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 과정에서 법률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의 헌법 무시가 국가 존립 기반을 흔들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도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례가 있었다. 대북 송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하고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 송금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사로 활약했던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이 구속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가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다. 대북 송금 특검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실시되었다. 특검 뒤에는 투명한 남북 관계를 정착시키겠다며 ‘남북관계발전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북 밀실 정책은 여전했다. 지난해 10월 안희정씨가 대북 비선을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안희정 구하기’로 일관했다. 통치권의 일환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학자들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대통령이 법을 어기는 한 국가 질서는 혼란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토대는 법치다. 법치 수준으로 민주주의를 따진다. 법치를 파괴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법치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실정법 위반은 종종 있어왔다. 2000년 4·13 총선 당시의 낙선운동도 실정법 위반 사례 중 하나다. 시민단체 1천여 개가 모인 총선시민연대는 ‘정치 개혁’을 목표로 특정 후보에 대해 낙선운동을 펼쳤는데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론을 무시한 금속노조의 정치 파업도 문제다. 현행법에는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동의를 얻게 되어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한 헌법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한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이처럼 낮은 수준의 헌법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민에게는 참으로 슬픈 일이다.”
권력에 의해 법이 휘둘리고, 법이 자의적으로 집행되는 한 민주주의는 허울뿐이다. 인치(人治)에 의해 법치(法治)가 휘둘리고 있는 현실. 법치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