(Lee Ufan) 전을 알리는 다홍색 입간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6월8일 오후 6시 반(현지 시간)에 열린 개막식은 한국 미술계 인사들과 그가 활동 중인 일본과 프랑스는 물론 멜리사 추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 미술관 관장, 로버트 밀러 화랑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미술계 인사들로 가득했다. 현지 일간지 <일 지오날레>가 ‘비엔날레 기간 중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전시’로 작품 사진과 함께 소개하면서 이탈리아의 화상과 평론가들도 모여들었다. 박수근·이중섭·김환기 이후 한국 현대회화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는 이화백은 프랑스 현대미술 사전에 이름이 수록될 만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국 작가다. 최근 국내외 경매 시장에서 그의 작품 가격이 계속 치솟으면서 국내외 미술 투자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달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추상화 ‘점으로부터’ 연작 중 한 점이 추정가의 3배에 달하는 무려 1백94만4천 달러(약 18억원)에 낙찰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명’(共鳴·Resonance)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 그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온 회화 ‘조응’(Correspondence) 연작 10점과 설치 작품 ‘관계항’(Relatum) 연작 8점을 내놓았다. 흰 캔버스나 벽에 붓을 꾹꾹 눌러 한 번, 혹은 두세 번 회색 점을 칠한 ‘조응’ 연작은 ‘점으로부터’(point) 연작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절제가 더 심해졌다. ‘관계항’은 모서리가 약간 들리거나 편편한 철판과 자연석을 배치한 설치 작품이다. 
이화백은 한국에서 미대에 입학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뒤 1968년 작가의 내적인 예술 이념과 외부 세계 간의 관계를 모색하는 모노하(物派) 운동을 창안하면서 주목되기 시작했다.
개막식에서 만난 그는 “비우는 행위는 내면과 바깥 세계와의 조화, 작가가 표현한 공간과 나머지 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중요하다”며 비울 때 비로소 내면과의 소통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첨단 예술도 중요하지만, 잠시 서서 반성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예술도 필요하다”라며 자신과 같은 예술가가 복잡한 오늘의 상황에 대해 반성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1월2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를 위해 이탈리아측은 3백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 전체의 벽면을 새로 칠하고 전시 공간을 꾸미는 데 7억원을 들였다. 이화백은 문화 예술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6월18일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 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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